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와 살 자신이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더는 참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지금이 내게는 매우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선 순간이었다. 포개놓은 옷가지를 가방에 싸는 동안, 엄마는 나보다 더 들뜨고 신나서 조잘거렸다.
다른 형제들은 다 떠나고 이 집에는 나만 남아 있었다. 매번 발목을 붙잡는 엄마의 축축한 눈동자가 가여워서 집을 떠나지 못했다. 집을 떠난다는 건 엄마를 배반하는 행위였다. 형제들은 떠날 만한 사정이 있었다. 떠나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했다. 나는 패배자였기에 이도 저도 아닌 발걸음을 핑계 삼아 엄마를 위험에 내버려두는 비열한 짓은 일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엄마는 구타당하고 있었다. 거의 일주일의 2~3일은 발길질과 방바닥이며 벽에 머리를 짓이고 뺨이 부어터지게 갈김과 아무렇게나 닥치는 대로 잡히는 기물의 과녁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일주일의 7일은 악다구니와 욕설과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같은 악몽이 매주 되풀이되는 집에서 엄마와 나의 일상이라고 부르는 나날이 지금껏 이어져왔다.
그리고 기어코 나도 그럴듯한 핑계를 물고 엄마에게 해선 안 될 짓을 하고야 말았다. 이 집을 떠나겠다고 했다. 친구가 좋은 일자리를 소개시켜줬어. 내가 하고 싶던 일을 배울 수 있대. 보수도 섭섭하지 않을 거래. 친구가 소개해준 사업 파트너를 만나봤는데 이름만 사업 파트너고 함께 일하는 친구나 다름없더라고. 참 괜찮은 사람들 같더라. 인상도 좋고 일도 괜찮고. 그런데 여기서 좀 멀어. 집에서 출퇴근하기는 힘들 것 같아. 그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 게 낫겠더라. 집도 알아봤는데 주변 시세보다 싸고 괜찮은 집이 하나 있었어.
내 소식은 엄마를 기쁘게 했다. 엄마에게 묻고 싶었다. 엄마, 내가 가서 무섭지 않아? 엄마는 웃었다. 왜 웃는 건지는 몰랐다. 나 같은 게 엄마를 지킨다고 집에 남아있다는 핑계가 우스웠던 걸까? 아니면 무섭지 않다는 걸까? 웃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미안해서 그런 것 같다. 미안하고 자기 처지가 우스워서. 우리는 울 일보다 웃을 일이 많았다.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마르지 않았다.
아빠는 내심 내가 성공해서 돈을 왕창 벌어오길 기대했다. 일확천금과 불로소득의 꿈이란 우리 모두의 마음에 심어져 있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끈질긴 욕망 같은 것이다. 막 50대가 된 아빠는 또래 아저씨들보다도 훨씬 젊어 보였다. 단지 내 아빠라서가 아니라, 그도 그럴 것이 일을 원체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아빠에게 일이란 천한 사람의 상징인데 고객이나 상사나 누구에게라도 고개를 숙이는 일은 정신적인 자살행위 같은 것이라서 용납이 안 되었다. 할머니는 아빠를 귀하게 키웠다. 할머니야 아빠의 하녀가 될지언정 아빠는 업어 키운 상전의 아드님처럼 모셨다. 그러나 자라온 생리를 세상이 있는 그대로 받아줄 턱이 없었다. 불행의 역사는 거기서부터 탄생했을 것이다. 게으른 소양만을 그대로 물려주고 떠난 할아버지에게서 코딱지만큼의 유산도 받은 것이 없어 자수성가하지 않고는 아빠의 유토피아는 저 너머의 신기루일 따름이었다.
기개를 지켜야 할 아빠는 자신을 대신할 삼형제를 낳았다. 우리 삼형제가 엄마 손에서 자라는 동안에 아빠는 우리 존재를 망각했다. 우리의 입을 것, 먹을 것이 곤궁할 때면 아빠는 부재했고, 남의 집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온 엄마가 와서도 집안일에 시달리는 바람에 그날 안으로 내야 할 세금을 미처 잊어버려서 “당신이 좀 내고 오지 그랬어요.”란 말을 했다가 집안이 개박살 난 적은 수두룩했다. 엄마의 한 마디 말 속에 아빠를 향한 함축적인 모욕과 멸시가 숨어있었다는 어거지 주장에 엄마가 끝내 굴종하고 인정하고 얻어맞아 망신창이가 된 채로 아빠에게 무릎 꿇고 사과해야지만 소란이 가셨고 아빠는 본래의 권위를 회복하게 되었다. 작은 방에 앉아 숨죽이던 우리 삼형제는 준비물 사게 500원만 달란 소리를 새파랗게 멍든 얼굴로 아침상을 차리는 엄마에게 도무지 할 수 없었다.
집을 떠나는 날, 엄마는 아빠에게 인사드리고 가라 했다. 등 떠밀려 들어간 안방에서는 니코틴에 절은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아빠는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내가 말 걸기를 기다렸다. 가볼게요, 아빠. 어, 그래.
아빠는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저번 날 사업 얘기를 꺼냈을 때 하던 말을 마저 하려는 게 틀림없었다. 순 사기꾼들이나 드글대는 사업이 뭔 줄이나 알고 덤비냐? 집에 한 푼도 없는 거 잘 알 테다. 망해놓고 아빠한테 찾아올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라. 그런 소리에 눈빛으로라도 개겼다가는 뼈가 부러지도록 얻어맞는 게 이 집의 순리라서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키고 앉아있었다.
사업은 무슨, 건방을 떨어라. 애새끼들이 하나같이 정신머리가 없을까?
아빠가 잠시 딴 데를 보는 틈에 엄마와 눈을 마주쳤다. 엄마, 더는 못 참겠어. 엄마가 내 눈을 피해버려 나는 허공에다가 속마음을 분출시켰다. 돌아오는 반응은 무반응이었다. 나는 다시 분노를 뱃속 깊은 데로 밀어 넣었다. 그런 와중에도 아빠는 보수며 복지며 꼬치꼬치 캐묻고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일지를 계산하고 따져보았다. 나는 속으로 아빠야말로 수준급의 사업가 기질을 타고 나셨네요, 하고 비아냥댔다. 그런 속마음이 들키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빠와의 독대를 오래오래 참고 견뎌냈다.
막상 떠난다고 할 때는 태세가 바뀌었다. 오래 아빠를 보아온 나로서는 노련하게 셈을 따져본 줄 다 안다. 혹이라도 큰돈을 벌어 금의환향을 해준다면….
아빠는 하고 싶은 온갖 말을 우리에게 내뱉고 그게 얼마나 우리 맘을 못마땅하게 하는지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를 무슨 성인군자쯤으로 여겼다. 어제 일은 어제 일로, 아빠의 못된 언사도 얼마든지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하해와 같은 마음씨를 가진 착한 아들, 딸이어야 했다.
그러기가 싫고, 그렇지도 않고, 지금껏 핑계거리가 없어서 억지로 버텼다는 걸 알게 되니 하루도 더 이 집에 있을 수 없었다.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정말 엄마와 살 자신이 없어. 나가면 잘 되기나 할까? 잘 되면 엄마를 지옥 구렁텅이에서 구제해줄 수 있을까? 아무런 미래도 보장받지 못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어 나는 집에서 도망 나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