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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청 Apr 15. 2019

코카서스 3국 여행기8

트빌리시의 낮과 밤

자유 광장 근처에 있는 식당은 여행객들에게 잘 알려진 식당이었다. 

식당 입구에는 특이하게도 전통 요리를 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실물처럼 꾸며 놓았다. 할머니의 표정이 복잡해 보였다. 나는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너희들만 맛있게 먹느냐고 째려보시는 것 같기도 하고, 인생의 무게를 고스란히 진채 허전한 듯, 무심한 듯도 보였다. 조지아 전통요리인 ‘킹칼리’와 ‘하차푸리’, 각종 소스와 같이 먹을 수 있는 밥,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맥주와 와인도 주문했다. ‘킹칼리’는 조지아의 전통 만두요리인데, 만두 속에는 고기와 야채 등 다채로운 재료들이 가득 들어 있어 풍미가 좋았고 육즙도 풍부했다. ‘하차푸리’는 ‘치즈가 듬뿍 들어간 빵’이란 뜻으로, 빵 안에 치즈를 가득 넣고, 그 위에 버터나 달걀을 올려 먹는 음식이다. 보기도 좋았고, 맛도 좋았다. 하차푸리는 조지아 여행 중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아제르바이잔과 마찬가지로 조지아도 음식이 푸짐하게 나왔다. 후한 인심에 마음까지 넉넉해진 시간이었다.  

조지아 전통요리인 ‘킹칼리’와 ‘하차푸리’, 각종 소스와 같이 먹을 수 있는 밥,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맥주와 와인도 주문했다. ‘킹칼리’는 조지아의 전통 만두요리인데, 만두 속에는 고기와 야채 등 다채로운 재료들이 가득 들어 있어 풍미가 좋았고 육즙도 풍부했다. ‘하차푸리’는 ‘치즈가 듬뿍 들어간 빵’이란 뜻으로, 빵 안에 치즈를 가득 넣고, 그 위에 버터나 달걀을 올려 먹는 음식이다. 보기도 좋았고, 맛도 좋았다. 하차푸리는 조지아 여행 중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아제르바이잔과 마찬가지로 조지아도 음식이 푸짐하게 나왔다. 후한 인심에 마음까지 넉넉해진 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여행사를 찾아갔다. 유심칩도 바꾸고, 내일 하기로 한  와이너리 투어도 예약했다. 

아제르바이잔에서 사지 못한 딸의 캐리어를 사러 백화점에도 들렀다. 다행히 가방을 판매하는 코너가 있어서, 딸의 소원풀이를 했다. 가장님께서 통 크게 쏘셨다. 본격적으로 시내 구경에 나섰다. 

백화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카슈에티 성당이 있었다. 이 성당은 수도자 다비드가 어떤 여자를 임신시켰다고 비난받았는데, 다비드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며 자신의 말이 틀리지 않다면 그 여자는 돌을 낳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 여자가 실제로 돌을 낳았다는 전설이 담겨있는 성당이다. 유럽이나 남미의 성당에 비해 카슈에티 성당은 규모가 크지 않은 아담한 성당이었다. 겉면도 단아하고 소박했고, 내부도 화려하고 사치스럽지 않은 정갈함에 마음까지 맑아지는 듯했다.   


조지아는 로마의 영향으로 기독교가 전파됐다. 조지아는 그 지리적 위치 때문에 선사시대부터 외침이 잦았던 곳이다. 소위 강대국이라고 하는 나라는 빠짐없이, 지겹게도 침략을 해댔다. 기독교가 전파될 당시에는 로마와 페르시아가 영역 싸움을 벌이고 있어서 조지아는 양 제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미리안 3세는 처음에는 페르시아의 편을 들었지만, 298년 페르시아와 로마가 ‘니시비스 강화조약’을 맺은 후부터는 로마에 충성을 해야 했다. 미리안이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것은 신앙적인 문제보다는 정치적 결정에 가깝다. 로마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즉위하면서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밀라노 칙령(313년)을 공포하고, 군사적 원정 성공에 이어서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이스탄불)으로 옮기고, 콘스탄티노플로 개명했다. 처음에 아르메니아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연이어 이베리아(지금의 조지아), 마지막으로 코카서스 알바니아(지금의 아제르바이잔)가 원시 종교와 조로아스터교를 버리고 콘스탄티노플의 정교회를 받아들였다. 조지아의 기독교 수용 과정에는 여러 전승 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카파도키아 난민 출신인 여자 노예이자 수녀였던 니노가 미리안 3세의 두 번째 아내 나나의 불치병을 치유하고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했다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다.

성당 구경을 마치고 근처 공원으로 나오니 마침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좌판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배지, 엽서, 오래된 카메라, 책, 수저, 술잔, 컵, 동전, 시계 등 골동품부터 다양한 색상의 옷과 액세서리 등이 공원을 꽉 채우고 있었다. 딱히 잘 팔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딱히 마음을 끄는 물건도 없었다. 파는 사람들도 꼭 팔아야겠다는 절실함도 없어 보였다. 햇볕이 따뜻하게 감싸주는 나른한 오후, 야외 공원에 나와서 아는 사람들과 잡담도 나누고, 간단한 음식도 나눠 먹으면서 하루를 즐기는 것 같았다.  


시오니 성당을 찾아서 한참을 헤맸다. 택시를 타기가 애매해서 슬슬 걸었는데, 생각보다는 멀고,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탓에 지루하고 고단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트빌리시 시내를 맘껏 구경할 수 있었다. 트빌리시를 감싸고 흐르는 므츠바리 강은 터키의 카스 지역을 원류로 해서 카스피 해로 빠져나가는 1,515㎢의 장강이다. 강 건너 언덕 위에는 트빌리시의 랜드마크이기도 한 사메바 대성당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고, 강을 가로질러 12세기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메테히 다리가 무심한 듯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근처 절벽 위에는 5세기 말 트빌리시를 세운 바흐탕 고르가살리의 동상도 보였다.

20분을 넘게 걸어서 시오니 성당에 도착했다. 이 성당은 조지아에 가서 기독교를 전파하라는 계시를 받은 성 니노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시오니 성당 십자가에 묶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십자가가 바로 유명한 ‘즈바리 십자가’다. 즈바리는 포도나무라는 뜻이다. 시오니 성당에는 니노의 십자가가 보관되어 있다고 해서 열심히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그새 다른 데로 옮겼나? 여러 번의 훼손과 재건을 거친 성당은 그 상처와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즈바리 십자가를 정신없이 찾아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아들놈이 사색이 되어서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도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뭔가 큰일이 일어난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딸에게 물어보니 메고 다니던 휴대용 가방을 잃어버려서 찾으러 달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휴대용 가방이라면 그 속에 여권 등 중요한 것이 다 들어있을 텐데, 만약에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보통 큰일이 아니다. 허둥지둥 아들을 쫓아갔다. 웬걸, 그 가방은 평소에는 아무것도 들고 다니지 않고, 자기 몸 건사하기도 힘든 가장님께서 떡하니 메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트빌리시 구시가지의 남쪽은 므타츠민다 산이 감싸고 있다. 후일 성인이 된 다윗 가레자가 산기슭의 동굴에서 은거해서 성산으로 유명하다. 트빌리시가 탄생하던 즈음에 처음 만들어졌던 나리칼라 요새와 다윗 성당, 조지아의 명사들의 묘가 있는 작은 판테온도 함께 있다. 정상까지는 ‘푸니쿨라’라고 불리는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었다. 언덕의 가파른 능선에는 ‘조지아의 어머니’상이 시가지를 굽어보고 있다. 1958년, 조지아 건국 1500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20미터의 이 알루미늄 상은 소련의 어머니상으로는 특이할 정도로 부드러운 표정에 미소까지 띠고 있다. 적으로 온 자에게는 칼을, 친구로 온 자에게는 와인을 의미하는 자세라고 한다. 산 위에서 바라보는 트빌리시의 야경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이었다. 마침 달까지 떠서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숙소까지 멀지 않아서 슬슬 걸었다. 밤의 트빌리시는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와 정취가 있었다. 숙소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렀다. 일반 가정에서 만든 와인을 판매하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막걸리와 흡사했다. 그리고 와인 찌꺼기를 증류한 술인 ‘차차’도 있었다. 알코올 도수가 70도 되는 것도 있었다. 나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독주에 유별나게 약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독주를 멀리하는 편이다. ‘차차’ 때문에 나는 또 한 편의 흑역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겠다.

와인과 차차, 우유, 소시지, 과자, 과일, 치즈 그리고 하차푸리 빵도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우리 방에서 조촐한 파티를 하기로 했다. 준비하는 동안 밀린 빨래를 했다. 손가락이 아프다는 뻔한 거짓말로 가장님은 자기 빨래를 슬며시 내 빨래에 섞어버렸다. 컵라면에 북어포, 슈퍼마켓에서 사 가지고 온 것들을 펼쳐 놓고 밤 11시 20분까지 푸짐하고 넉넉한 파티를 했다. 피로를 푸는 건지, 더 쌓고 있는 건지 의문스러웠으나, 이 맛에 여행하는 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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