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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세호 Aug 31. 2020

전생 체험

하나 둘 셋 레드썬

  

알겠어?


  창문 밖에서 늦은 간격으로 건물 모서리에 맺힌 굵은 물방울이 합쳐지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낮부터 쏟아지던 비가 그친 것 같다. 시선을 밖으로 옮겼다. 미대생이 유화물감을 쏟았는지 거리의 색감이 짙고 선명했다. 전봇대의 주황 불빛이 방안을 비춘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고 그 위에서 하맹이가 평온하게 잠들어있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를 향하고 있다. 모든 조건이 갖쳐졌다. 지금이다. 과거로 갈 기회다. 지금부터 난 유튜브를 통해 전생으로 갈 것이다. 


  얼마 전 카페에 친구가 왔다.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던 중 친구는 나에게 유튜브로 전생 체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헛소리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사실 듣는 순간부터 해봐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었다. 육감적으로 오늘이라 느껴진 나는 유튜브에 전생 체험이라 검색하고 조회수가 가장 높은 동영상을 눌렀다. 영상에서 시키는 데로 눈꺼풀에 힘을 풀고 천천히 눈을 감았고, 심호흡을 여러 번 반복했다. 10분쯤 호흡을 하며 몸을 이완시키는데 집중하니 정신이 몽롱해졌다. 현실과 꿈의 중간 정도의 단계에 들어선 것 같았다. 무튼 지금은 방안에 있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봤다. 맨발이 보였고 고개를 들어 시선을 옮기자 넓은 초원 한가운데 서있었다. 이른 아침인지 하늘은 회색빛이었고 풀내음이 진동하며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아있었다. 잠시 뒤 멀리서 선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 목소리가 당신을 전생으로 인도할 겁니다." 유튜버의 목소리 일 것이다. 목소리가 시키는 데로 초원을 걷다 보니 동굴 앞에 서있었다. 동굴로 들어가기 전 유튜버는 나를 인도해줄 동물을 상상하라고 말했다. 하맹이를 떠올릴지 전에 키웠던 까만 강아지를 생각할지 고민했다. 전생으로 가는 거니 현생에 있는 하맹이보다 과거에 키웠던 까만 강아지를 떠올리는 게 나은 선택인 것 같았다. 잠시 뒤 눈 앞에 검은 물체가 보였다. 아마도 까만 강아지 같았다. 강아지와 함께 동굴에 들어갔다. 저 멀리 티끌만 한 불빛이 보였다. 강아지와 함께 더디게 커져가는 불빛을 향해 하염없이 걸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눈 앞에 불빛이 꽤나 커져서 눈이 부셨다. 눈이 시려 미간을 찡그리려고 할 때쯤 이번에도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빛으로 나가면 전생이 시작될 겁니다. " 나는 크게 숨을 들여 마시고 빛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머리에 무언가 강하게 부딧쳤다. 


  눈을 떴다. 이마에 희미하게 손길이 느껴졌다. 전생에 돌입한 건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주황 불빛이 도는 방안이 보인다. 굵은 물방울이 합쳐지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내 방이었다. 냉장고 위에서 곤히 잠들어있던 하맹이가 보이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니 침대 끝에 앉아 날 노려보고 있다. 전에 키우던 검은 강아지를 떠올린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내 이마를 후려친 앞발을 혀로 몇 번 핥고 다시 나를 보며 눈을 깜박인다. 아마도 이런 말을 한 거였을 것이다. 


"인간아 현생에나 집중하며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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