오지 않는 고도Godot를 기다리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by 이영란

“내 작품에서는 을 찾지 마라. 철학이나 사상을 찾을 생각도 하지 마라. 보는 동안 즐겁게 웃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실컷 웃고 난 뒤, 집에 돌아가서 심각하게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자유다."

작가의 저 당부를 연극을 다 보고 나서 접한 우리는, 성실한 관객이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처럼 막이 열리자 대사 하나하나에 온통 집중하며 작품 속 철학과 사상을 열심히 찾아댔다. 시간은 흐르고 아무래도 그것들이 쉽게 잡히지 않아 지칠 무렵, 조용하던 루키의 모자가 벗겨지고 그가 생각이라는 것을 하며 말을 뱉어낸다. 드디어 루키가 의미있는 말을 하겠구나 하는 기대도 잠시, 그가 뱉어내기 시작한 말들이 또 아무말 대잔치임을 슬슬 깨닫기 시작하자 불안감이 몰려왔다. 이 연극의 목적이 처음부터 이것이었나? 아무말 대잔치? 이 연극이 부조리 연극의 대표라고 하더니 그저 생각과 말의 부조리를 전달하는게 이 연극의 목적이라면.. 아~ 그렇다면 싸지 않은 입장료를 지불한 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너무나 허무하고 부조리한데?
그러나 한편 궁금했다. 저 대단한 노배우들이 이 작품을 택한 이유, 소설도 아닌 희곡을 쓰는 작가에게 노벨상을 준 이유가 있을텐데. 작가는 찾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그래도 뭔가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있겠지. 희망을 가지고 다시 집중해보려는데 무대위에 한 켤레의 낡은 구두와 모자 하나만 남겨지고 -매우 부조리하게- 1막이 내려졌다.

2막이 열렸고 다시 그들이 등장했다.
옳거니, 노인에게 어제 왔던 소년이 또 왔고 '고도Godot씨가 오늘은 못 왔지만 내일은 꼭 오겠다고 했다'며 어제와 똑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당황스러웠다.
어쩌면 이렇게 고도씨는 영원히 안 올 수도 있겠구나. 누구인지도 모르며 오늘도 고도씨를 기다리는 희망으로 고단한 삶을 억지로 억지로 이어가는 저 두 노숙자를 보고 있자니 결국 고도씨가 오지 않는다고 해도 둘에게는 그 희망이 의미없다고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났다.

맥락도 메시지도 잡히지 않는 극도로 부조리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흡입하는 저 배우들의 연기력, 대사전달력, 무대장악력에 진심으로 기립박수를 보냈다. 어쨌든 재밌었고, 연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지났으니 뮤지컬도 좀 보러 가자는 얘기로 훈훈한 마무리를 하며 우리 셋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작됐다.
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선택사항이라고 말한 '집에 돌아가 심각하게 인생을 생각하기'가.
그건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 연극에 호기심을 느껴 티켓을 샀을 때부터 선택의 자유는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배우들의 대사, 행동, 몇 개 안되는 소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던 그 아무말들이 자꾸 생각난다.
나도, 남편도, 아들도 계속해서 연극에 대한 생각과 얘기들을 이어나가게 되는걸 봐서
한 가지는 분명했다.
20세기 프랑스의 한 희곡작가에게 노벨상이라는 큰 상이 수여된 이유,
저 배우들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

이토록 허무한 내용의 연극이 이 정도로 흥행하며 반복 공연된 이유,

그리고 우리에게까지 소문이 나 이렇게 보게 된 이유.

이 연극 덕에 남편은 더이상 고도를 기다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아들은 기다리는 대상인 고도에 대해 한번 적극적으로 알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는 계속 기다리되, 기다림의 대상에서 시선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의 주체인 내게 있어 그 기다림이 어떤 실체적 의미를 가지는지에 더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Waiting for Godot.

(아마도 Godot은 신God을 의미할것이다.)
멋진 연극 덕에, 미처 의미를 입지 못한 우리들의 겨울방학이 의미를 물으며 의미롭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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