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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색 Mar 26. 2023

과정

21년 5월쯤 백수였을 때

  지나온 과정이었으리라 여기면 좀 나을까 싶다. 저만치로 떠나간 나의 뒷모습을 이따금 뒤돌아보며 내일로만 나아가는 시간에 등 떠밀린다. 과거의 나는 어쩌면 하나같이 그리도 못났을까? 잘한 일을 찾기는 어렵고 기준에 못 미치는 평균 미달의 꼬락서니를 벗어나기도 참 힘들었다. 아직도 어설픈 주제에 나이만 서른 중반이나 먹었으니까 몰래 세상살이 다 아는 척을 하고, 남 보기에 부끄러울 행동은 삼가고, 사회 부적응자로 보이지 않게 평범한 시민인 냥 위장도 한다. 나름대로 평균의 인간상을 흉내내어 동떨어지지 않으려고 할 수 있는 만큼은 한 것 같으나 그래보려 할수록 뒤로 당겨지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아무리 멀리 달려나가도 고무줄에 묶인 것처럼 본래 자리로 끌려고 만다.


  자기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말고 위로도 좀 해주어야 한다고도 한다. 내가 나를 위로해주고, 내가 나를 기다려주고, 내가 나를 좀 더 사랑해주라고 한다. 글쎄, 그럴 필요가 있을까? 충분히, 오히려 지나치게 내가 나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어서 자기연민과 피해의식과 자의식과잉에 병들어가고만 있다. 환갑이 지난 엄마와 10개월 되는 아기를 키우는 언니가 그만한 세월을 지나오며 배운 것들, 말하자면 사랑, 이해, 기다림으로 나를 위로해준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지지하고 응원해줄게. 함께 기도할게. 빈집에 홀로 앉아 사색하고 지난 일을 곱씹고 괴로워하고 고민조차 싫은 미래를 꾸역꾸역 계획도 해보고, 그럼에도 무엇이든 쓰고만 싶은 마음에 사로잡혀 한참을, 한참동안을 생각하고 읽고 쓰고 지우고 하염없이 시간을 축낸다.


  새로운 직장에 출근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가능하면 빨리 출근하길 원하겠지만 한주를 더 늦춰 5월부터 다니기로 할 것을, 하고 아쉬워한다. 돈 버는 일이 시급하여 또 한 번 미루고 만다, 글쓰기를. 그러나 무엇을 탓할까? 만병의 원인은 게으름이다. 3개월이 되었든 6개월이 되었든 1년이 되었든 마음 잡고 일을 해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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