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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 Jan 27. 2024

AI 에듀테크와 원숭이 꽃신

2023 교육박람회를 다녀와서

  개정 전 국어 교과서에 있던 읽기 지문 중에 [원숭이 꽃신] 이야기가 있었다. 신발이 필요 없는 원숭이 마을에 오소리가 와서 꽃신을 나눠준다. 꽃신이 닳을 때마다 오소리는 새 꽃신을 주었고, 그와 함께 원숭이 발의 굳은살은 점차 얇아졌다. 그리고 어느 날 오소리가 말한다. “이제 꽃신을 갖고 싶다면 먹이를 내놔”     


  2024 교육박람회에 다녀와서 든 생각은 ‘우리나라가 교육을 원숭이로 보고 있다.’였다. 박람회는 원래 물품과 서비스를 홍보 및 판매하는 곳이니 금액에 대해 안내되는 것은 당연한 곳이다. 30일간 무료 서비스권을 주고, “3월부터는 유료화가 됩니다.”라고 안내해 주는 게 오히려 유료가 될 것이라고 예고하지 않은 오소리보다 솔직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도 1월에 공문으로 내려온 ‘AI 코스웨어 선도학교’를 신청하는 게 교육적으로 좋을지, 대체 뭐에 쓰이길래 예산이 그렇게 많은 것인지 궁금해서 갔으니 교육서비스에 돈을 받는다고 비판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육박람회의 모든 부스를 다 돌고 나오면서 나는 에듀테크에 질려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코딩 학습을 위한 도구들을 제외한 에듀테크에 질려버렸다. 나를 질리게 한 것은 초3 도형 문항을 푼 AI가 ‘삼각형과 사각형의 공통점은 평행한 변을 가진다는 점이에요.’라고 엉터리 답을 해서 교육 현장에 들어오기엔 멀었다고 생각한 점이 아니었다. 학교에 상담실이 하나도 없는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방음부스를 상담실로 판매하는 현장도 아니었다. 나를 질리게 한 것은 교육박람회 내내 가장 많이 강조된 문구인 ‘교사 업무 경감’이었다.     


  ‘교사 업무 경감’. 이 얼마나 매력적인 문장인가. 내일 당장이라도 교사 업무 경감이 실현된다면 극 I 성향인 나라도 광화문 한복판에서 춤추면서 노래를 할 것이다. 그러나 큰 기대와 다르게 에듀테크가 해소해 주는 건 교사 업무 경감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온 세상에 학교에 각종 업무를 밀어 넣는 세상에 ‘이것이 교사 업무입니다!’라고 유일하게 인정해 준 것이라 감사해야 할까? 에듀테크가 교사 업무 경감을 하는 방법은 ‘교사의 수업권, 평가권’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AI가 차시별 추천 영상과 형성평가 문항을 만들어 주고, 평가 결과에 따라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생성해주는 것은 AI 기술의 활용방안으로 나온지 그래도 2~3년은 된 기능이지만, 이걸 ‘교사 업무 경감’이라고 표현 해서는 안되었다. AI가 교사인 나에게 경감해 주어야 하는 업무는 수업과 평가가 아니라 행정업무였다.     


  그렇지만 이미 극한에 달한 학교에서는 이마저도 단비 같을 것이다. 학교는 꽃신을 너무 오래 신어서 굳은살이 사라진 원숭이가 아니라 매일 살얼음판을 달리느라 너덜너덜해진 발바닥을 가진 원숭이니까. 단 하나라도, 게다가 그것이 원래 교사 본연의 업무를 보강할 수 있는 영역을 감싸주는 것이라면 꽃신이 아니라 짚신이라도 신고 싶은 게 현실이다.     


  이 다음에 쓰는 내용은 근거 없는 망상이다. 수업과 평가권을 사기업에 유료로 외주를 줄 수 있게 되면 교사는 이제 무엇으로 정체화할 수 있을까? 공교육을 정상화하여 교사 본연의 업무를 하고 싶다고 할 때, ‘AI 없는 평가 선도학교’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 어느 날 교육예산이 축소되어서 AI 업체와 계약을 할 수 없게 되면, 전보 내신을 쓸 때 ‘그 학교 AI써?’라고 물어보는 게 문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니들이 말하는 교육 전문성이 뭐냐’라고 반문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져서 교사에 대한 사회적 정의가 다시 되거나, 슬프게도 합당한 답을 찾지 못해 교사는 AI가 대체한 직업이 될지도 모른다. 혹은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학교의 중요성을 교육이 아니라 ‘학생의 사회성과 정서 발달’에서 찾은 사회에 의해 전국의 학교가 교육기관이 아닌 보육기관이 되어버릴지도 할 말은 없겠다. 두 번째 문단에서 언급했듯이 ‘교육’이라는 원숭이의 종말이다.(교사가 아니라 교육이라고 썼었다는 걸 눈치챈 사람이 있었나요?!)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세상에게 죄송하게도 나는 일 처리가 느리다. 학생 24명의 행동특성 및 종합발달을 적는 데에 꼬박 하루 3시간을 쓴다.(미안하게도 뭐라고 작문을 해야하는지 고민되는 학생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AI보다 행발을 잘 쓴다고 자부한다. AI가 발전 중이라고 해도 아마 앞으로도 내가 더 잘 쓸 것 같다. 근거는 없다. 그렇지만 그렇게 믿기 때문에 나는 수업권과 평가권을 쥐고 있을 것이고 더 배우려고 연수를 찾아다닐 것이다. 딱 하나. 나는 빨라질 수는 없어서 통탄스럽다. 뭐, 어쩌겠나. AI를 못 따라가는 느린 학습자가 있다면 나는 그 학생이랑 천천히 걸어가는 것을 택하는 맨발 원숭이로 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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