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구렁텅이

by 미색

누군가 우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을 때는 아침이었다. 우리 집 이부자리에서 눈을 떴다. 옆에서 훌쩍거리는 소리는 언니였다. 언니는 오래된 책상 앞에 앉아 액자에 끼워둔 사진을 보고 있었다. 엊그제도 그랬는데 또 우는구나, 생각하지만 나 역시 떡이 되도록 울고 심지어 얻어터지기도 해서 부은 눈은 뜰 수조차 없었다. 언니가 기척을 느끼고 아빠 밥을 같이 해드리자고 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였다. 그동안에도 겪어온 수모이지만 어제의 일도 똑같이 치부된다는 게 우습고도 한편으론 허망했다. 혁명을 시도했을 때만 해도 극단적인 상황 변화가 하나라도 일어날 것 같았는데 얄궂은 기대였다.

언니가 쌀을 씻는 동안 거실에서 자던 오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빠는 평소처럼 안방에서 비스듬히 기대어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언제 돌아갈 거야? 다 끝나면 바로 갈 거야. 나도 그러려고. 그런데 어제 다 끝난 게 아니야? 언니는 멀거니 나를 바라보았다.

밥을 차려놓고 상에 앉기 겸연쩍어 자리를 피했다. 씻고 나오니 다들 나갈 준비 중이었다. 영주야, 택시 불렀냐? 네, 불렀어요. 설명이라는 걸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나는 어정쩡하니 분위기만 살폈다. 얼른 옷 입고 나와. 언니가 힘없이 말하며 방을 나갔다. 나는 분위기에 맞춰 아무 옷이나 껴입고 함께 나섰다. 도착지는 다시 장례식장이었다. 무슨 용무가 남았는지 궁금함에 잠자코 따라 다니기만 했다.

외삼촌이 먼저 와계셨다. 우리에게 저번 날과 같이 절차 같은 걸 일러주셨다. 언니가 또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이 순간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러곤 엊그제와 똑같이 소복으로 갈아입으라 했을 때 고개를 퍼뜩 들어올렸다. 왜 또? 누가 또 돌아가셨나? 똑같은 장례식장, 똑같은 호실, 엊그제와 같은 절차,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나는 다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틀어보니 날짜가 엄마의 장례식 날이었다. 엊그제가 이 날이었는데, 왜 오늘이 이 날이지? 모두 꿈이었던가?

얼떨떨하게 시간을 보냈다. 기시감치고는 대단히 또렷해서 이 기묘함을 무어라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빠의 표현에 따르면 그날 우리는 너무 ‘오두방정을 떨어서’ 어수선하고 어지럽기만 했지 무슨 일이 차례차례 벌어졌는지는 눈에 담지 못했었다. 방에서 기다리는 동안 언니만 연거푸 혼절할 듯이 울었고 오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반대편 벽에 기대 앉아있었다. 그래, 이러고 꽤 오랫동안 앉아있었던 생각이 난다. 말도 없이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엄마만을 떠올리고 그리워했다. 이게 꿈인지, 엊그제가 꿈인지 혼란스러웠다. 언니나 오빠에게라도 묻고 싶은데 지금 두 사람의 넋은 이 세상에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현재 엄마의 장례식장에 있었다. 그럼 어제와 엊그제, 그토록 생생한 지난 이틀이 꿈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기가 쉽지는 않았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가도 언니가 제 울음에 사래가 걸려 켁켁 거리는 기침소리마저도 엊그제 들었던 유일무이한 그 소리와 너무 닮아서 오히려 잊었던 사소한 기억마저 상기시켰다. 맞아, 언니가 저러다 토하는 건 아닌가 울면서도 걱정이 들었단 말이지. 그럼 예지몽이라도 꿨단 말인가? 물론 어제도 그렇고, 엊그제도 내가 생전 안 하던 짓을 해서 사단을 내기는 했었다. 사실 내 분노를 어디로 어떻게 쏟아내야 할지를 몰라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는 선택을 하면서도 동시에 마음 한편은 이래선 안 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엄마의 장례식인데 내가 무슨 짓을 벌였는가 생각하면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이 폭풍우처럼 나를 덮쳐버렸다. 하기는 그런 일이 꿈이 아니고서야 벌어질 리가 없었다. 절대 그런 일은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어쩐지 두들겨 맞은 얼굴에도 멍 하나 없이 성하더라니, 꿈이라도 공중에서 떨어지는 폭격을 맞은 듯이 생생한 고통을 상기하고 있었다.

점심이 지나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손님이 하나 둘 찾아왔다. 조문객들과 인사를 하고 쉴 새 없이 우는 언니를 두고 밥을 날랐다.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너무 했다. 이 오묘한 기분은 쉽사리 지워지지가 않고 의구심은 증폭되었다.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도무지 꿈이었다는 결론이 납득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생생하던 바로 어제의 발인하러 가던 길, 중국집 사장님이 중간에 연고만 챙겨주고 돌아가신 기억도 확실히 났다. 아빠를 무덤 속에 밀어 넣으려다 내가 떨어져버린 일은 해가 뜬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손님이 몇 분 계시지 않아 조금 일을 보다 방에 들어갔다. 휴대폰을 켜 보았다. 삭제를 미처 못 한 스팸 문자 몇 통과 장례식장 주소를 묻는 사장님과 주고받은 문자가 그대로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건 꿈이 아니었다. 화면을 내려 문자 내역을 하나하나 되돌려 읽어보아도 어물쩍 꿈으로 넘겨버릴 결단을 주진 못했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소리가 저 깊은 동굴에서 메아리쳐 올라왔다.

그럼 그렇지. 사건의 발단이랄 수 있는 빈 술병이 주방 한쪽에 놓인 박스에 칸칸이 채워졌다. 저녁이 되고 그 무렵 중국집 사장님과 식구들이 도착해 마주 서서 절했다. 중국집 식구들이 밥을 먹니 마니 엉거주춤하며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고 쟁반에 국과 밥을 인원수대로 챙겨 나갔다. 그러자니 어디서 많이 듣던 말소리가 들렸다. 애새끼들이 뭐 잘난 일이라고 오두방정을 떨어. 저것들 때문에 낯을 못 든다, 내가. 엥간치들을 해야지. 드문드문 앉아있던 조문객들이 고개를 들어 한 번씩 아빠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은 민망함을 못 이겨 말거리를 만들었다. 자주 보던 광경이었다. 꿈에서처럼 발광은 참고 서늘하게 가라앉는 분을 삭이며 밥그릇을 자리에 놓았다. 중국집 사장님도 아빠를 흘끔 보다 말고 말없이 수저를 들었다. 다행이다. 진짜 같은 꿈을 꿔서 엄한 역사는 없었던 일이 되었다. 죄책감이 지워지자 먹먹하게 차오르는 감정은 울음이 되어 흘러나왔다.

중국집 식구들이 돌아가고 발인을 지킬 사람만 조금 남아 간이 침구를 빈 방에 깔았다. 나는 벽에 붙은 구석진 데로 가서 돌아누웠다. 잠은 올 턱이 없고 그 전 날 꿈에서처럼 탈진해서 기운이 모조리 빠져 선잠에라도 들면 좋겠다 싶어 눈을 감았다. 엄마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니까 중국집 짜장 소스 조리법 같은 걸 떠올려 보았다. 그래도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가 해주던 짜장밥에는 고기 대신 햄이 들어갈 때도 있고, 하다못해 어묵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엄마는 무슨 음식을 해도 기존 재료 대신 대체품을 빌려서 해주었다. 그런 음식에도 모락모락 김이 나면 아무튼 밥상이 그럴듯해졌다. 대부분은 식었거나 메말랐거나 푹 익었거나, 고체였는데 액체가 되었거나 액체였는데 고체가 된 반찬이 상에 올라왔다. 쌀이 끊겨 이웃집에 빌리러 간 적도 있고, 다른 집에서 음식을 해다 주기도 했었다. 그건 엄마가 우리보다 끼니를 자주 거르는 폭삭 늙은 어떤 할머니네 반찬을 갖다 드린다든가 지병이 있어 거동이 힘든 어떤 과부 아줌마 대신 생필품을 조달한다든가 반들반들 얼어붙은 동네로 오르는 계단에 흙을 뿌리려고 멀리 공터까지 가서 흙을 짊어지고 오는 그런 사람이라서 이웃해 사는 몇 사람은 우리 형편을 눈감고 모른 체하지 않는 사연이 있었다. 내게도 종종 심부름을 시켜 생에 얼마 들어보지 못한 덕담을 그럴 때나 들었다. 엄마는 나 같은 사람보다도 더 불쌍한 사람도 살고, 나 같은 사람이라도 도움 받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하지만 내 관심사는 이쪽 동네가 아니었기에 엄마와 한통속의 초식동물 우리를 언제까지나 전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를 떠났고, 이제는 엄마가 우리를 영영 떠나버렸다. 외삼촌은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을까? 어른들은 다 알 텐데 딴청만 피우고 있다. 엄마는 내 엄마요 나는 이미 성인이었다. 그 정도의 알권리는 내게도 있었다. 장례 절차가 다 마무리되면 알려줄까 싶었다. 알고도 싶고, 무얼 알게 될까 두렵기도 했다. 엄마의 죽음의 비밀이 대단키라도 한 일인 냥 밤새 머리를 굴렸다. 그게 엄마를 위한 일인 것 같아서, 엄마를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러고 있으면 목울대가 울음에 덜 떠밀릴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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