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공감 수학 대안교과서> 발간에 부쳐
교과서를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은 고된 작업이다. 특히 교과서를 쓰는 것처럼 제한조건이 많고 비평자도 많은 글은 더더욱 어렵다. 교과서의 글은 다섯 부류의 독자 - 학생, 교사, 공저자, 편집자, (검정)심사자 - 를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학생. 학생들이 쉽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교과서를 쓰는 것은 모든 필자의 꿈이다. 둘째, 교사. 그러나 실질적으로 교과서를 선정하는 사람은 교사다. 따라서 교사가 좋아할 만한 - 무엇보다도 수업하기에 편리한 - 교과서여야 한다. 이상적인 교사상을 지향하되 현실적인 교사상을 고려해야 하므로 '교사가 좋아하는 교과서'를 쓴다는 것 역시 상당히 까다로운 미션이다. 셋째, 공저자. 일반적으로 교과서는 혼자서 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한 번에 오케이가 되는 일은 절대 없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초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구겨진 자존심에 중도에 하차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넷째, 편집자. 솔직히 말해 집필자는 교과서가 망해도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지만 편집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업이다. 너무 파격적이어도 안 되지만 너무 평범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많이 팔려야 한다. 다섯째, (검정)심사자. 집필자와 심사자만큼 서로 배타적인 관계도 드물 것이다. 집필자와 심사자는 서로의 '실력'을 의심한다. 심사자는 교과서가 어떻게 이렇게 허접할 수 있느냐고 혀를 끌끌 차지만 집필자는 심사자의 동떨어진 조언에 헛웃음만 나올 때가 있다. 물론 집필자가 '을', 심사자가 '갑'이다. 불합격의 멍에를 쓰지 않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적합성이라는 검열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
교과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
연초에 스키를 타고 왔다. 나의 인생 첫 스키였다. 처음에는 스키화를 신은 채로 플레이트에 결합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플레이트를 11자로 놓고 옆으로 게걸음을 걷듯이 걷는 동작부터 배웠다. 그다음에는 A자로 짧은 거리를 하강하는 것을 배웠다. 쉽지 않았다. 45년간 스키를 탄 적이 없던 신체는 빨리 적응하지 못했다. 반면에 세상을 접한 지 8년 밖에 되지 않는 내 딸램의 신체는 외부의 변화에 훨씬 개방적이었다. 딸램은 금방 익히는 것을 나는 이미 몸이 경직되어서인지 잘 되지 않았다. 포기할까 하다가 야간 자유스키 탈 때 반복적으로 연습했다. 반복 또 반복. 그리고 둘째 날 처음으로 슬로프를 탔다. 경사도가 10도나 되려나? 그런데도 어찌나 무섭던지. 간신히 타고 내려와서 그날 저녁 야간 자유스키 때 또 반복적으로 연습했다. 슬로프의 공포를 기억하면서. 그러다가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고 다시 혼자 슬로프에 올랐다. 그리고 아주 초보긴 하지만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쾌감을 알게 되었다.
수학교육에 있어서 교과서의 역할은 무엇인가? 교육과정-수업-평가 중에서 교과서는 무엇과 가장 깊은 관계가 있는가? 우리가 수학 교과서의 역할을 생각할 때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첫 번째 오류는 ‘자율성에 대한 환상’이다. 스키 장비 다 던져주고 스스로 슬로프에서 내려와 봐라. 스스로 궁리해봐라. 이럴 경우에 슬로프를 내려올 수 있는 학생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이미 선행학습을 한 학생 밖에 없을 거다. 궁리하고 해결할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릴 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문제를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옆에서 “저요. 저요.” 손드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다보면 아무리 멘탈이 강한 학생이라도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수학 교과서의 역할에 대한 두 번째 오류는 ‘연습 문제집’이다. 슬로프에 함부로 오르면 다칠 수 있으니 아래에서 연습에 연습을 반복시키는 거다. 현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의미는 유예된다. 그 어떤 도전의식도 부여하지 않은 채 말이다. 교사가 수업에서 가지는 고민의 지점은 이 두 가지 양극단 어디쯤일 것이다. 게다가 학생들의 눈높이는 얼마나 천차만별인가. 뿐만 아니라 그 눈높이라는 것은 왜곡될 대로 왜곡되어 있다. ‘선행학습’이라는 망령 탓이다. 내가 수업 때마다 겪는 일 중에 가장 씁쓸한 것은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이런 말을 할 때다. “선생님. 제곱근 너무 짜증나요. 어렵고 재미없어요.” 아직 2학년인 학생이 말이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아직 선생님이 가르치지도 않은 걸 가지고 힘들다고 하면, 재미없다고 하면 어떡하니? 일단 선생님과 함께 공부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아.”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다보면 지치고 힘이 빠진다.
교과서의 재구조화
교과서에 대한 고민은 중요하다. 그러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교과서는 없다. 모든 교과서의 맨 처음에는 그 교과서의 목적과 사용방법이 안내되어 있다. 나는 교과서가 그 목적에 맞게 잘 구성되어 있으면 기본적인 목표는 이룬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의 논의는 기존의 교과서의 구성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교과서의 목적을 새롭게 진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생산적인 논의라고 생각한다. 『미래사회 변화 및 학령기 인구 감소 대비 학교교육 진단과 교육방향 탐색』을 보면 현재 우리나라 교과서의 문제점을 크게 네 가지로 범주화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교과서 내용이 시대의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둘째, 디지털 교과서나 디지털 콘텐츠의 활용이 부족하고, 셋째, 교과서가 다양하게 개발되지 못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교과서 개발에서의 자율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위의 분석은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를 근거로 한 것이나 현재 개발이 진행 중인 2015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의 경우 상황이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국정 및 검정으로의 역행으로 인하여 다양성과 자율성의 측면에서는 더 퇴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 지향적인 교과서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 이 보고서에서는 그 방안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다양한 학습자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학습자 중심의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미래 사회 학교 교육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변화된 미래 사회 교육 환경에 적합한 교과서 발전 방안을 탐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교육 환경이 바뀌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교육의 중심에는 여전히 학습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습자의 다양한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는 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가장 중요한 명제가 된다. 현재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용도서 편찬 방향에서도 “일상생활과 연계되어 이해하기 쉽고 흥미를 유발하는 학습자 중심의 교과용도서 편찬”을 강조하고 있으나 당위적 표현을 넘어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서책 교과서와 디지털 교과서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 활용의 교과서가 되어야 한다. 미래 사회 교육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미래 교과서가 다양한 학습자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학습자 중심의 교과서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까지의 서책 중심의 교과서 체제로는 미흡하며 “서책형 교과서와 연계한 디지털 교과서(교수․학습 자료)의 개발로 언제, 어디서나, 자기 주도적 학습이 가능한 교과서 중심 학습 환경 구축”해야 한다. 그렇다면 미래형 교과서는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 교과서 전문가나 교사들은 미래 교과서의 외형 체제를 ‘디지털 교과서에서 진화한 체제’나 ‘서책을 포함한 각종 다양한 매체 중심 체제’로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서책 중심의 기본 교과서 외에 온라인 교사 커뮤니티 및 학생 커뮤니티가 존재하여 가르침을 위한 정보 공유 및 배움을 위한 정보 공유의 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월간 윤종신>*처럼 매월 그 달에 배우는 학습내용과 연관된 흥미로운 실생활 관련 콘텐츠들을 웹진의 형식으로 제공하는 형태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 가수 윤종신의 음반 프로젝트. 2010년 3월 25일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매달 꼬박꼬박 1~3곡씩을 출반하여 현재까지 25개의 싱글이 발표되었다. 이렇게 달마다 나온 음반은 行步라는 이름으로 매년 말 나오고 있다.
셋째,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에 적합한 교과서 구성이 필요하다. 6도의 악몽**과 기술적 특이점***으로 대표되는 경제 사회 구조의 변화와 지구촌 공동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개방적인 사고와 협력적인 태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와 지식을 단순히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서사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다양한 주제를 하나의 교과서에서 다루는 것보다는 각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 교과서를 수업의 필요한 부분에서 활용하는 방식을 고려하거나 교과서를 문제해결 중심 체제로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교과서는 수업의 전개 방식을 고려하기 보다는 학습자의 사고 과정이나 사고 조직의 방법에 따라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 마크 라이너스, <6도의 악몽>. 지구 평균 기온이 6도 상승하게 되면 자연재해가 일상화 되며, 사막이 급격히 늘어나고, 세계의 주요도시들은 물속에 잠긴다. 이러한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수많은 생물종들이 대량으로 멸종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 TS)은 인공지능(AI)의 발전이 가속화되어 모든 인류의 지성을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난 초인공지능이 출현하는 시점을 말한다.
수학교육의 전환
2011 한스 프로이덴탈 메달 수상자이기도 한 캐나다의 수학교육학자 래드포드Luis Radford는 수학교육을 수학의 관점이 아닌 교육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유네스코의 슬로건을 수학교육에 접목한 ‘모두를 위한 수학교육’을 주창할 때 모든 학생들이 수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수학교육의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래드포드는 수학교육이 “공동체의 중요한 쟁점들을 수학적으로 반성할 수 있는 새로운 개개인을 창출하는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역사적인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이러한 논의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학교에서 조장하고 있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양식과 지식의 생산 양식에 대하여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교육의 획일성과 주입식・암기식 교육의 병폐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그런데 획일성이 무엇인가? 그것은 단 하나의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지식이 있음을 가정하는 것이다. 주입식・암기식이란 그러한 지식의 절대적 권력을 교사(기성세대)가 움켜쥐고 학생(미래세대)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획일성을 벗어난, 자율성에 기초한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 져야 하는 것일까? 이는 교육과정과 수업과 평가 모두에 대한 우리의 암묵적인 가정을 의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첫째, 수학교육과정의 전면적인 재구성을 상상해야 한다. 둘째, 학생들의 개인적인 활동과 동료들 사이의 협업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학생들이 지식 생성의 주체가 되는 교실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평가는 변별의 도구가 아닌, 학생의 반성적 실천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틀 속에서 교과서 문제를 바라볼 때 의미 있는 변화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얼마 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에서 마련한 ‘2015 교육과정 개정 취지에 부합하는 수학 검정교과서 개선방안 1차 토론회’ 영상을 보았다. 주제토론에서 여의도중학교의 한 수학교사는 본인은 거꾸로 수업을 진행을 하는데 교과서의 흐름이 거꾸로 수업과 전혀 맞지 않는다. 그래서 교과서가 워크북 형태가 되면 좋겠다는 제언을 했다. 아마도 현장의 많은 교사들이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교사들 사이의 전문적 학습공동체가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교사 전문적 학습공동체의 집단적 산출물을 수시로 업데이트 할 수 있는 일종의 클라우드 시스템도 필요하다. 그러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현재와 같은 입시 위주의 중․고등학교 학습 환경에서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높이고 어떻게든 주어진 문제를 더욱 효율적으로 풀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한 획일적인 형태의 교과서 활용 외에는 다른 형태를 생각해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교과서를 학생들이 채택하게 하면 어떨까? 교사마다 다른 교과서를 선택한다면 어떨까? 이러한 상상이 무책임한 자유주의로 빠지지 않으려면 학교의 공간과 시간의 대폭적인 변화를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교사와 학생이 가르치는 시민과 배우는 시민으로 만날 수 있는 교육주체들 사이의 힘/관계의 새로운 배치agencement****가 이루어져야 한다.
**** 배치agencement는 들뢰즈ㆍ가타리의 개념으로 소위 전문가에 의해 입안된 어떤 절대적 모델이란 존재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교육주체들 사이의 기존의 힘/관계를 해체하는 것을 유일무이한 절대선으로 고착시킨다면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배치는 유한하며 국지적이고 한편으로는 다양하게,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구성주의적 개념이다. 따라서 배치는 국가가 아닌 교육당사자들의 자율성에 근거해야 한다. 이는 학교의 공간과 시간을 배치하는 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대안교과서, 수학교육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길
지난 1월 25일. 사걱세 대회의실에서 <학생 공감 수학 대안교과서 발표회>가 열렸다. ‘학생 공감 수학 대안교과서’는 기존 수학 교과서가 “수학지식을 학생들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이 목표”이며 “교사가 친절하게 개념을 가르쳐주고 예제도 풀어주면 학생이 비슷한 문제를 따라서 풀어보는 방식”으로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수학개념을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출발했다. 이에 반해 사걱세의 대안교과서는 “교사가 수학개념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개념을 발견하고 깨닫도록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5년 다섯 명의 공교육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삶을 위한 수학교육’에 대하여 토론하며 그 속에서 나온 사유들을 <오늘의 교육>에 연재한 바 있다. 이듬해 좀 더 범위를 넓혀 대안교육의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수학교사들과 만났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대안교육 현장에서도 수학교육은 몹시 풀기 어려운 과제였다. 수학은 단지 입시를 위한 도구로 인식되었다. 삶을 위한 수학교육이 과연 무엇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학교육에 대한 고민은 교실 안에서 교실 밖으로, 교과서에서 교육과정으로 이어졌다. 교과서는 과연 삶을 들여다보는 창문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현재의 교과서를 폐기하고 교과서를 대체할 새로운 매체의 탄생을 모색해야 하나? 교과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이 시대에 대안수학교과서가 한국의 수학교육담론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으면 좋겠다. 앞으로 수학 교과서에 대한 좀 더 생산적인 논의가 지속되길 기대한다.
참고문헌
박진용(2014). 미래 사회 교육 환경 변화에 따른 교과서 발전 방안.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이화진(2016). 미래사회 변화 및 학령기 인구 감소 대비 학교교육 진단과 교육방향 탐색.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루이스 래드포드(2016). 사회기호학적 관점의 수학 교수 학습: 대상화 이론. 경문사.
이재영(2018. 1. 25). '공식암기 수학수업은 그만'…학생참여 유도 대안교과서 나와. <연합뉴스>.
* 이 글은 《오늘의 교육》 42호에 실린 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교육의 획일성과 주입식・암기식 교육의 병폐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그런데 획일성이 무엇인가? 그것은 단 하나의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지식이 있음을 가정하는 것이다. 주입식・암기식이란 그러한 지식의 절대적 권력을 교사(기성세대)가 움켜쥐고 학생(미래세대)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획일성을 벗어난, 자율성에 기초한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 져야 하는 것일까? 이는 교육과정과 수업과 평가 모두에 대한 우리의 암묵적인 가정을 의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