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적응

by 미색

장례식장 빈방에서 어렵사리 잠에 들었던 기억이 너무도 선명한데 잠에서 깬 곳은 어느새 어둑한 자취방이었다. 온몸에서 소름이 돋아났다. 공포심이 순식간에 잠기운을 쫓아내버리고 무섭도록 싸늘한 기운에 심장이 당장 부서질 듯 요동쳤다. 나도 모르는 새 턱까지 덜덜 떨렸다. 숨죽여 방 안을 모조리 살폈다. 얼마간은 그대로 가만히 지켜보았다. 차차 언제까지 동태만 살펴야 하느냐는 의문이 들어와 이제쯤이라는 본능에 힘입어 살짝 손을 뻗어 휴대폰을 들었다. 휴대폰은 늘 손 뻗던 궤도에서 용케 잡혔다.

우선 오늘이 언제인가가 관건이었다. 날짜는 마침표처럼 분명하게 하루 전의 일자로 표시되어 있었다. 엄마의 시신을 보기 위해 영안실에 다녀온 그 날이었다. 글쎄, 그렇기는 하지만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이게 말이 되나? 원래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이 되는 게 맞는 이치였다. 태어나서 이런 일은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했다. 어제 애써 꿈이겠거니, 예지몽이겠거니 하고 떠나보낸 의구심이 도로 달라붙어버렸다.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평범하지 않은 패턴의 매일이 내게만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진 고립감이 성큼 다가왔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수한 잡념이 흘러들어왔다. 제발 모든 게 내 착각이길…. 스트레스 때문에 환각을 보는 정신병에 걸렸다는 가정도 그럴싸했다. 번번이 전화를 받지 않던 언니가 네 번째 시도에서 겨우 응답했다. 가는 중이야. 전화 하지 마. 울음 섞인 목소리였다. 언니, 잠깐만 끊지 마! 왜? 왜라는 말의 끝머리가 밝은 톤으로 살며시 변했다. 언니와 대조된 높은 내 말투가 무언가 작은 오해의 소지를 준 것 같았다. 엄마가 사실은 아직 살아있다는 반전 소식을 기대하는 듯했다. 언니, 그게 있잖아. 나 좀 이상해. 언니는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언니는 이상한 일 없어? 지금 엄마 보러 가는 거 맞지? 그게 너무 이상하단 말이야. 내 말이 저쪽에서 어떻게 들릴지는 짐작되지 않았지만 달리 조리 있게 설명할 방법도 생각나지 않았다. 언니가 더듬더듬 대꾸했다. 나도, 믿기지 않아. 믿기 힘든데 그래서 뭐 어떡하라고? 빨리 가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잖아.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언니는 내 말을 잘못 이해했다. 믿기 힘들다는 말이 아니고, 이미 지나간 날이 왜 내게 다시 돌아온 건지, 이 사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언니, 집에 가면 아빠가 언니한테 택시를 잡으라고 하겠지? 그리고 병원 영안실로 가게 될 거야. 거기 가면 피부가 흰 남자 직원이 있더라구. 우리를 데리고 엄마한테 갈 거고. 거기서 언니랑 나는 엄청 울고, 오빠는 엄마의 손마디를 만져보다가 꼭 잡고 같이 울었어. 난 못 가겠어. 이미 갔던 데란 말이야. 무서워, 언니. 오늘 밤에 작은 방에서 같이 자고 일어나도 아침이면 다른 데서 눈이 떠질 거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이해 안 되지? 이해 안 될 거야. 못 믿을 거야.

숨소리만 들려오는 전화를 힘없이 끊어버렸다. 언니가 다시 전화해주기만을 내내 기다리며 한숨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 기묘한 일이 실제인지 확인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하루 더 자고 일어났을 때 말짱해진다면 좋겠다.

1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너 안 온다고 화났어. 빨리 와. 짧지만 단호한 어투에는 적의가 서려 있었다. 험악한 분위기가 짐작이 된다. 언니와 오빠가 눌리고 있을 상황이 단번에 그려졌다. 이 기묘한 경험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했지만 저쪽에 놓인 사람들의 기분은 쉽게 연동되었다. 우리를 황폐하게 만들었던 보통의 일상이 발끝부터 적시며 차올랐다. 방법이 없었기에 기꺼이 이 검고 차디찬 물로 뛰어들었다. 순전히 언니에게 털어놓기 위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병원에 가서 기다리겠다는 말을 따라 이제는 익숙한 건물로 들어섰다. 그러나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시도 때도 없이 뜨겁게 성질이 난 손바닥이었다. 따귀를 얻어맞고 그대로 콘크리트 바닥에 엎어졌다. 통증이 오기도 전에 눈물부터 고였다. 맞은 나 대신 언니가 비명을 질렀다. 그 이상 아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초식동물들은 어색함과 굴욕을 이겨내고 초연한 표정을 어떻게든 지어내야 했다. 주변에서 흘깃거리고 지나는 상관없는 시선들이나 비웃음도 마치 화면 바깥에서 관람하는 사람들의 다소 동떨어진 무감각한 반응인 듯 받아들이는 정신력으로 버텨보았다. 아빠는 나를 욕하고 때릴 정당한 명분을 욕설에 담아 고래고래 소리 질러 동네방네 방송했다. 잘만 버텨내면 이 정도에서 일단락된다는 걸 잘 안다. 엄마가 살면서 해본 다양한 시도 중에 사단을 단축시킨 최선의 방법이란 아빠의 폭력을 정당화해주고 인정해주는 거였다. 그래, 당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거 이해해. 내가 잘못했어. 하고 말하듯이 몸을 가지런히 움츠려주고, 나는 당신 앞에 약자일 뿐이야. 하고 고개를 얌전히 숙이고 있으면 아빠는 너그러이 학대를 중단해주었다. 조금의 비꼼이나 반항의 여지는 드러내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 아빠가 좋아하는 반찬을 그날 상 위에 올리는 것으로 너그러움에 감사의 표시를 해주면 일주일 정도는 평화로웠다. 그런 것도 평화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뭉개지는 발음으로 간신히, 늦어서 죄송해요, 아빠. 하고 사죄했고 아빠는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앞장서 걸었다.

예의 그 영안실로 안내받았고 아빠는 그때처럼 복도에서 기다렸다. 나는 이번에는 엄마의 얼굴에 살짝 손가락을 대보았다. 그리고 오빠처럼 엄마의 손을 꼭 쥐어보았다. 이 모든 일이 비현실적이기만 했다. 꿈인지 환각인지 뇌에 이상이 온 건지 갖가지 추측만이 머리를 뒤덮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언니에게 털어낼 기회만 살폈다. 언니는 세운 무릎 속에 얼굴을 파묻고 연신 훌쩍거렸다. 저어, 언니. 나 말이야, 좀 이상한 일이 있어. 언니가 무슨 일? 하고 성가신지 짧게 물었다. 아까 전화로 말했잖아. 기억 나? 하루씩 되감아지고 있는 것 같애. 오늘 봤지? 그 피부 희멀건 남자. 그리고 오빠도 엄마 손 꼭 잡고 그랬잖아. 내가 말한 대로 된 거 기억해? 언니는 숨만 훅훅 들이쉬고 마실 뿐이었다. 언니, 듣고 있어? 들었어. 대답은 그게 다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언니는 무반응이었다. 잠자리에 들려 할 때쯤 언니가 말했다. 엄마도 너 이상하다더라. 근데 그거 모르지? 너 원래 좀 이상했어.

다시금 아침, 코끝에 닿을 듯 가까운 얼룩덜룩한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정신이 들자마자 머리맡에 놓인 휴대폰을 들어 날짜를 확인했다. 어제가 또 다시 내일이 되었다. 거봐, 이렇게 될 줄 알았어, 하는 마음에 한숨을 뱉어냈다. 시간이 뒤죽박죽이 아니라 나름대로 규칙성이 있다는 점이 새삼 안심 되었다. 더 복잡하게 시간이 엉켰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상황이 어려워질 테니까, 이 상황이 지속되지만 않는다면 그나마 나은 거라고 생각을 정리했다. 어차피 내겐 해결능력이 없었기에 이게 불합리한 생각이든 자기합리화이든 상관이 없었다.

해결능력? 요상한 시간의 조화가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엄마의 생사였다. 꾸물거릴 새 없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차례 이어졌다. 뚜르르 하고 귓바퀴를 따라 들어오는 동그랗게 말리는 신호음에 차분히 집중했다.

이건 그저 정신착란일 것도 같다. 엄마가 죽었단 걸 부정하려고 만들어낸 환상 같은 것이다. 어쩌면 아빠를 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했을 그때부터, 아니면 아빠에게 발로 밟혔던 그때부터, 아니면 죽은 엄마를 보고 온 그날 밤부터, 그도 아니면 오밤중에 걸려온 언니의 전화로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날부터 환각과 기억의 오류가 시작된 건 아닐까?

… 여보세요? 현주야? 혼란스러운 틈에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살아있는 엄마의 목소리, 이토록 생생한 현실이 가짜일 수 있다면 진짜를 구분해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엄마, 잘 있어요? 아무 일 없어요? 응, 현주야, 엄마 지금 바쁜데 조금 이따 엄마가 전화할게. 엄마의 목소리가 동굴처럼 사방을 울렸다. 이 시간쯤이면 상가 건물에 딸린 화장실 청소를 마무리할 때였다. 새벽부터 오전까지는 상가 화장실 청소, 오전부터 늦은 오후까지는 요일마다 번갈아 다니는 가정집에서 가사 일을 하는 게 엄마의 일정이었다.

엄마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실제라고 믿기는 어려웠다. 꿈이나 정신 착란이 아니라면 뭘까? 왜 내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꾸만 과거로 떠밀리는 걸까? 그래봤자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다시 정 방향으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면 모두 없던 일이 된다. 그저 되짚어가기만 할 뿐이다. 심지어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순간, 순간을 한 번씩 더 겪어야 하고 버텨야 하고 나의 고통, 그리고 엄마의 고통이 우리에게 또 찾아올 것이다. 만약 지금처럼 계속해서 반대 방향으로 시간이 흐른다면 이미 지나가버린 일들이 이제는 앞으로 올 미래가 될 것이고 난 다가올 미래를 다 알면서도 당할 테고 새로운 날을 기대하며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라는 희망도 무의미해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궁금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엄마가 궁금했다. 채비를 하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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