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한계
경계라는 단어 뒤에는 위험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경계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래서 경계한다는 말은 조심하라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내 것을 지킨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경계는 늘 방어적인 말처럼 들린다.
위험을 막고, 침범을 막고, 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느낌이다.
경계는 누가 만들어줄까?
결국에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내 주변에 선을 긋고 이 선을 넘어와도 안되고 나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 안에서는 나는 괜찮고 선 밖에서는 너도 괜찮은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경계선을 만들고 산다.
자신이 만든 경계선 속에서는 안심이 된다는 느낌이 든다.
다른 사람이 내가 만든 경계선을 무시하고 불쑥 안으로 들어오면 그야말로 경계하기 시작한다.
저 사람이 왜 저럴까?
나한테 바라는 것이 있을까?
하지만 그 사람은 내 경계선을 볼 수 없다.
그 선을 넘은 것은 나만 알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만들어놓은 경계선을 볼 수 없다.
사람을 만나면 경계를 침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그들의 경계선을 보지 못해 똑같은 경우가 일어날 수 있다.
마치 경계선에 철조망을 쳐 놓은 것 같이 생각하면 된다.
이런 행동을 하니깐 반응이 따끔할 때는 내가 철조망에 찔린 거다.
상대방의 경계선을 서로 침범하면서 보이지 않는 철조망의 크기를 눈치껏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철조망에 찔려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
물리적인 철조망이 아니라 표정, 말투와 같이 보이지 않는 경계를 눈치채지 못한다.
이 경계선은 친한 것과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상대에 따라 경계선의 길이가 달라진다.
어느 사람에게는 경계선이 아주 작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길다.
아무리 친한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각자 자그마한 경계선은 있다.
그리고 친한 사람은 그 경계를 알기 때문에 친해진 것이다.
상대의 경계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제주에는 돌담이 많다.
진짜 돌이 아니어도 돌담으로 벽을 쌓는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돌담을 쌓는다는 말도 하고 주변에 돌밖에 없어 경계를 세운 것이 돌담이라고도 한다.
돌담은 바람이 잘 지나가게 만든다.
완전히 막혀있지 않다.
우리는 경계라고 하면 완전히 막혀있는 콘크리트 벽을 생각한다.
하지만 담에도 공기는 통할 구멍이 있다.
그래서 경계는 정말 막혀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봐서 통과시켜주기도 한다.
경계가 심할수록 아무것도 오가지 못한다.
어쩌면 철저한 검문을 통하면 모든 것이 오갈 수 있다. 단, 허가된 것만 가능하다.
내가 가진 것을 쉽게 내주지 못하고 남이 가진 것을 쉽게 가져오지 못한다.
서로 허가된 것을 주고받는다.
차라리 담으로 내 경계를 표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최근에는 주고받는 대부분은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정보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경계를 만들지 못한다.
내가 걸러낸 정보라고 생각해도 천천히 스며들어 내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얘기하고 많은 곳에서 접하는 정보는 어느덧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다 믿어버리게 된다.
예전에는 경계를 만들어서 내 생각과 내 감정을 지킬 수 있었다.
공기가 통하는 구멍을 적절하게 막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막혀있는 벽이어도 스며들 수 있다.
오히려 내가 세운 경계가 잘 못 된 것이라고 느낄 때도 있다.
경계는 길이보다 높이가 중요하다.
아주 높으면 다른 사람도 날 보지 못하지만 나도 세상을 볼 수 없다.
아주 낮으면 아무도 경계인질 모르고 드나들게 된다.
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경계하면서 내 머리에 들어오는 것은 경계하지 않는다.
아니면 내 생각을 지키기 위해 아주 높이 벽을 쌓기도 한다.
내가 지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지키는 마음은 지킬만한 마음일까?
내가 지키는 생각은 경계할 만큼 가치 있는 생각일까?
난 어쩌면 내 생각을 지키기 위해 내 생각에 갇혀있는 것이 아닐까?
내 마음과 내 생각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날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처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다른 마음과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 생각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다른 생각도 받아들이고 다른 생각과도 섞여야지만 발전한다.
내가 만든 경계는 어쩌면 내 한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