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놓을 데가 없어 나의 배신감과 모욕감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그 애들의 달갑지 않은 태도와 눈빛, 언짢게 만드는 언사와 방식이 자꾸만 되살아났다. 집에 얼마를 보내고 월세를 내고 공과금과 휴대폰 요금이 줄줄이 빠져나갔다. 마음은 더 긴 쉼을 요구하는데 시간은 무뚝뚝하게 제 갈 길을 갔다. 모든 이들이, 시간마저도 제 길을 찾아 가는데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이처럼 작은 회사에서도 잘릴 지경이면 누가 나 같은 걸 받아줄까? 거울을 보고 있으면 어두컴컴한 낯빛이 나부터도 질린다. 뭐라도 내놓을 게 있어야 이력서를 쓸 텐데, 공란으로 남겨둔 빈칸만큼 나는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걸 증명했다.
난 엄마처럼, 아니면 엄마보다 더 못한 삶을 살 것이다. 무능력한 남자를 만나 성적으로나 신체적, 정신적으로 폭력 당하거나 아니면 이대로 골방에서 굶고, 배고픔보다 더한 자괴감에 곯다 죽어서 남들 비위나 상하게 하는 시체가 되는 게 내 말로이다. 내가 아무렇게나 죽고 나면 엄마는 그래도 연명하며 죽을 때까지 아빠에게 부려지겠지. 엄마, 엄마는 왜 태어나서 나 같은 걸 낳았어?
그나마 엄마가 나보다 낫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예뻐하는 막둥이였다. 엄마는 할머니를 일찍 여의고 홀아비가 된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할아버지는 자식들 시집, 장가를 다 보내주었다. 처가 덕이나 보려던 아빠의 소박한 꿈과 엄마의 든든한 기둥은 엄마가 첫째 언니를 낳고 얼마 안 되어 무너져버렸다. 할아버지가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시고 남은 집과 밭뙈기는 외삼촌이 가져갔다. 그동안 할아버지를 돌보고 장례 치르는 비용까지 전부 대준 외삼촌이 가지는 게 당연하다고 엄마는 그랬고, 장녀인 이모는 외삼촌과 사이가 틀어졌다. 그때도 아빠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효녀 행세를 해서 집안 다 말아먹는 년이라고 엄마를 두들겨 팼었다. 엄마도 그때는 실성한 사람처럼 아빠에게 덤볐다. 외할아버지를 보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정말로 실성이라도 할 듯 엄마는 그 무렵 자주 울었다.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아빠 끼니는 다 챙기고 다니는 일도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아빠는 삼시세끼 중 한 끼라도 거르면 위장에 욕창이 나는 사람인지라 점심마다 엄마를 불러다 밥을 차리게 했다.
고교 졸업 학년에 나갔던 현장실습이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아 자격증이라도 따려고 집에 있는 동안엔 내가 대신 아빠 밥상을 차려드려서 엄마는 먼 길을 오가지 않아도 되었다. 집안 살림과 경제를 다 책임진 데다 아빠 시중을 드느라 평범한 직장은 꿈도 꾸지 못했던 엄마가 그제야 본인 점심을 챙겨먹었다. 점심을 급하게, 가볍게 먹던 습관이 오래되어 가만히 앉아서 점심을 먹기가 불안해졌다며 웃는 엄마였다. 그래, 그런 어처구니없는 웃음, 엄마는 그런 웃음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자격증 공부를 하던 도중에 동창의 제안으로 도망 온 도심 한복판에서 나는 소박맞아 허름하게 울기만 했다. 울지 않은 날에는 멍청히 누워서 이 집을 가만 둘러보면 여기도 참 어처구니없이 웃을 게 많았다. 옆집 벽에 가로막힌 그늘진 창문, 검은 곰팡이와 누런 벽지의 땅따먹기 전쟁터, 쥐 오줌이 점령한 천장, 그리고 이런 데서 사는 사람이 나라서 퍽 어울렸다. 이 동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내 또래는 죄 나처럼 생겼고, 아저씨, 아줌마들은 내 이모, 삼촌 같았다.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아버지는 다 동일인일 것이다. 내 생각이지만 일리가 있었다. 재벌가도, 잘나가는 정치가도 다 한 가족, 한 뿌리, 한 모체를 둔 것처럼 여기 사는 우리도 처지가 비슷하겠다. 이리저리 고부라진 골목길 혈통의 족보가 우리를 얽어매고 고만고만한 형편에서 떼 지어 살게 했을 것이다.
언니, 오빠는 여기 사는 다양한 종족 중에서 한 부류의 종족이 택했을 그런 선택을 했다. 운명을 따르는 자, 거스르는 자, 바꿔치기한 자, 엉뚱한 길로 빠진 자, 피하는 자, 거부하는 자 등등 어찌됐든 태생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갖가지 묘책을 인생의 거창한 목표로 삼는 부류였다. 아무런 야심도 없고 계획도 없는 나와는 달랐다. 어려서부터 우리 셋은 닮은 데가 없어 서로에게 큰 정도 느끼지 못했다. 언니와 오빠는 막내인 나를 예뻐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고 정을 주지도 않아서 데면데면하기만 했다. 여느 집처럼 소유권 다툼을 벌이고 나서도 승자만이 남을 뿐 화해라든지, 사과라든지 그런 낯간지러운 절차는 생소했다. 미안해, 고마워, 같은 말은 텔레비전 드라마 속 대사로만 알았다. 우리 집의 풍토가 당연한 줄 알고 있는 나는 학교에서도 친구를 못 사귀었고 늘 겉돌았다. 나를 취직시켜준 친구는 동창이긴 했으나 학교가 아닌 실습하러 나간 현장에서 만난 사이였다. 처음 겪는 사회생활의 낯설고 흉한 세상의 단면을 함께 헤쳐 간다는 동지애로 단기간 어울렸었다. 물론 학교에서 만나면 인사만 나누고, 회사에서만 붙어 다녔다. 그 정도의 인연이라면 얄팍하긴 한 것 같았다. 걔네 회사 자리 잡을 때까지만 뒤치다꺼리해주는 소모품 용도로 적당한 인연이었다.
이제는 가장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 다음을 내가 직접 정해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가거나 새 직장을 구해야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엔 아직 일렀다. 엄마를 그 집에서 구해낼 자금도 없고 그럴싸한 핑계가 부족했다. 엄마에게 만들어준 계좌로 용돈을 입금해드린 이후로 아빠는 엄마를 예전만큼 패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는 아빠가 많이 변했다며 너희들이 나가고 나니까 오히려 사이가 좋아졌다고 했다. 마치 가정의 불화의 원인이 우리들 때문이었던 것 같은 형국이었다. 엄마, 그런 게 아니야. 용돈 끊겨서 술값, 담뱃값 끊기고 세금 때문에 전전긍긍하기 시작하면 다시 돌아올 거야. 아빠가 변했으면 나가서 돈을 벌겠지. 여전히 엄마 혼자 고생하면서 뭘 변했다고 그래? 엄마는 옆집, 앞집, 뒷집 그 골목에 사는 또 다른 형편없는 아저씨들 얘기를 하며 우열을 비교해 아빠는 그 중에 제일 낫다고 했다. 들으면 아빠 본인에게 가장 위안이 될 구수한 논리였다. 엄마는 그리고 자신에게, 또 우리에게 아빠란 존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아빠라는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존재라며 말이다. 나는 귓등으로 엄마의 말을 쳐버렸다. 엄마, 제발 그런 소리하지 말아줘. 엄마도 솔직해져 봐. 엄만 그냥 아빠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잖아. 엄만 그냥 아빠가 무서워서 개기지도 못하고 얻어만 맞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해서 도망도 못 가고 우리까지 지옥 구렁텅이에서 살게 하는 거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현주야, 그런 거 아니야. 나는 직장을 잃었다는 말도 못하고 전화를 끊어야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하지 못할, 할 수 없는 말이 많았다. 어처구니없는 웃음 그 다음으로 금기시되는 발언들이 무수히도 많아서 속에는 썩고 거름이 되고도 남을 만큼 앙금만이 가득 쌓여있었다.
엄마와 통화한 뒤에는 냄새나는 자취를 돌아보며 자기연민의 눈물을 흠씬 쏟아내는 게 일과였다. 걸어온 길도, 걸어갈 길도 형편없어서 눈물이 났다. 낙관적인 미래를 맹신하는 동안 잊고 있던 현실을 자각하게 되면 으레 심한 무기력감에 휩싸여 울거나 자거나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서 어처구니없어서 새어나오는 웃음을 피식거렸다. 부자들이 그런다지? 가난한 사람들은 게을러 빠졌다고. 인성도 개차반이라고. 예의는 밥 말아먹었고, 상종할수록 썩은 내 나는 인간들이라고. 그 부자들도 나 같은 골목길 출신이었을 것 같다. 어쩌면 그리도 정확히 빈곤층을 묘사할 수 있을까 말이다. 아직까지는 눈에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계층구조가 조만간 선명하게 나뉠 것 같다. 부자들은 힘이 있는 사람들인데 힘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옹호해주고, 그 힘을 더럽고 쓰레기 같은 하류인생들에게 나누어줄 리 없다. 부의 불균형은 힘의 불균형을 낳고, 민주주의는 지금까지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한 번도 변한 적 없는 계층사회를 구현해낼 것이다.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한 번도 약육강식의 세계관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데 왜 민주주의라는 이념은 다르다고 뻥을 치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나는 돈이 없어서 배우고 싶은 그림도 못 배우고 가고 싶은 대학도 못 갔다. 예나 지금이나 돈 있고 권세 있는 사람은 때깔이 좋다나? 당연한 소리 아닌가. 내 방은 햇살 한 줌 들어올 틈이 없다.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교육 받고 자란 부유층들을 옹호해주는 얼간이들이 밉다. 그들이 모든 걸 다 욕심껏 누리고 있다는 걸 모르는 멍청이들이 너무나 많다. 부는 대물림되고 빈곤층은 앞으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겠지. 그리고 부유층을 찬양하는 멍청한 빈곤층도 배로 늘고 서로가 서로를 기피하며 힘을 모으기는커녕 아옹다옹 다투기나 할 게 뻔하다. 자기연민에 신세한탄에 사회 문제까지 할 수 있는 모든 불평을 다 한 뒤에야 휴대폰을 켜 채용 사이트를 뒤적거렸다. 그러다 날이 저물었고 새벽녘엔가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