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봉숭아, 남은 자리의 빛
봉숭아 한 포기가 사라진 자리, 그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나를 맞이하던 그 작은 존재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눈으로는 잔디밭의 푸름이 여전한데, 마음속엔 허공이 한 움큼 파여 있었다.
매일 아침. 나는 공원에서 달리기나 걷기를 한 뒤, 늘 같은 자리에서
마무리 운동으로 국민체조를 한다.
그곳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조용한 통로다.
가끔 뒷걸음질 연습하는 아주머니 두세 분이 지나가곤 했지만,
대체로 한적한 곳이었다.
간혹 운동 코스로 지나다니는 사람 몇 있을 뿐이다.
공원 둘레길에서 조금 벗어난, 작은 벤치 두 개가 있는 공간.
나는 주로 원형경기장 앞쪽에 있는 벤치를 택했다.
운동을 마치고 나면 7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다.
태양이 떠오르면 앞 쪽 벤치는 나무 그늘이 있어서 햇빛을 보지 않고
체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런데이 앱으로 그날 운동 난이도를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3줄 마음 일기’를 썼다.
일기 쓰기를 마치면 유튜브를 켜서 국민체조 할 준비를 했다.
벤치 위에 핸드폰을 놓고, 모자와 손수건을 옆에 둔다.
벤치는 여러 번 덧칠한 것이 벗겨져 얼룩 자국이 가득하다.
벤치 가운데는 굵은 쇠막대기가 경계를 나누고 있다.
벤치 옆에는 수국들이 자라고 수국 뒤에는 참억새가 군집을 이룬다.
정면에는 나지막한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고,
그 뒤로 공원의 노송들이 축 늘어진 가지로 세월을 버티고 있다.
잔디밭 왼쪽으로는 팡파짐한 단풍나무가 두서너 그루 자란다.
아직은 잎이 푸르다. 가을이 되면 고운 단풍잎을 만들겠지.
오른쪽으로는 이동식 미니 스프링클러 한 대 서 있다.
올여름 더위가 한창일 때 새벽마다 물을 주던 장비다.
잔디밭 가장자리에는 굵은 호스가 지난다. 관수용으로 설치된 장치다.
그 푸름을 바라보며 체조를 하는 것이 하루의 소소한 기쁨이었다.
그 자리는 나의 작은 아지트였다.
옆에는 키 큰 측백나무가 여러 가지를 촘촘히 키우며 서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엔 새파란 하늘과 구름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은 구름이 가득한 하늘이다.
측백나무 거친 둥치에는 세월을 지키듯 매미 껍질이 두 개 달라붙어 있었다.
발밑은 콘크리트가 아닌 흙이라, 오래 서 있어도 발이 편했다.
국민체조를 두 세 세트하고 나면,
얼굴에는 운동할 때 전부 나오지 않았던 땀이 줄줄 흐르고
온몸에는 기분 좋은 열기가 돌았다.
어느 날, 그 벤치 옆에서 봉숭아 한 포기 보았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그러나 며칠 동안 그 봉숭아가 자꾸 눈에 밟혔다.
농사짓던 마음이 아직 남아서였을까.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봉숭아는 수국 옆에 있었는데, 수국은 이미 꽃을 피웠고
커다란 잎으로 햇빛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봉숭아는 수국 그늘 속에서 키가 20cm 남짓 되어 보였다.
연약하게 서 있었다. 햇빛을 보지 못한 잎은 연두색으로 줄기는 가늘고 힘이 없었다.
꽃봉오리는커녕, 줄기 색도 붉게 물들지 못한 채였다.
수국 두 줄기를 조심스레 옆으로 제쳤다.
햇빛이 봉숭아에게 비치도록 만들어 주었다.
한 포기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옆에는 작은 봉숭아 한 포기가 더 있었다.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크기는 달랐지만, 서로가 외롭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빛을 받은 봉숭아는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8월 2일이었다. 앞으로는 햇살이 더 잘 들어와,
곧 꽃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아침에 봉숭아 곁에서 체조하며, 두 녀석이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살폈다.
한 이틀 동안 나만의 귀한 보물을 가진 것처럼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체조하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수국잎을 제쳐준 지 하루 만에 당당하게 자라는 봉숭아가 믿음직스러웠다.
제대로 자기 자리를 확보한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이나 식물이나 영역 확보가 되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을이 오기 전 예쁜 꽃을 피우길 바라며 무럭무럭 자라길 빌었다.
8월 5일, 그 봉숭아가 사라졌다.
볼일이 있어 공원을 지나다가 잠시 들른 자리.
그곳은 휑했다. 뿌리가 통째로 뽑힌 흔적만 남아 있었다.
처음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봉숭아는 없었다.
누군가 집에 심으려고 가져간 걸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겨 심은 걸까.
공원에서 옮겼다면 꽃삽 자국이 남았을 텐데, 그 흔적은 없었다.
원래 내 것이 아니었다.
공원에 있던 것이니, 누구의 손에 가든 내 권한 밖의 일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했다.
내가 빛을 열어주고 나서야 활기를 띠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척박한 땅에서 고생하지 말고, 비옥한 흙에서 사랑받으며 자라길 빌었다.
그 자리에서 성공하길, 꽃을 피우길, 끝내 아름답게 마무리하길.
나는 그 빈자리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단지 수국의 잎을 젖혀
봉숭아에게 빛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그 봉숭아를 그 자리에 영원히 두는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했으면 그것으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 것도 아닌데 무슨 애착을 가질 수 있을까.
아마 봉숭아와의 일은 내가 공원에서 운동할 동안
늘 내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러나 그 작은 일이 그들의 삶에 빛을 열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라. 는 말처럼
이미 떠난 봉숭아를 지킬 수는 없는 일이다.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그동안 작은 정이 들었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다. 봉숭아는 떠났지만,
내 마음속엔 ‘그 빈자리의 빛’이 남았다.
어디 가든 지 잘 살아라. 어디 있든지 행복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