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스피스 병동에서
2010년, 나는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라는 책을 읽었다.
췌장암 선고를 받은 교수가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이루며 여생을 보내는 이야기였다.
나는 단시간에 그 책과 사랑에 빠졌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나에게 죽음 앞에서도 꿈을 놓지 못하는 사람은 처음이었으니.
그리고 2016년, 아버지는 췌장암을 진단받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내가 그 책을 사랑한 탓일까?'하는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다.
아직도 어머니께 전화를 받던 그 시간을 잊지 못한다. 고등학교 3학년, 수시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해가 비스듬해지고 그림자가 길어질 시간쯤에 나는 학교에 있었다. 전화가 울렸고 대수롭지 않게 교실 밖 복도로 나왔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전화가 연결되고 가벼운 몇 마디의 인사가 지나는 동안 발걸음을 옮겨 중앙 광장으로 나와 있는 나였다. 유리 창문 틈으로 해가 쏟아져 눈이 부시던 게 선명하다.
"아빠가 지금 서울에 와있어. 부산에서 병원을 갔더니 서울로 가보라고 해서 어제 올라왔어."
이 말부터가 이미 마음을 떨어트렸다. 나의 부모님은 여태껏 나에게 비밀을 만든 적이 없었다. (아마 내가 모를 정도로 치밀한 비밀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부모님께서 말도 없이 서울에 올라와 계시다니. 가벼운 일은 아니겠다는 마음에 스스로 심장에 냉수마찰을 하는 생각을 했다.
"췌장암이래."
애석하게도 심리적 냉수마찰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췌장암이라니, 내 예상치에 한참을 빗나가버린 말이었고 현실이었다. 별다른 설명을 듣지 않고도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 강의>에서는 랜디 포시 교수의 복부 CT 사진과 함께 소리 없이 찾아오는 췌장암의 위험성과 고통을 실랄하게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실 앞에서 벗어난 사람없는 중앙 광장의 위치 선정은 무의식중에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나는 곧장 울음을 터뜨렸고, 수화기 너머에서는 당황한 부모님의 기색이 역력했다. 전화를 끊기 전 마지막 말은 하던 공부 마저 하고 내일 보러 오라는 말이었다. 나는 참 이상하다. 눈물을 쏟아내는 와중에도 부모님 말씀은 잘 들었다. 집에서 고작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입원에 있는 아버지를 보러 뛰어가도 모자를 판에 그날의 나는 왜 그리도 말을 잘 들었을까. 나는 밤 9시까지 자리를 지켰다. 물론 눈물을 멈추려 노력하진 않았다. 눈이 붓고 코를 훌쩍이는 나를 보던 선생님은 영문을 모른 채로 우선 달래보자는 생각이었는지 대뜸 떡볶이를 사 오셨다. 공부를 마저 하고 오라는 말이 마음에 박혔던지라 그냥 집에 가는 게 어떻겠냐는 선생님의 말씀은 사실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날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로부터 2년 6개월 후, 아버지는 떠났다.
그리고 나는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본 목격자가 되었다. 목격자는 자주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으며 기억을 더듬어 아버지 같은 좋은 어른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남겨진 목격자는 그때의 기억과 시간을 이렇게 남겨두려 한다.
2016년 6월 11일 오전 9시 20분
11시 50분 대기실 입실
1시 수술실 입실
10시 수술 끝
새벽 1 시 반 12층 도착
메모장 한켠에 남겨뒀던 시간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이유 없는 행복만이 그대에게 찾아가기를 바라며 - Lee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