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행동이 마음을 움직이던 순간.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특별한 말을 건네지 않아도,
유난히 다정한 표현을 하지 않아도,
그 누군가가 했던 작은 행동 하나가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머물곤 한다.
누가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 아니라
듣지 않아도 보이는 행동을 믿곤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말보다
행동을 더 깊게 바라보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건네받은 사소한 배려들이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자꾸 떠오르곤 한다.
지금 나에게 연애가 꼭 필요할까?
'얼른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야지'
한 번의 연애가 끝나던 순간이 지나고 마음의 평온이 찾아올 무렵 가끔 만나는 이들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가 생겼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내가 어리석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생기곤 한다.
결국 나는 어떤 연애를, 어떤 결혼을 하고 싶은 걸까.
20대의 연애에 나는 어떤 걸 바랐을까.
대화가 잘 통하고, 함께 새로운 경험을 하는 연애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던 순간들에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었던 것 같다. 조금 맞지 않더라도 참는 법을 배웠고, 화가 나더라도 마음을 먼저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보니 30대의 연애는 더 쉽지 않다는 걸 배우는 순간들이 생겼다.
20대 때처럼 그저 '우리'가 좋아서 시작하는 연애는 쉽지 않았다. 쉽게 반하지 않고, 쉽게 용기를 내지도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얼마 전, 우연히 하게 된 소개팅을 앞두고 하루 종일 안절부절못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소개팅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나에게 소개팅은 어렵고 벅차게만 느껴진다. 처음 보는 사람과의 대화가 어렵지는 않지만 '연애'를 전제로 하는 대화는 꽤 어렵게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머리는 멍 - 해지고 몇 시간 동안 나눈 이야기들이 증발되는 느낌이다.
지금 나에게 연애가 꼭 필요할까?
진지하게 나에게 물음표를 던지곤 한다.
결국 마음속에 남는 건,
말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것을.
사실 연애는 내가 억지로 사람을 찾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아서 잠시나마 모든 에너지를 모아 기회를 만들곤 했다.
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있던 에너지마저 점점 사라져 버리는 느낌.
연애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했던 것 같다.
어떤 지인을 만나고 보면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지만 또 어떤 지인을 만나고 오면 모든 에너지가 사라지곤 한다. 사람을 좋아 하지만 사람에게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적인 사람이라서 그럴까. 자연스럽게 약속을 잡고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노라면 다음 약속을 잡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게 되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애도 또 하나의 인간관계이지 않을까.
다시 보고 싶은 사람, 함께 있을 때 에너지가 채워지는 사람.
한정된 에너지뿐만 아니라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잠시 쉬어 가기로 했던 날들이었다. 타이밍을 믿는다는 건 어쩌면 어리석은 일일지 모르지만 또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순간을 마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배려가 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우연한 기회로 삼삼오오 모이던 자리에 나는 조금 늦게 도착했고 인사를 나누던 중에 그분은 빠르게 움직여 컵과 젓가락을 씻어 나에게 조용히 건네셨다. 하하 호호 웃으며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 스쳐 지나가던 이야기들, 낯선 공기와 밝은 기운이 함께 하던 밤이었다.
'저희 라면 먹을까요?'
누군가의 이야기에 겉옷을 벗어 두고 빠르게 움직이던 사람.
불을 켜지 못해 어설프게 움직였지만 그럼에도 웃고 있는 사람이었다.
최근에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그다음 날도 삼삼오오 모이는 자리가 생겼다. 행동에 자연스럽게 배려심이 묻어 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모닥불 앞에 우연히 앉게 되었던 순간,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툭 하고 건네는 순간에 깜짝 놀랐다.
어제 다 같이 이야기하던 과자 취향을 기억하고 툭 하고 건네는 모습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분을 다시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최근에는 내 말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좋다고 생각했다. 내 말을 기억해 주고 다시 물어봐 주는 사람. 근데 말을 기억하고 말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있어도 말을 기억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된 덕분일까.
툭 건네던 과자 한 봉지에 마음이 다정해지는 밤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또 만나요!
어쩌면 얼마 전의 나였더라면 그 사람과 지금 당장 연결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며 그날의 행동들이 단순히 배려였을지 작은 의미라도 담겨있던 건지 궁금했을 테니까.
내가 떠나 오던 날,
우연히 하게 된 연락에 안부를 전했다.
'먼저 올라가게 될 거 같아요!' 작은 도움을 받아 다음에는 커피 한잔을 사겠노라고 이야기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정말 우연히 다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분과 나에게는 다음은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쉽거나 서운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어쩌면 내가 억지로 잡아야 하는 관계라면 억지로 잡는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여전히 그날의 고요하고 세심했던 행동들이 떠오르고 그분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 더 깊게 알게 되었으니까.
삼삼오오 모여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기분 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 누군가 불편하지 않을까 살뜰히 살피는 사람, 듣기를 잘하던 사람. 그럼에도 계속 웃고 있던 사람. 그리고 스쳐지나가던 이야기를 기억해 행동으로 보여주던 사람. 어쩌면,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
나는 조용한 배려와 행동에 마음이 깊게 움직이는 사람임을,
그리고 여전히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배웠던 시간들.
나는 여전히 조용한 배려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