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지루함을 견디는 시간

창의 루틴

by 한유신

현대인은 지루함을 피하려고 한다. 대기 시간에 스마트폰을 꺼내고, 몇 초간의 공백도 채우려 한다. 그러나 창의성 연구는 지루함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지루함은 단순히 심심한 상태가 아니라, 뇌가 외부 자극에서 벗어나 내부 생각과 상상을 탐색하는 시간이다.


영국 중앙랭커셔대학교의 샌디 만(Sandi Mann)과 리아네트 캐드먼(Rebekah Cadman)은 참가자들에게 전화번호부를 베껴 쓰게 하거나 단조로운 작업을 시킨 후 창의적 과제를 주었다. 그 결과, 단조로운 활동을 한 그룹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더 많이 냈다. 지루함이 뇌를 자유롭게 방황하게 하여 더 다양한 연결을 만든 것이다.


TRIZ에서는 문제 해결 과정에서 ‘잠복 기간’을 인정한다. 이는 의도적으로 문제에서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이다. 잠복 기간 동안 무의식은 기존 정보와 경험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조합을 시도한다.

디자인 씽킹의 반복 과정에서도 프로토타입 테스트 후 잠시 프로젝트에서 벗어나 관점을 재정비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CID 관점에서는 상상력 훈련 사이에 ‘빈 공간’을 두어 창의적 연상이 무작위로 일어날 기회를 만든다.


과학사에서도 지루함 속에서 아이디어가 태어난 사례가 많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관측 데이터를 분석하다가 오랜 시간 답을 찾지 못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기간을 거친 후 행성 운동 법칙을 완성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특허청에서 단조로운 서류 검토 업무를 하던 시기에 상대성이론의 핵심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저자 경험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특허 아이디어를 구상하던 중, 계속 회의와 자료 조사에 몰두하다가 더 이상 진전이 없던 때가 있었다. 작업을 멈추고 며칠간 아무 관계 없는 일에 집중했다. 돌아와 다시 문제를 보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단순한 해결 방안이 떠올랐다.


지루함을 창의 루틴에 포함시키려면 의도적으로 ‘빈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하루 중 일부 시간을 전자기기 없이 산책하거나, 단조로운 반복 작업을 하거나, 아무 계획 없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시간을 ‘시간 낭비’로 보지 않는 태도다. 지루함은 창의적 에너지가 회복되고 확장되는 휴식의 한 형태다.


지루함을 견디는 힘은 곧 몰입과 상상의 힘으로 이어진다. 공백이 있어야 새로운 것이 들어올 공간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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