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불상사

by 미색

지난 일주일 동안 회사의 일과는 평범하게 돌아갔다. 두어 번 야근의 위기가 올 뻔도 했지만 친구들은 지난번의 고생을 들먹이며 먼저 퇴근하라고 선심을 썼다. 그리고 마지막 금요일은 모처럼만에 1시간이나 조기 퇴근을 했다.


토요일은 느지막한 시간까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 헛헛한 속을 달래려 찬밥에 물을 말아 밥 한 술에 마늘장아찌를 한 알씩 오도독 씹어 삼켰다. 가파른 비탈길을 아슬아슬 떨어질 듯 잰걸음으로 내려가 큰길에 있는 창고형 매장에서 kg 단위로 파는 반찬을 두세 가지 사놓고 먹다 보면 물리는 것이 아니라 입이 그 음식물을 거부해서 삼키기는커녕 씹어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어쩌나? 이거라도 먹는 걸 감사해야 한다. 잠을 자고 몸을 씻을 집이 있는 걸, 끼니를 때우는 걸, 돈을 버는 걸, 직장이 있는 걸, 휴일이 있는 걸 일단은 복에 겨운 줄 알아야 한다.


일요일은 일주일의 리듬을 위해 토요일보다는 일찍 일어나서 집안일을 하나씩 해치워갔다. 그리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었는지도 모르겠다. 잠들기는 이르지만 무얼 하기에도 애매한 저녁 시간이었다. 사업 친구 중 한 명에게서 해고 문자가 날아왔다. 더 오래 함께 일해보고 싶었지만 이 일이 너와는 적성에 맞는 것 같지 않아, 너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놓아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앞으로 더 잘 맞는 회사를 찾기를 바라고 너의 미래를 항상 응원할 거라는 긴 문자가 가만히 있던 정신을 두 동강으로 쪼개버렸다. 멀쩡하던 하루가 삽시간에 개수구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 시궁창 물을 뒤집어썼다. 세 친구는 하나같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사람은 전화기를 꺼두었고 한 사람은 통화 연결음만 주구장창 이어졌다. 나 역시 긴 문자를 보냈다. 대관절 이게 무슨 일이냐고 따져 물었다. 세 사람 중 한 사람에게서만 답장이 한참 뒤에 돌아왔다. 자기들도 이런 결단을 내리기가 많이 힘들었단다. 하지만 회사란 자고로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워선 안 된다고 하며 빠른 시일 내로 개인 물품은 챙겨 나가란다. 이 사람과는 대화가 되질 않는 것 같았다. 나머지 두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지 않을까?


월요일, 평소와 같이 출근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에 한참을 서있었다. 어제의 일이 꿈만 같아서 믿어지지 않았다. 짓궂은 장난에 반응이 너무 진지했던 건 아니었을까 염려스러웠다. 꾸물대다가 지각이라도 하면 괜히 책이나 잡힐 것 같았다. 해고 사유는 아무래도 납득이 안 되었다. 1년 동안을 우리 회사가 잘 돌아가도록 톱니바퀴에 기름칠하는 대부분의 잡일을 해치우며 나름 비중이 생긴 참이었다. 고객 상대 같은 정신 건강에 해로운 일도 모두가 마다하는 일이란 일은 내 차지였다는 걸 그애들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스카우트까지 해온 마당에 이제 와서 해고라니 분명 당혹스러운 사안이었다. 쫓아가서 따질 말을 긁어 모으니 용기가 솟구쳤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향하는 불안스런 맘에도 발걸음은 조심성이 없이 재빠르기만 했다.


매일 제 집같이 들락거린 사무실 앞에 도달하자 분기탱천하여 무장단체 테러범에 버금갔던 살의는 어딘가로 일소되고 서늘한 위축감에 문 손잡이도 간신히 손을 갖다댈 정도였다. 첫 출근 날과는 다른 긴장감이었다. 발소리를 내며 들어서는 인기척에도 세 사람은 요지부동이었다. 해고문자는 전부 내 착각이었고, 망상이었고, 꿈이었던가 멍해갔다. 전화통화가 끝난 한 사람이 흘깃 나를 돌아보더니 예의 있는 말로 잔뜩 양념 치던 문자 속의 상냥한 사람은 어디 가고 냉랭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사무실 빈 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자리 위에 쓰던 종이상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손때 묻은 상자쪼가리 하나가 그동안 자기들 뒤나 닦아준 자에게 줄 합당한 보상이었다. 세 사람은 저마다 일에 심취한 척하며 곁눈으로는 잠자코 이쪽을 주시했다. 우선은 흐물거려 쓸모도 없는 종이상자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메고 온 가방에 몇 안 되는 물품을 챙겨 넣었다. 노골적으로 거칠어진 행동에 그제야 좀 관심을 집중 받았다. 실은 뱃속이 이상하게 당겨오고 턱이 덜덜 떨려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처박아 넣는 중이었다. 급여랑 퇴직금, 당장 오늘 내로 보내. 한 사람이 느리게 대답했다. 퇴직금은 계약직이라 없구, 급여는 모레까지 넣어줄게. 계약직이라니? 사대보험 가입해서 세금 떼간 거 아니었어? 사대보험 얘기한 적 없는데? 세금은 소득세 3.3프로 뗀 거지.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으니까 노동청에 가서 물어보든가. 다른 데 취직하려거든 추천서 써줄 수 있으니까 말만 해.


사무실에서 막 나가려 할 때 탕비실에서 바깥 쪽으로 기울어진 그림자가 삐죽 삐져나와있었다. 직원만이 출입 가능한 탕비실이었다. 아무런 언질도 없이 벌써 후임자를 뽑은 모양이었다. 종일 끓어오르는 분노가 삭지를 않았다. 아무 채용전문사이트에 접속해 회사 이름을 검색했다. 아직 채 내리지 않은 채용공고가 떡 하니 올라와 있었다. 경력도 필요 없고, 연령도 상관 없고, 학력도 보지 않는 사무보조인을 ‘급구’한다고 되어 있었다. 누구나 금방 배우는 쉬운 업무이고 야근과 회식을 강요하지 않는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라는 키워드가 달려 있었다. 안타깝게도 봉급이 내가 받던 월급보다 20만 원 적었다. 그러니까 20만 원 때문에 잘렸던 걸까? 보란 듯이 공고를 내리지 않은 이유는 20만 원의 값어치가 아까운 인간이었단 걸 말해주고 싶었던 걸까? 그따위 되먹지도 않은 사람들과 헤어졌다니 차라리 잘 됐다. 사회란 어쩌면 이렇게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거지? 미리 상의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언질이라도 줄 수 있었을 텐데 사람을 이리도 차갑게 내치다니, 미친 것들! 정리할 시간도 주지 않고 내쫓아버리고, 그동안 고생했다는 따뜻한 말 한 마디는커녕 계약직이라 퇴직금은 줄 수 없다고, 노동청에 알아보라는 그런 으름장을 지껄이다니! 부아가 치밀어 오르자 얼굴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두 눈에선 눈물이 솟구쳤다. 눈물 흘리지 마! 안 그래도 실컷 당하고 와서는 질질 짜고나 있어? 이러니까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애들을 괜찮은 사람들 같다고 생각했다. 다 똑같아. 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야. 내 편은 없어. 이 세상에 내 편은 없어.


자기연민은 무섭게 나를 잠식해갔다. 새벽 별이 지도록 잠은 오지 않고 밤새 흐느꼈다. 그러다 심한 두통이 생겼다. 머리가 으깨지듯이 아팠다. 엄마가 싸준 약을 먹고 나서야 점차 두통이 사라지고 아침나절에야 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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