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때를 만들고, 때는 강제성을 가지고 사회를 획일화시켰다. 소속감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집안에서 느껴온 공포심과는 전연 다른 독성물질의 공포심이 사회 구조를 존속시키고 있었다. 위치에 대한, 역할에 대한, 때에 대한, 안정에 대한, 사회적 관념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이 층하가 나뉜 물 속 생태계와 거의 다르지 않게 사회를 움직이고 있었다. 어이없게도 일을 배우면서 일확천금과 불로소득을 꿈꾸는 아빠를 조금은 납득하게 되었다. 사회란 속물덩어리군. 엄마는 이걸 어떻게 견디는 걸까?
창에 비친 가로등불 아래로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퇴근시간이 지나서도 사무실에 남아 바라보는 창밖의 어둠은 유난히 더 한적했다.
고객은 생떼 같은 컴플레인을 걸며 동시에 과한 요구를 들이밀었다. ‘액땜’이라는 단어를 쓰며 요구를 들어주자는 쪽과 ‘재발방지’라는 단어로 강경하게 대처하자는 쪽이 있었다. 정작 고객과 유선 상의 대화를 나누는 건 내 몫이었다.
사업은 친구들의 몫이고 이곳에서는 주된 업무가 잡일이었다. 이들의 사업이란 게 물건을 대량으로 싸게 사와서 좀 더 비싸게 파는 일이었다. 홍보가 관건이라고 했고 나는 필사적으로 홍보 글과 사진을 퍼뜨렸다. 노가다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수십 건의 택배를 부치는 일, 포장재 따위를 구매하는 일, 재고를 파악해두고 보고하는 일, 고객 문의에 답변, 창고 정리 등 아무 기술 없이 몸으로 때우는 일이면 전부 내게 할당되었다. 친구들은 좀 더 세련되고 거들먹거리는 일을 맡았다. 걔들이 뭘 하는지도 사실 정확히는 몰랐다. 전화통화를 자주 했고, 내가 모르는 어휘가 자기들 대화 도중 난무했다. 그런 어휘가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한 방면에서 놀아본 태가 났다. 문외한인 사람에게 다른 세계를 간접 체험하는 기분을 자아내는 데엔 색다른 언어 만한 게 없었다. 아무리 많은 잡일이 주어진다 해도 멀리 나올 가치가 있는 일터였다.
눈발이 더욱 거세질 무렵, 나는 고객에게 마지막이길 바라는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까지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상품의 하자로는 보기 어려우나 고객님의 마음에 들지 않으셨음을 이해하여 조속히 환불 처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보내드린 상품은 원칙 상 선불 택배비를 부담하셔서 돌려주셔야 하지만 이번 건에 한해서만 저희 회사가 택배비를 부담해드리겠습니다. 내일 중으로 반품하실 수 있도록 택배사에 연락해놓겠습니다. 어느 시간대가 가능하실까요, 고객님?
과한 피해보상을 요구하던 고객도 종일 나와의 실랑이로 기운을 다 쓰고 전의를 상실한 터라 인신공격은 거두지 않으면서도 상품을 반품하라는 통보에 응하듯 시간대를 앙칼지게 읊어주었다. 청각이라는 기능이 한스럽고, 귓속이 얼얼해져서 마지막이길 바라는 통화가 비로소 끝나자 친구는 내 한쪽 어깨를 세게 한 번 주물러주었다. 다들 고생했는데 술이나 마실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눈이 많이 와. 어, 정말이네! 언제부터 내렸지? 저녁부터. 꽤 쌓였을 거야. 길이 언덕이라 얼른 가야해. 그래, 얼른 가자. 고생했어, 현주야. 다들 고생했다. 오늘은 이만 가고 이 상품 클레임 건은 내일 회의하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인데 내일 회의라는 말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퇴근시간이 지난 지하철은 평소보다 한산했으나 묘하게도 자리 하나 남지를 않아 문가에 기대섰다. 출출함마저 가신 지 오래라 뱃속은 차갑고 허전한 냉기가 퍼져있었다. 집에 돌아가면 방 불을 켜고 보일러 온도를 올리고 이부자리 위에 한참을 누워있을 생각이었다. 아무에게도 연락 오지 않는 휴대폰을 머리맡에 두고 왜 아무에게도 연락이 없을까 궁금해 하고 허전해 하고 외로워하고 그러다 극심한 심심함이 버거워지면 일어나서 뜨끈한 라면이나 끓여먹을 참이다. 뜨끈한 라면 국물을 떠올리니 침이 고였다. 그래서 계획을 바꿔 집에 도착하면 냅다 옷을 벗어던지고 냄비에 물을 받아 라면부터 끓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물이 끓는 동안 아무에게도 연락 없는 휴대폰을 가지고서 이것저것 눌러 보고 놀다가 라면이 다 되면 라면을 먹으면서 볼 인터넷 영상을 고르고, 라면이 불기 전에 마땅한 걸 못 찾으면 전에 봤던 영상이라도 틀어놓고 라면을 맛있게 먹을 셈이다. 이런 일상을 보낸 지 이제 곧 1년이 다 되어간다.
엄마는 내가 나가고 나서 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했다. 아마 내가 달마다 꼬박꼬박 보내주는 용돈 덕택일 것이다. 그런 말은 서로 안 했지만 안 했다고 해서 모른다는 건 아니다. 너무 당연한 소리를 구태여 안 하는 것뿐이다. 엄마가 조금 덜 맞는다고 해서 행복해졌다는 것도 아니다. 덜 불행해진 건 더더욱 아니다. 아빠는 불로소득의 꿈에 한층 더 가까워지자, 그 맛을 조금 봐놓고도 이때까지보다 더 큰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공부와 기술을 위해 떠난 나머지 형제들, 가사도우미 일을 하는 엄마까지 해서 우리는 아빠에게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갔다. 나는 구멍 난 양말과 다 떨어져 너덜너덜해진 팬티와 형형색색의 주인 잃은 낡은 옷을 떠올렸다. 몸보다 너무 크거나 너무 작거나 너무 구식이라 누구의 옷이라는 소유권이 없어 엄마와 우리 삼형제가 보이는 대로 걸쳐 입던 옷, 그조차도 몇 벌 되지 않아 언니, 오빠와 다툼을 벌인 시절이 생생했다. 그 시절보다는 형편이 나아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불도 켜기 전에 휴대폰에 알람이 울렸다. 엄마의 안부 문자였다. 왜인지 입맛이 뚝 떨어졌다. 차라리 아무에게도 연락이 없기가 낫다는 생각은 왜 들었을까? 잘 지낸다고도 말하기가 싫고 힘들다는 말은 더 하기가 싫어서 답장을 미루기로 했다. 온종일 전화통에 시달렸었지, 차암. 씻는 것도 생략하고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