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핵폭탄을 투하했다.
2050년, 마침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핵폭탄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즉시, 지구의 경찰국가 미국은 러시아에 핵폭탄을 떨어뜨렸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워싱턴으로 핵폭탄이 향했지만, 미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덕분에 태평양 상공에서 격추되었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일본은 아직도 핵융합로를 식히지 못해서 태평양 바다로 핵물질들을 쏟아냈다.
태평양 상공에서 폭파된 핵폭탄 때문에 결국 바다도 오염이 되었다.
생선 두 마리중에서 한 마리가 오염된 시대가 왔다. 부자들은 방사능 오염이 되지 않은 생선을 사전에 3단계나 조사해서 먹지만 서민들은 공짜와 같은 변형 생선들을 먹어야 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방사능 오염 생선을 먹은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정자의 운동능력을 잃어갔다. 여자아이들은 체내 유전자 내에 프로텍팅 기능이 활성화되면서 스스로 몸을 보호했지만 남자아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 상태로 20년이 지난 2070년이 되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이제 이런 핵물질에 오염된 음식을 먹기 시작한 사람들이 아이들을 낳지 못하게 되었다. 여자들의 유전자는 상대적으로 강했지만, 남자의 정자들은 버텨내지 못했다.
국제 사이언스 과학지에는 정 박사의 논문이 실려서 호평을 받았다.
< 프로즌 스펌이 인류를 위기로 몰아간다.>라는 제목의 A4지 약 10페이지의 논문은 전 세계인 수천 명의 남성들을 표본으로 조사한 결과 불과 30%의 남자들만이 정상적인 정자를 지니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 논문이 발표되자 각 나라의 언론들은 자극적인 문구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 남자들의 3분의 2가 아이를 낳지 못함 >
<남자들의 70%가 수태 능력을 잃음>
등등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이제 저출산의 문제는 전 지구인의 문제가 되었다. 이러다 보니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곳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모든 입국하는 외국인들에게 무조건 공항에서부터 국가에서 엄선한 소위 ‘일본아내’들을 데리고 공항밖으로 이동하게 했다.
물론 반대가 심각했다. 특히 여성단체에서 여성들을 폄하하는 행동이라고 정치인들과 남성들을 규탄하고 나섰다. 하지만, 의사들과 의과학자들까지 일본 소멸과 직결된 문제라고 읍소해 나갔다. 그리고 여론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설득작업을 했다.
공공연하게 정치인들은 TV에 나와서 이 문제를 언급했다.
“1억 2천만 명의 인구가 벌써 1억 명으로 줄었습니다. 앞으로 30년 후면 우린 5천만 명으로 줄어들게 되고 이를 방치하면 50년 후에는 한국보다 적은 3천만 명이나 2천5백만 명이 됩니다. 국가적인 위기입니다. 이에 국가는 저출산 문제를 최고 위험한 국가적인 문제...”
“그럼 이 문제를 위해서 어떤 대책이 마련되어 있습니까?” 사회자가 물었다.
“소위 모든 외국인들은 이제 ‘일본아내’를 두어야 합니다.” 후생성의 공보 담당자가 힘주어 말했다.
“일본아내가 뭡니까?”
“교수진들과 연구진들이 조사결과 이대로는 도저히 안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현재 일본 내 여성은 약 5천만 명이 있으며 이 중에서 가임여성들의 수는 1천5백만 명이 채 안됩니다. 이들이 최소 2명은 낳아 주어야 하는데 현재 정상 유전자를 지닌 일본남자들은 5백만 명이 채 안됩니다. 즉 일본내에서만으로는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습니다.”
“현재 일본의 연간 방문자수와는 괜찮을까요?”
“현재 연간 일본 방문자수는 약 2천5백만 명입니다. 남자가 약 1천2백만 명 정도 입국하고 이들 중에서 약 30%의 남자들이 수태가능하다고 보면 약 3백만 명 조금 넘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이 숫자는 저희가 생각하기에 매우 부족한 숫자입니다. 저희 목표는 연간 약 5백만 명의 남자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요?” 사회자가 다시 물었다.
“여기에 저희가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충분히 연간 3천만 명 이상이 일본을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그중에 남자는 약 1천5백만 명입니다. 이중에 긍정적으로 봐서 약 30%의 수태가 가능한 남자들이 방문할 겁니다. 그럼 약 5백만 명이지요.”라고 패널로 나온 다른 정치인이 답했다.
“남자들의 수태가능여부는 어떻게 체크하나요?”
“이미 각국과 협조를 통해서 여권에 기재하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협조를 할까요?”
“어차피 각 국가마다 비상인 상태로 국제적인 공조를 통해서 여권 내에 표시를 하기로 했습니다. 수태가능자가 되면 각종 인센티브가 주어집니다. 안 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그렇군요. 네, 알겠습니다.”
곧 정치인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1년 후, 한국. 서울.
“당신이 일본을 꼭 가야 해?” 희영은 남편을 보면서 짜증을 냈다.
“대통령께서 임명한 것을 어떻게 하겠어. 아니면 공무원 옷을 벗어야 하는데.”
희영은 얼마 전까지 영국에서 대사의 아내로 잘 지냈다. 이제 한국으로 복귀해서 한 2년을 청담동과 성수동을 지나면서 잘 지냈었다. 그런데 남편이 덜컥 이번에는 일본으로 대사발령을 받은 것이다.
물론 가족이 다 같이 가는 것이지만 문제는 일본에 가면 반드시 별도의 ‘일본아내’를 두어야 한다. 남편은 이제 50대 중반이지만 늘 새벽같이 일어나서 운동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술 담배도 입에 대지 않고 늘 운동 아니면 국무에 진심이다.
여기서 옷을 벗으면 자진퇴사 형태가 되어서 연금도 높지 않다. 공무원이 그것도 어쩌면 향후 정치권의 부름을 받아서 갈 수도 있는데 상명하복이 아니라 근무지에 대한 불만으로 언론에 비치면 그것만큼 고위 공직자에게 치명적인 것도 드물다.
사실 남편과는 그렇게 살가운 것은 아니다. 남편은 전 세계의 외교관으로 지내면서 각계의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호주, 스웨덴 등 가는 곳마다 남편은 주인공이었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때론 비즈니스상의 접대를 받은 적도 있다.
희영은 알면서 모른 척을 해 주었다. 그런데 이번 일본의 경우는 달랐다.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본아내라니 말이 되니?”
“일본의 정책이 그런 것을 어쩌겠어.”
“누가 성진국(성문화+선진국) 아니랄까 봐 아주 난리를 피운다. 피워.”
“지금은 전 국가가 비상사태잖아. 일본만 그런 게 아냐 계집아이야. 네 신랑이 건강한 상태인 것을 기뻐해야지. 우리 신랑은 날 보고도 아예 몇 년째 도 닦고 있다야, 우리 부부 관계없는지 한참 되었어. 아주 건드리지도 않아. 그것보다는 백배 낫지 뭐니. 호호호.”
“계집아이, 네가 직접 닥쳐봐, 그런 말이 나오나.”
“우리 신랑이 그러는데, 한국도 그런 얘기들이 오고 가고 한데. 모든 국가에서 난리도 아니잖아. 미국도 그렇고. 점점. 선진국마다 각 국가의 아내들을 제공할 생각인가 봐.”
“정말?”
“넌 뉴스도 안보냐? 지금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요. 아주 심각하다고. 국가말살이라는 말도 나와. 인류말살시대라는 말도 나오고. ”
“그래서? 네 생각은 그냥 가라는 거야?”
“그래, 네 신랑도 혹시 아니. 우리 신랑처럼 장관이라도 달게 될지. 아무튼 일단 가서 부딪쳐 봐.”
한 달 후, 예정대로 희영과 남편은 일본땅을 밟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외교관 신분이라서 공항에서 일반인과 섞여서 수속을 밟지 않았다는 점이고 그 덕분에 아직 ‘일본아내’ 건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짐을 한참 풀고 있을 때였다.
‘띵동’
벨이 울렸다.
‘ 찾아올 사람이 없는 데? ’
“누구세요?”
“하이, 하지메마시떼. 와따시와 코하쿠데쓰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코하쿠입니다.) “
희영은 얼른 자동번역 이어폰을 꼈다. 상대의 귀에는 이미 이어폰이 꼽혀 있었다.
희영이 한국말을 해도 일본여자는 자신의 언어인 일본어로 들릴 것이다.
“네, 어떤 일로 오셨나요?” 희영이 물었다.
“점백 씨의 일본아내로 임명되었습니다. 여기 증명서가 있습니다.”
여자가 불쑥 서류를 가방에서 내밀었다. 일본어로 된 증명서에는 남편의 이름과 코하쿠의 이름 그리고 일본 법무성 장관의 도장이 큼지막하게 찍혀 있었다.
“아, 저는 아내예요. 윤희영이라고 합니다.”
하마터면 ‘한국의 아내’라고 말할 뻔했다.
“네, 반갑습니다.”
먼저 귀띔이라도 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희영은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마음의 결심을 하고 온 터라 여성을 거실로 안내했다.
“누구야?” 남편이 비행기에서 들고 온 신문을 들고 돋보기를 내리고 희영과 일본여자를 번갈아 보았다.
“당신 일본아내래요.”
“아, 그래?”
희영은 순간 남편의 표정을 읽으려고 했지만, 그는 무표정이었다.
뭐야, 시시하게.
남편도 호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꼈다.
“반갑습니다. 김점백 대사예요. 여기 윤희영 씨 남편이기도 하고요.”
남편이 코하쿠에게 손을 내밀었다. 코하쿠가 남편의 손을 잡으면서 살짝 무릎을 굽혔다가 폈다.
50대 중반인 남편보다 10살이나 어린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여자는 자신보다 10살은 어려 보였다. 몸매도 날씬했다. 아마 임신 가능성이 충분한 건강검진을 다 한 건강한 여자일터였다. 이미 한국에서 이 문제로 다툴 만큼 다투고 왔기에 더 문제를 삼을 여력도 기운도 남지 않았다.
“가만있자, 숙소를 어떻게 하지?” 남편이 머리를 긁적였다.
“뭘, 어떻게 해요. 당신하고 내가 1층 쓰고 2층 쓰라고 하면 되죠.” 희영은 순간 말이 앙칼지게 나왔다는 것을 느끼고 아차 했다.
“그래요, 2층 안쪽 큰 방을 쓰세요. 여긴 우리 아이들도 없어서 편하게 쓰면 돼요.”
남편이 눈치를 주자 같이 뒤에 따라서 온 일본 관계자 한 명이 여자의 여행가방 2개를 2층으로 들고 따라갔다.
희영은 짐을 푸느라 아직 2층도 못 올라가 봤다는 생각에 따라 올라갔다. 2층은 이미 마치 신혼집처럼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었다. 2층에는 방이 2개가 있는데 그중 큰방에는 이미 킹사이즈 침대와 하얀 아마포로 덮인 오리털 이불이 있었다.
2층 거실 쪽은 외부 테라스와 연결되어서 가든파티를 해도 열명은 충분히 앉을 만한 라탄 소재로 된 소파와 등나무 의자 등이 가운데 벽돌로 만들어진 캠프파이어용 화로를 두고 원형으로 삥 둘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층을 달리 한 회색 면재질의 원단들이 겹겹이 덮여서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전체는 면 원단처럼 보여서 거칠 표면의 내추럴한 느낌이 들었지만 사이사이에 방수원단을 포함시킨 듯이 윤기가 났다. 웬만한 비는 막을 수 있게 디자인된 듯싶었다.
화로 주변은 바닥이 자갈들이 깔려 있고, 화로 안은 두 겹으로 제일 바깥면은 두터운 모래벽으로 만들어 두었다. 유사시에는 그 모래를 퍼서 불을 꺼도 될 정도였다.
“흠, 멋지네.”
희영은 괜히 2층을 일본여자에게 양보했나 싶어서 살짝 짜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대사의 아내로 함부로 말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래 품격이 더 중요해.
“웬만하면 이 방 하나만 썼으면 좋겠는데.”
남편과 합방을 하지 않은지는 꽤 되었다. 2년 정도 되었나? 하지만 막상 자신의 눈앞에서 흰 블라우스에 검정 흑단 레이스까지 달린 주름치마까지 입고 나타난 여자는 단정해 보이기까지 하다.
저녁식사 자리는 참 애매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희영은 자신의 옆에 남편을 가운데 헤드테이블에 앉히고 자신과 여자는 마주 보는 위치로 자리세팅을 시켰다. 테이블은 원래 8인용이지만 한쪽은 장식용 촛대를 두고 촛불을 켜 놓게 했다.
벽등과 촛불만이 저녁식사 테이블을 밝히고 와인에 웰컴 드링크 그리고 스테이크가 올라왔다.
남편은 희영의 눈치를 보면서 연신 헛기침만 하고 있었다.
“어험, 좀 덥지 않아요?”라고 말하면서 넥타이도 없는 셔츠의 목덜미 카라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여보, 그냥 편하게 있어요. 어차피 이 친구는 당신하고 임신만 되고 나면 그냥 나갈 테니 한 두 달은 참을게요. 대충 빨리만 끝내줘요.”
희영은 서빙을 하는 집사가 잔을 채워주자 와인잔을 들었다.
“코하쿠상, 오신 것을 환영해요.” 그녀의 입가에 억지 미소가 지어졌다. 다년간 남편을 따라다니면서 만들어진 사회적인 미소였다.
희영은 와인을 많이 마셨다. 힐끔거리면서 자신의 눈치를 보던 남편은 언제부턴가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면서 노골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본아내를 쳐다보고 있었다. 게슴츠레한 눈에 욕망이 줄줄 흘러내렸다.
“난 먼저 들어가 잘게요.” 희영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저히 더는 못 참을 것 같았다.
“어, 벌써?” 남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말은 완전 속에도 없는 말이란 것을 희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육중한 배에 걸려서 남편 쪽의 테이블이 들썩거려서 하마터면 와인잔이 깨질 뻔했다.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남편은 아무리 봐도 키는 난쟁이 똥자루만 하고 배가 볼록 나와서 팔다리는 가느다랗다. 그런 남편이 앞에 앉아서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일본여자와 함께 거사를 치른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렇다고 자신이 남편에게 애정이 있는지 되돌이켜 보면 전혀 그렇지도 않다. 참, 본인이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웠다. 이럴 기분은 질투도 아니다. 그냥 짜증 같은 것이었다. 마치 내가 키우던 개가 산책 중에 다른 강아지에게 접붙임을 당하는 기분이 이런 것과 비슷할 것 같기도 했다.
“여보, 당신 잘 안될 수도 있어. 내가 저기 책상 세 번째 칸에 발기부전 치료제 있으니까 그것 사용해. 필요하면.” 그게 희영에게는 최선의 공격이었다. 기왕 맞아야 할 매라면 빨리 맞자.
희영이 내려가고 그녀는 1층 안방에서 조용히 누웠다. 와인은 숙면에 최고였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1층 주방에 가니 이미 코하쿠가 아침 준비를 마쳤다.
테이블 위에는 잘 구워진 식빵과 토마토주스 그리고 스위트한 치즈들이 과일잼과 함께 놓여 있었다.
“코하쿠상, 내가 준비하면 되는데.”
“아니에요, 언니, 제가 할게요.”
“언니? 지금 언니라고 했어요?”
“그럼요. 언니죠.” 코하쿠가 웃는데 덧니가 매력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남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아직 자나요?”
“네, 피곤하셨나 봐요.” 코하쿠는 양손으로 볼 옆에 대고 자는 시늉을 했다.
“제가 가서 깨울까요?”
“아뇨, 놔두세요. 우리끼리 아침 먹어요. 남편은 아침에 일이 없을 때는 좀 늦잠을 자곤 해요.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그냥 두면 알아서 일어날 거예요.” 희영이 미소를 지었다.
식사를 하면서 희영은 코하쿠를 자세히 보았다.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일본여자는 화장을 지우고 보니 코 끝에 작은 점이 하나 붙어 있었다.
“코하쿠상은 결혼했어요?”
“네, 한 번요. 지금은 이혼했고요. 아이는 국립병원에 들어가 있답니다.”
“아? 왜요?”
“처음 만난 남자가 알고 보니 핵원자로에서 나오는 폐기물 운반회사에서 근무했었어요.”
“아, 그럼....”
“네, 크지는 않지만 20 mSv(20밀리 시버트)에 노출이 되어서 그 이후로 몸 유전자에 변형이 왔어요. 다행히 요즘엔 약이 좋아서 거기서 병의 진행은 멈추었지만 문제는 저희 둘 다 경험이 없었죠.”
“그래서 돌연변이가 출산되었나요?”
코하쿠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희영은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이 삭막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났다.
“병원비가 많이 들어가지 않나요?”
“네, 직장인들 급여로는 감당이 안되죠. 월 1천만 원이 넘게 들어갑니다.”
“와, 그렇게나 많이 들어가요?”
“방사능 피폭제는 정기적으로 투여를 해야 하니까요. 대신에 ‘일본아내’ 제도를 활용하면 가족 병원비는 국가에서 무료로 해 줍니다.”
“아, 그래서. 지원을 하셨군요.”
“네, 임신해서 정상아이를 낳으면 집도 주고 직장도 또 구해줘요. 일시금으로 2억인가 주는데 그것도 금액을 지금 3억으로 올린다는 얘기가 있어요.”
“오, 그건 나쁘지 않네요.”
“부의 사다리는 아니어도 디딤돌이 만들어진 것이죠.”
희영은 코하쿠와 얘기를 하면서 보니, 새삼스럽게 그녀가 측은해 보였다.
결국 그녀도 자기의 자식 병원비를 대려고 나온 엄마였다.
“그나저나 이런 비상사태가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르겠어요.”
둘 사이의 잠깐의 침묵 속에서 희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미국에서 이미 유전자 치료제가 나왔다고 들었어요. 곧 상황이 반전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코하쿠가 말했다.
희영은 한국에 있는 자신들의 아이들을 생각했다. 참 운 좋게도 자신은 아이를 두 명이나 낳았다. 하긴 지금 결혼한 친구들 중에서도 아이가 없어서 고민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런데, 꼭 이렇게 비 윤리적인 방법으로 했어야 했는지는 좀 의문이에요.”
희영이 식은 커피를 들고 한 모금 마셨다. 나쁘지 않았다.
“그게 정자은행이 문제가 많았어요. 일본에서요. 철저하게 신분 확인을 한다고 해도, 정자에는 이름이 안 쓰여 있잖아요. 한 명의 건강한 교수가 가명을 써 가면서 500명이나 임신을 시켰어요. 그게...... 결국은 장애인을 낳으니까요. ”
“아, 왜 그런 짓을...” 희영이 고개를 저었다.
“뭐, 지금 건강한 정자는 엄청난 돈이 돼요. 보통 불임부부에게 몇 백만 원이 넘게 팔리죠.”
“아....”
“그냥 병원에 가도 백만 원은 족히 받아요. 그런데 병원에서는 신분확인이 좀 확인하니 그냥 인터넷 카페 같은 곳을 통해서 직거래 형식으로 한 것이죠. 그게 문제가 된 이후로 아예 실명제가 된 셈이에요. 안전하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정자은행에 보관하면 보관과정에서 오염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렇겠군요.” 희영이 쓴 미소를 지었다.
얘기를 듣고 보니 일본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집사가 틀어놓은 TV에서 일본 뉴스가 흘러나왔다.
희영의 귀에는 당연히 한국어로 들렸다.
일본의 선제적인 인구보존 정책에 힘입어서 영국과 호주 그리고 미국도 같은 방식의 제도를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 보조금 5억 원으로 상향한다는 말도 나왔다. 일본 문부성 장관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일본의 고유한 아이디어를 이렇게 베껴서 정책시행을 하는 것은 저희로써는 좀 불쾌합니다. 최소한 한마디라도 하고 정책 시행을 해 나갔으면 좋았을 텐데요.”
코하쿠가 말을 하는 바람에 그의 시선이 여자를 향했다.
“아, 이런, 일본보다 3억이나 많이 주네요.”
"네?" 희영이 놀라 일본여자를 쳐다보았다.
"죄송하지만... 저... 전화 한 통만 할게요."
"네, 그러세요."
그리곤, 희영의 맞은편에 앉은 채로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걸었다.
“어, 이모, 나 미국으로 가려고. 아니 여긴.....”라고 말하면서 일본 여자가 희영의 눈치를 보았다.
희영이는 바로 여자가 현재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바로 눈치를 챘다.
여자에게 고개를 끄덕여서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안 그래도 '일본아내'라는 제도가 탐탁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맘에 불편했던 차에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정부에서 알아서 새로 지정을 해 주든지 그런 것은 자신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녀는 엄지와 검지를 붙여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손가락으로 기꺼이 괜찮다는 적극적인 사인을 보냈다.
“여긴 괜찮아요. 어, 언니 초청장 하나 좀 보내줘요. 아무래도 신분면에서든지 사회보장면에서 미국이 훨씬 낫지요. 네, 네, 그럴게요. 고마워요.”
“치료받고 있는 아이는 어떻게 하고요?” 통화를 마친 일본여자에게 희영이 물었다.
“사모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도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케어를 다 해준다고 하네요. 지금 제도 신청하면 왕복 항공권은 물론이고 미국시민권에 정착금 그리고 아이 치료까지 평생 책임을 진다고 하네요. 어머 사모님 저 그럼 이만 가볼게요. 참, 남편 분께는 말씀 잘 들려주세요.”
그녀는 짐을 싸기 위해서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다.
그렇다. 2070년, 지금은 심각한 지구촌 저출산 시대다.
국가소멸의 위기에서 국가 간의 경쟁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한국도 ‘한국아내’ 제도를 고민 중에 있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희영은 떠나는 그녀를 위해서 로봇택시를 앱으로 불러주었다.
저출산 경쟁이 이렇게 심한 것인지 이해가 되진 않았다.
다만, 떠나가는 일본여자를 배웅하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