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묘미(2)

환상의 여행 메이트

by 글몽인

모든 일에 어느 정도 계획을 세우고 윤곽이 잡힌 틀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나다.

감정에 따라, 기분에 따라 즉흥적 이지만 유연한 시간 속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애인이다.


추석 연휴에 떠나기로 한 우리의 광주행 여행 표는 전날 밤 루프탑에서 고기를 먹다 예매하게 되었다. 물론 첫날밤 에어비앤비는 오후에 잡았다. 버스표보다는 조금 일찍...

추가로 연휴에 매진이 뜰 수도 있는 돌아오는 기차표만 조금 일찍 예매했다. 남은 숙소 및 버스표는 일단 떠나고 찾아보기로 하고 이번엔 둘이 같이 밤늦게까지 놀다 잠에 들었다.


일요일 오후에 느지막이 일어나 집에서 밥까지 해 먹고 광주로 떠났다. 경상도에 사는 우리에게 전라도는 멀지만, 항상 여행지로 거론되는 곳이었다. 사실 우리의 첫 계획은 광주 - 순천 - 여수 - 통영이었지만, 마지막 날 기차표가 이미 매진되어 있었고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은 지역을 갔다간,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오겠다 싶어 광주 - 여수로 대폭 줄였다.


광주는 이전에 혼자 살아본 경험이 있어 나에겐 애정이 많은 도시였다. 맛있는 것이 많은 광주는 살기에는 매우 평화롭고 좋았지만, 관광은 갸우뚱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군말 없이 애인의 방식대로 따르는 게 우리의 규칙이었어서 잠자코 따라갔다. 한국 역사를 매우 좋아하는 애인은 5.18 기념관을 들렸고 이후에.. 아무 계획이 없었다. 밥을 먹으러 광주 시내로 옮겼을 때 그때서야 지금이 광주 비엔날레 시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이 여행에 나의 의견이 들어갔다면, 당연히 비엔날레 표를 끊어 여행 코스로 전시를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저녁이었고 표는 없었기에 광주까지 가서 코 앞에서 비엔날레를 놓치게 되었다, 근데 웬걸 애인이 잡은 에어비앤비가 너무 좋아서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산책을 좋아하는 나를 고려하여 5.18 공원 옆에 위치한 숙소를 잡은 배려에 합격점을 주었고 아늑하면서 약간은 힙한? 느낌이 가득한 카페 겸 에어비앤비가 취향을 저격해서 광주 여행이 만족스러웠다. 동시에 만약 내가 일정을 짰으면 여기를 잡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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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정류장과의 거리, 가격 등을 따진다고 가장 합리적인 숙소를 잡았을 것이다. 예상치 못하게 마주친 나의 취향 숙소는 오래 여운을 주었다.


다음날 조식을 먹으며 우리 오전엔 어디가?라고 물으니 "남한산성"이라는 대답을 했다. 광주에 남한산성이 있었나..? 호기롭게 위치를 보여주는 애인의 폰에 찍혀있는 주소는 '경기도 광주'였다. 프렌치 애인이라 가능한 실수에 웃음이 터졌고 '왜 같은 나라 안에 같은 지명을 가진 지역'이 있냐고 열불을 토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장소를 모색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모든 가게가 월요일 휴무인 광주 양림동 펭귄마을과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았던 광주 오리탕을 먹고 터미널 앞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때우다 여수로 넘어갔다. 글로만 보면 실패한 여행 갔지만, 실한 농담 하며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음식에 실패하며 보장된 카페를 찾는 모든 과정이 에피소드로 남았다.


여행의 묘미를 느끼게 해주는 연애가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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