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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유신 Apr 06. 2019

아이사슴은 아무도 안 사요?

아이 디어(deer)는 제값을 못 받는가?

트리즈 전문가로 회사를 다니면서 많은 컨설팅을 진행해왔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현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화된 콘셉트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 정의부터 분석도 하고 아이디어도 만들어보고 아이디어가 적용될 수 있는지 검토도 하고 다른 요소들과도 추가 문제가 없는지 예측한 후에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다.

이런 컨설팅 과제를 진행할 때는 문제를 제시한 팀에서 담당자와 문제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 나가면서 정보를 수집하면서 함께 일하는 트리즈 전문가들과 분석을 한다.

문제 분석은 유사 제품 분석은 기본이고 관련된 국내외 특허 분석도 해야 하고 근본 원인 분석도 진행한다.

문제를 주는 사람들은 이미 문제를 의뢰할 때 어느 정도는 해결안이 있는 상태이다. 문제가 생기자마자 바로 컨설팅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 초기 단계는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해 볼 때는 간단한 문제이다. 문제를 듣자마자 아이디어는 떠오른다. 신기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아이디어는 대부분 이미 적용해봤거나 실패한 아이디어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문제가 쉽고 어려운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까지는 최소 3개월이 걸린다.

3개월을 기다릴 수 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과제를 시작하고 1주일 지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는지를 물어본다. 3개월 후에 구체화된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얘기한 것을 금방 잊어버리나 보다.

매주 아이디어가 나왔냐고 물어보기 때문에 아이디어 방향성에 대하여 얘기를 한다. 이런 방향으로 아이디어가 해결되면 되는 것인지요?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요?


사람들은 트리즈 전문가는 문제를 듣는 순간 바로 해결해 준다는 이상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아니면 그 신념이 나한테만 적용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제를 하기 위해 과제 담당자를 만난다. 문제에 대하여 20분 정도 설명해준다. 이때 문제는 아주 다양했다. 내가 그 분야 전문가는 아닌데도 대략 20분 설명하고 끝이다. 하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서 난 유사한 과제를 많이 했기 때문에 대충 말해줘도 이해는 한다. 여기서 설명을 좀 더 자세히 해 달라고 하면 안 된다. 그다음부터는 아주 지겨운 시간이 펼쳐질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굳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20분 간 설명이 끝난 후에는 바로 아이디어를 달라고 한다. 하지만 항상 제한 조건은 있다.

추가적인 돈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재료비 또는 공정 제조비는 추가로 상승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조용히 킹스크로스 역 9와 3/4 승강장으로 가라고 한다. 거기에는 호그와트 급행열차가 있다고 얘기한다.



20분 설명 듣고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머글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가 과제가 되기까지 내부적으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노력을 통하여 나온 아이디어가 많은 것이다. 단 적용된 아이디어가 없기 때문에 과제로 나한테까지 온 것이다. 


이런 과제를 듣고 대략적인 견적을 내야 한다. 일단 아이디어는 하루에 나올 수도 있고 1년을 투자해도 안될 수가 있다. 하지만 컨설팅 계약이 시작되면 무조건 만들어 내야 한다. 

문제 해결 프로세스와 과제 난이도를 보면서 기간 및 투입 인원을 정해야 한다. 보통 수준 과제는 2명이 3달 정도 진행하면 구체화된 콘셉트가 나오게 된다. 이후에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설계를 하고 샘플을 만들고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3개월 후에 나온 아이디어는 최첨단 기술이 적용되면서 신소재로 바뀌고 인공지능이 되고 빅데이터와 블록체인이 적용되는 엄청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제한 조건이 추가 비용 없는 것이다.

노트북 마우스가 만원인데 엄청난 기술과 소재가 적용되어서 천만 원이 되면 좋은 아이디어인가?

3개월 후에 나오는 아이디어를 듣고 나면 대부분 사람들 반응은 나도 그거 생각해본 거라는 것이다. 그럼 생각했을 때 하지 왜 안 해서 나를 힘들게 만들었을까?


과제를 수행하면서 컨설팅 비용을 받아야 한다. 

보통 과제 수행 전에 일정 부분을 선수금으로 받고 과제가 완료되면 잔금을 받는데 조건은 아이디어가 만족스러울 때 아이디어를 준다는 것이다.

과제를 시작하기 전에 어떤 아이디어가 있는지 제시하라고 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아이디어를 내는 과제인데 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제안으로 아이디어를 먼저 보여달라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무슨 냉동 만두도 아니고 먼저 아이디어를 시식해보겠다는 것이다. 


결론을 모르기 때문에 먼저 결과물을 달라는 것인데 결과물도 모르면서 모델하우스만 보고 몇 억은 내지 않는가? 물론 한 번에 내지는 않지만 그래도 입주하기 전에는 다 주고 들어간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아이디어를 그냥 쉽게 가져가려고 한다. 내 아이디어를 모두 특허로 등록해 놓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잘 못 얘기하면 그냥 아이디어만 뺏기는 것과 같다.


아이디어는 아직 어린 사슴이다. 아이 Deer.

사슴을 사는 사람은 녹용을 얻으려고 살 것이다. 아니면 그냥 애완용으로 키울 수도 있다.

사슴이 아이 때는 아직 얼마큼 성장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아이디어도 마찬가지이다. 세계를 바꿀 제품이 되는 아이디어인지 아니면 그냥 현실성 없는 아이디어인지는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사슴과 마찬가지로 일단 사야 된다.


아이디어는 사슴과도 같이 성장한다. 
아이 deer - 청소년 deer - 어른 deer


아이 때는 아직 가능성만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랑과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할 때이다. 실수도 많이 할 때이고 하나씩 배워갈 때이다. 대부분 스타트업 회사들이 시작할 때 가졌던 아이디어이다. 

문제 해결할 때도 아직 방향성과 대략적인 윤곽이 나오는 것과 같다.


다음은 청소년 사슴이다. 이때는 상당히 문제가 많다. 청소년 사슴은 반항도 많이 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 통제가 되지 않는 단계이다.


어른 Deer 단계에서는 예측 가능한 행동을 한다. 대부분 스스로 해결하고 알아서 행동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른 사슴에서도 돈을 주지 않는다. 녹용을 잘라서 포장해와야지 돈을 준다.

그래서 아이디어 컨설팅이 어렵다. 될지 안될지 모르는 일에 내 자원을 투입해서 녹용까지 포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로 하면 그냥 직접 하는 게 더 편할 수도 있다. 녹용 장사를 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다른 사람 생각을 보는 것은 영화 예고편과 같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고편을 보고 비슷한 영화를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고편도 조심스럽게 보여줄 수밖에 없다.


아이디어에 돈을 내고 싶지 않은 것은 손에 잡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디어를 랜더링 하고 샘플을 만들어가야 입금이 되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좋으면 대가를 지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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