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을 멈추는 힘
리터러시는 문해력이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이 문해력이 상당히 중요했다.
글을 읽지 못하면 정보 자체를 볼 수 없었고,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면 선택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문해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글은 넘쳐나고, 검색하면 대부분의 정보는 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AI는 글을 대신 써주기도 한다.
이제는 단순히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 즉 다양한 형태의 리터러시가 요구된다.
요즘은 디지털 리터러시, 데이터 리터러시, AI 리터러시처럼 리터러시라는 단어 자체가 계속 확장되고 있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럽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해석을 잘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리고 잘못된 문제를 열심히 해석하는 것은 과연 의미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문제를 푸는 속도(Efficiency)에 집착하느라, 문제를 제대로 읽는 법(Literacy)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매출이 떨어졌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이 문장은 문제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기준이 빠져 있다.
작년보다 떨어진 것인지, 지난달보다 떨어진 것인지, 경쟁사보다 낮은 것인지 알 수 없다.
또한 숫자가 없다.
100억에서 99억으로 줄어든 것인지, 100만 원에서 90만 원으로 줄어든 것인지에 따라 상황의 무게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문장을 들으면 각자의 기준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식당이라고 하면 대략 이 정도 매출은 나와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이 이미 머릿속에 있고, 그 기준을 바탕으로 “이제 장사가 안 되는구나” 같은 판단을 먼저 내린다. 문제는 그 기준이 어디서 왔는지 스스로도 잘 모른다는 점이다. 상권을 분석한 것도 아니고, 규모를 비교한 것도 아닌데도 그 기준은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그래서 같은 문장을 두고도 반응은 완전히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겨우 1퍼센트 떨어진 걸 가지고 무슨 문제냐”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1억이 줄었다고?”라고 말한다. 같은 상황인데도 문제의 크기가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매출이 1억 줄었다”라고 하면 큰 문제처럼 들리고, “매출이 1퍼센트 감소했다”라고 하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은 같은 상황인데도 문제는 사실 그대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미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고, 어떤 틀로 해석되면서 우리 앞에 놓인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문제를 인지하기 전에 이미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매출이 떨어졌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이미 ‘안 좋다’는 결론을 먼저 떠올리고, 그다음에 숫자를 확인하며 그 판단에 맞게 상황을 이해한다.
인지 후 판단이 아니라 판단 후 인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를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내린 판단을 확인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 “심각하다”라고 생각하면 뒤에 들어오는 정보도 심각한 쪽으로 읽고, 처음에 “별일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같은 정보도 그렇게 받아들인다.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처음 떠올린 생각을 확인하는 셈이다.
나는 가끔(?) 아재개그를 하는데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내가 다시 “이게 왜 웃기냐면…”이라고 말하면서 맥락을 풀어줘야 비로소 개그가 완성된다.
나는 내 개그를 댓글개그라고 부른다. 던지고 끝나는 게 아니라, 설명해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가만히 보면 문제를 읽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은 문장을 그대로 읽고, 어떤 사람은 그 안의 전제를 바꾸면서 읽는다.
전제를 바꾸지 못하면 개그는 작동하지 않는다.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문제를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기준을 덧씌워서 읽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같은 말을 듣고도 전혀 다른 문제를 떠올리고, 같은 숫자를 보고도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나는 문제 리터러시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되었다.
문제 리터러시는 문제를 푸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읽는 능력이다. 여기서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 안에 어떤 기준과 어떤 판단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 번 멈춰보는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기준으로 이 문제를 보고 있는가, 이 문제는 왜 문제로 설정되었는가, 정말 해결해야 할 문제인가를 다시 묻는 것이다.
우리는 문제를 읽기 전에 이미 판단한다.
문제 리터러시는 그 판단을 잠시 멈추는 힘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문제 앞에서 한 번 멈추는 이 힘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