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시티-뷰 written by 우신영

인간의 결핍에 직면할 용기

by 이영란

나는 찬란한 햇살을 받아내는 송도의 멋진 하늘빛 유리빌딩 사이를 운전하여 출근하는 것을 사랑한다. 인천대학교는 오른쪽으로는 잭니클라우스가 설계했다는 멋진 골프장이 있고 앞쪽으로는 바다가 보이는 위치에 멋지게 자리하고 있다. 아침마다 나와 똑같은 행복감을 안고 송도 빌딩숲을 지나 바닷가 캠퍼스로 출근하는 인천대 교수가 어느날 마주한 한 장면이 이 소설을 쓰게 했다고 한다. 우리의 멋진 시티뷰를 위해 위태로운 줄에 매달려 고층빌딩의 창문을 닦던 이들과, 그 옆 실내 클라이밍장의 홍보 현수막 속 인위적인 매달림의 대비를 도저히 그냥 삼킬 수 없었다고.


나 같은 T들은 소설 읽는것이 조금 괴롭다. 아, T라고 다 나 같지 않을텐데 '나 같은 T'라고 말하면 너무 자기중심적 일반화일테지만 우리 집에 나랑 비슷한 아이가 한둘 더 있어서 그냥 그렇다고 하고 넘어가겠다. 일단 모든 소설은 괴롭다. 굳이 한강 작가가 아니더라도 모든 소설가는 괴로움을 얘기한다. 괴롭지 않으면 소재가 안 되니까. 우신영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결핍'이라는 단어로 설명한 것과 같은 맥일 것이다. 현대소설 강의를 10년을 하며 소설 속 인간의 결핍을 가르친 본인에게 정작 결핍은 없었다고.(아마 강의실의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을테다.) 소설을 가르치고 종종 쓰기도 하는 작가는 어느날 아침 자신이 목도한 대립 속 그 결핍을 삼키지 못해 이렇게 소설로 썼지만 나는 안 읽으면 그만이었다. 남의 고통 혹은 결핍 속으로 자처해서 들어가는 소설읽기는 적어도 인간에 대한 애정이나 예의가 있다는 증거이다.


세상의 어두운 면은 보기 싫고 그저 밝은 세상 속 구김없는 공주이고 싶어 눈을 감는 습관은 어려서부터 있었다. 부모님의 불화를 느끼지 못할 수 없었을텐데 나는 애써 그 센서를 덮어버리고 화목한 가정의 구김살 없는 맏딸로 잘 자랐다. 나중에 다 성장하여 남동생과 과거를 회상하며 깜짝 놀란 경험이 있다. 우리 집은 항상 어두웠고 부모님은 늘 갈등속에 있어서 본인은 청소년기에 많이 힘들었다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은 경제적인 엎앤다운이 있었을지언정 늘 유머와 웃음이 떠나지 않는 홈스윗홈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과의 힘든 결혼생활을 견딘 엄마에게 하나뿐인 딸이 장성한 후에라도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면 좋았을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한번도 엄마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았고, 그런 방식으로 내 내면의 평안을 깨지 않기 위해 엄마에게 끝까지 괜찮은 척 애쓰며 살기를 강요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안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결핍에 공감하려는 노력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것만이 사랑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나는 엄마보다 나를 더 사랑한 이기적인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절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내가 이제는 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누군가의 고통속으로 자발적으로 걸어들어가는 소설 읽기를 한다는 건 용기이고 선언이고 칭찬받을 일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집어 든 나의 심리는 '도시 인간의 결핍을 마주해보리라'는 대단한 각오는 아니었다. 인터넷 신문의 자극적인 가십기사 제목에 낚여 결국 클릭하고야 마는 그런 가벼운 호기심이었다. 소설 시티-뷰는 내가 사는 도시, 내가 매일 보는 공간, 혹시 내가 아는 그 집 얘기 아니야?하고 생각할 정도로 동네에서 쉽게 마주치는 어느 부부의 이야기이다. 익숙하고 친숙한 공간과 등장인물들, 그리고 작가의 무겁지 않은 필력이 쉽게 소설속에 빠져들게 했다.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하루만에 이 소설을 뚝딱 읽어버렸다.


헛헛하다. 소설은 원래 다 읽고 나면 헛헛한거니까. 그게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결핍을 경험하고 나서 느끼는 당혹감과 정리되지 않은 혼란스런 감정에 대한 내 방식의 표현이다. 헛헛함. 그게 참 싫어서 소설을 안 읽는 것인데, 그래도 그 감정을 너무 오래 피하지 않고 이제라도 마주한 나의 용기와 사랑을 누군가는 칭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그래서 이렇게 독후감을 쓰는 것이다. 저 소설 읽는 여자예요. 저는 비겁하지 않고 무정하지 않아요. 용기없지 않고 정직하지 않지 않아요.


올해 정보부장을 하며 담임을 맡지 않으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일은 많으나 그 일에는 사람이 없다. 나의 고객은 여리고 어린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과 서류더미이다. 수업을 마치고 작고 조용한 사무실로 얼른 몸을 피하면 더이상 찾아오는 아이들도 없다. 결핍의 눈동자 70개에 다 반응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상태로 부채감 속에서 일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결핍의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마주쳐주며, 괜찮냐고 묻고 상대가 내뱉는 고통의 언어를 들어주는 그것이 얼마나 큰 용기와 사랑을 필요로하는 것인지 잠시 피해보니 알겠다. 언제까지 이렇게 방공호 속에 숨어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 좀 봐주세요. 저한테도 이런 날이 좀 있어야지요. 저 조금만 숨 돌리고 준비되면 나갈게요. 조금만, 조금만 모른척 해주세요.


아, 시티-뷰. 이 책 얘기 중이었지. 멀쩡하게 번듯하게 사는 듯 보이나 사실은 결핍에 쩌는 주인공들이 자신에게 혹은 남에게 그 결핍을 슬쩍슬쩍 들키는 이야기이다. 독자는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내 모습 같기도 해서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을 멍하니 있게 되지. 읽을 때는 소설 속 주인공의 결핍일 뿐인 것 같았는데 다 읽고 나서는 내 속의 동일한 결핍을 발견하게 되는 것.

이런 소설이 잘 써진 좋은 소설인 것 같다. 독자를 흔들 수 있는 소설. 이렇게 흔들리기를 허락하는게 독서였지. 그래, 이번에는 작가가 이겼다. You 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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