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친구가 자신이 탐미주의자라고 밝힌 적이 있다. 꽤나 떳떳한 고백이었다. 고백과 동시에 내게 건넨 책은 나체로 뒤얽힌 남녀의 사진들로 가득했는데 그 표지 역시 강렬한 느낌의 추상화였고 단연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실 난 '탐미주의'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았다. 모르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특유의 '난 너의 생각과 다를 수 있지만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어느 날 우연히 비슷한 추상화를 발견하고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그 단어의 뜻을 찾아봤다. 탐미주의. 또는 유미주의.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추구하는, 본능 그대로의 쾌락이나 찰나적 향락을 맛보려는 주의란다.
최근에 본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스타 이즈 본 (A Star is Born). 무명가수인 앨리가 톱스타인 잭슨을 만나 세상에 알려지는 이야기인데, 앨리는 자신의 얼굴이 실린 광고판 앞에서 코가 너무 크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녀의 재능, 혹은 외모, 혹은 그 모두를 사랑한 잭슨은 오로지 그녀의 코만 그 광고판에 거대하게 걸고 싶다고 전한다.
참으로 스윗하다. 그렇다면 과연 잭슨은 그녀의 큰 코가 아름답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우리가 흔히 아는 콩깍지가 씌어 큰 코마저 아름다워 보였을까.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앨리의 마음을 얻기 위해, 또는 슬퍼하는 그녀를 위로해주기 위해 그 말을 건넸을까. 뭐 그 생각 역시 아름답다.
이처럼 같은 코를 놓고도 아름다움은 여러 형태로 나뉜다. 그리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아름다움, 그들의 미적 기준 역시 다양하다. 사람에 따라 미니멀한 디자인이 세련되거나 투박하게, 화려한 그림이 고급스럽거나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듯 말이다. 이렇게 똑같은 사물이나 상황을 남들과 같고 또 다르게 받아들이며 아름다움은 소속감을 제공하기도, 개인의 취향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름다움은 일시적이다.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타임리스한 디자인이 손에 꼽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유행이 돌고 돌아도 나의 최신형 아이폰도, 로고 없는 명품 가방 역시 몇 년이 지나면 촌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아름다움은 외형의 것 그 이외의 존재들을 쉽게 가려버리기도 한다. 콩깍지처럼 말이다. 느낄 수 있는 여러 감각 중 우리는 시각적인 것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쉽게 영향을 받는다. 이 화려한 자극에 취해 어쩌면 우리는 다른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취향을 설계하는 만큼 '아름다움'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나를 다른 이들과 독립시키고 또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언가를 바라볼 때, 어떤 사람이나 상황을 판단할 때 이것이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추구해도 좋고 탐미주의자들처럼 이를 다른 가치보다 더 우선시해도 문제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유일한 목적이 되고 수단이 된다면 우리는 그 일시적인 현혹에 속아 본연의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