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함정들

문제 잘 못 보기

by 한유신

우리는 흔히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누구보다 빠르게 답을 찾고 해결하고 먼저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유능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답을 보고 달려가지만 그보다 앞에 있는 것은 보지 못한다.

우리가 출발할 때 진짜 문제에서 출발했을까?
틀린 문제에서는 옳은 답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검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으니깐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감정, 위치를 통해 문제를 본다.
문제를 보는 것도 고정관념이 있다.

같은 상황을 보아도 문제는 각각 다르게 느끼고 어떤 사람은 질문을 던지고, 다른 사람은 빨리 결론을 내린다.
아직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이미 다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얼마나 잘 못 생각하는지를 연구한 몇 가지 법칙과 효과를 찾아봤다.
단순한 심리학 용어나 조직이론의 이름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를 어떻게 잘못 읽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더닝-크루거 효과가 있다.
능력이 부족할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향이다.
이 효과는 단순히 실력이 낮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금 틀리게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다는 점이다.
조금 아는 사람이 오히려 쉽게 단정하고 복잡한 문제를 가장 먼저 단순화한다.
“그건 그냥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는 정말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깊이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다.
문제를 모르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모르는 부분은 문제인지 조차도 모르고 지나가게 된다.


여기에 확증편향이 더해진다.
사람은 문제를 분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믿고 있는 생각을 확인하려는 경우가 많다.
직원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직원 실수만 보이고, 시장이 안 좋다고 믿으면 모든 것이 부정적인 신호로 들어온다.
문제를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려놓은 결론을 지지할 증거를 찾는 셈이다.
신기하게도 그런 관점으로 문제를 보면 이상하게 모두 맞아떨어지게 되면서 그 순간 문제 탐색은 멈추고, 자기 확신만 더 단단해진다.


프레이밍 효과도 있다.
같은 현상도 “매출 감소”라고 부를 때와 “충성고객 이탈”이라고 부를 때 전혀 다른 문제처럼 느껴진다.
“실패율 10%”와 “성공률 90%”가 같은 의미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은 전혀 다른 감정과 판단을 갖는다.
문제 정의는 단순한 설명이 아니고 무엇을 문제라고 부를 것인가를 정하는 순간, 이미 생각의 방향도 함께 정해진다.


처음 들은 말이 끝까지 기준이 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것은 앵커링 효과다.
첫 회의에서 누군가 “이건 비용 문제입니다”라고 말하면, 이후의 논의는 계속 비용이라는 틀 안에서 맴돌기 쉽다.
정말 비용 문제인지, 구조 문제인지, 사람 문제인지, 혹은 전혀 다른 질문이 필요한 상황인지 충분히 살피기도 전에 하나의 해석이 닻처럼 내려앉는다.
생각은 자유로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처음 던져진 말에 꽤 오래 묶인다.

프레이밍 효과와 비슷한 것 같은데 어쩌면 앵커링 효과를 활용해 프레이밍 효과를 유도할 수도 있다.


최근에 겪은 강한 사건 하나가 전체 현실을 대표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듯이 우리는 데이터보다 기억에 더 쉽게 끌린다.
이것이 가용성 휴리스틱이다.
클레임 한 건이 마치 전체 고객의 문제처럼 느껴지고, 뉴스에서 본 사건 하나가 현실의 확률보다 훨씬 더 큰 위험처럼 보인다.

이때 우리는 구조와 빈도와 같은 데이터를 보는 대신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은 사례에 끌려간다.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판단을 방해하는 것이다.


문제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순간에도 사람은 쉽게 방향을 바꾸지 못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들인 시간과 돈과 노력이 아깝기 때문이다.
이것이 매몰비용 오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앞으로 무엇이 맞는가인데 사람은 자꾸 과거의 투자를 정당화하려 한다.

본전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 되는 프로젝트를 계속 붙잡고 있고 틀린 전략임을 알면서도 수정하지 못하고 수습하게 된다.
현재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 선택을 지키는 일이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시간이 많다고 해서 문제를 더 잘 보게 되는 것도 아니다.
파킨슨 법칙은 일이 주어진 시간을 다 채우도록 팽창한다고 말한다.
핵심은 단순한데 회의가 길어지고, 본질은 짧은데 보고서 형식이 커진다.
문제를 푸는 데 시간이 쓰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다루는 절차가 비대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회사를 다니면 파킨슨 법칙을 절실하게 체감하게 된다.

보고서 만드는데 시간 여유가 있으면 글자체와 줄간격을 트집 잡게 된다.

다른 버전으로 작성하고 수정하다가 마감일이 다가오면 그래도 처음 버전이 제일 좋다고 결정해 버린다.

항상 우리가 바쁜 이유다.


조직에서는 피터의 법칙도 문제를 왜곡한다.
사람은 성과 기준으로 승진하지만 승진한 자리에서 필요한 능력은 준비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지만 실무를 잘하던 사람이 관리자가 된 뒤 문제를 보는 능력이나 구조를 읽는 힘은 충분하지 않아 조직관리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를 다뤄야 할 자리에 있다고 해서,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에서는 한론의 면도날이 필요하다.
악의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굳이 악의로 해석하지 말라는 원칙이다.
답장이 늦고, 자료가 빠지고, 말투가 차갑다고 해서 우리는 너무 빨리 의도를 상상한다.

상대방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자기 기준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일은 악의가 아니라 실수와 무지에서 비롯된다.
세상에 실제 악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악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증거도 없이 가장 최악의 해석을 선택하는 순간 문제는 사라지고 감정만 남는다.


생각을 정리할 때는 오컴의 면도날이 필요하다.
같은 정도로 설명이 가능하다면 더 적은 가정을 가진 설명을 먼저 보라는 원칙이다.
사람은 종종 문제를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든다.
단순한 오류를 거대한 의도로 설명하고 기본적인 누락을 지나치게 큰 이야기로 부풀린다.
복잡하게 해석하면 생각이 깊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한 곳에 있다.
깊이 있는 해석과 쓸데없이 복잡한 해석은 우리를 본질보다 해석 자체에 빠지게 된다.


이 여러 법칙과 효과를 보면 사람은 문제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수준과 자기 믿음, 자기감정, 자기 위치를 통해 문제를 본다는 사실이다.
문제 해결보다 더 먼저 필요한 것은 해결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보는 눈에 대한 점검일지도 모른다.

내가 문제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정말 문제인지 내가 너무 쉽게 이해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지는 않은지, 처음 들은 말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과거 기억에 남는 사건 하나를 전체 현실처럼 다루고 있지는 않은지, 이미 투자한 것이 아까워서 틀린 길을 계속 가고 있지는 않은지, 상대를 오해하고 문제를 실제보다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검증해봐야 한다.


결국 문제를 잘 본다는 것은 똑똑한 답을 빨리 내는 능력보다, 내 생각이 얼마나 쉽게 나를 속일 수 있는지를 아는 능력에 가깝다.


문제를 보고 바로 해결하려고 달려가기 전에 달려가야 할 문제인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한다.

틀린 문제에서는 옳은 답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