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치부

by 미색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가 제일 먼저, 오빠는 나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아빠가 택시를 부르라 해서 언니가 전화로 택시를 불렀다. 아빠는 우리를 데리고 어느 병원의 영안실로 갔다. 병원 영안실 직원이 정갈하게 누워있는 엄마의 시신을 보여주었다. 나와 언니는 오열했다. 오빠는 엄마의 손을 꼭 쥐고 흐느꼈다. 우리 셋 다 엄마를 구해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엄마는 스스로 그 지옥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왔다. 엄마와 우리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나는 감히 엄마의 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엄마를 두고 도망 나온 내가 엄마를 불쌍히 여길 자격이 있을까? 우리가 탈진하도록 울 동안 아빠는 영안실 밖에 있었다. 내일 모레 발인을 하고 내일은 장례식을 치른다고 했다. 아빠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바로 화장해버리지나 않을까 하던 걱정은 일단 접을 수 있었다.

생각 외로 장례는 어수선한 절차였다. 외삼촌의 주도로 이리저리 끌려 다닌 기억이 조금 났다. 거의 대부분을 언니와 나는 조문객도 맞이하지 못할 만큼 울고 또 울었다. 낮에는 한산해서 장례식장이 초라한 것이 슬퍼 울었고 밤에는 번잡스럽게 드나들며 술과 밥을 먹는 사람들이 미워 울었다.

살다가 어느 날엔가 엄마를 잃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생각은 언젠가 해본 적이 있었다. 그게 언제라 하여도 실감은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엄마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도 그렇고 우리 엄마가 죽음을 당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여겼다. 지금도 믿어지지 않았다. 믿어져서 우는 게 아니라 이럴 수는 없으니까, 이건 여전히 말이 안 되니까, 이런 결론은 내 계획에는 없던 거니까, 글쎄, 이런 슬픔은 도대체 뭐라고 표현하는 걸까?

밥을 나르라는 소리에 겨우겨우 일어났을 때 귓가에 들려선 안 될 소리가 들렸다. 기집애들이 뭐 잘난 일이라고 오두방정을 떨어. 저것들 때문에 낯을 못 든다, 내가. 엥간치들을 해야지. 아빠는 종일 조문객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 줄은 알지만 그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서 그쪽은 아예 시선을 차단하고 있었다. 하여간 다 지 애미만 닮아서 대가리 크고는 하는 짓들이 다 그 애미에 그 새끼들이야. 뜨겁게 달궈진 쇳조각은 매일 식히기 위해 물에 담가두었을 뿐 꺼내들면 그 열기란 금방 돌아오고 만다. 아, 그날이 떠오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이성을 잃었던 그날! 나는 쟁반 째로 바닥에 떨어뜨렸다. 밥과 국이 엎어져서 나뒹굴자 사람들이 헉 하는 소리를 내었다. 내 눈은 불길이 그어져 아빠를 노려보았다. 그만하세요! 얼굴은 타는 듯이 뜨거웠고 뺨에 흐르는 눈물은 용암 같았다. 저 썅년이 지금 반항하는 거야? 저 미친년을! 아빠는 상을 걷어차며 내게 달려들었다. 주변 어른들이 말려들 새도 없이 아빠는 사정없이 광대뼈와 콧등에 주먹질해댔고 발로 걷어차고 밟아댔다. 나는 아빠의 발을 붙잡고 어디든 물어뜯으려고 했지만 아빠의 발길질에 머리를 바닥에 세게 찧어 잠시 어지러웠다. 눈알이 핑핑 도는데 언니와 오빠가 뜨악한 채로 가까이서 보고 있었다. 외삼촌이 쫓아와 가까스로 아빠를 내게서 떼어냈고 아빠는 포효하며 온갖 욕설을 내리꽂았다. 아빠가 사정권에서 멀어진 틈에 언니가 나를 끌고 빈 방으로 갔다. 그리곤 나 혼자 두고 홀연히 나가버렸다. 혼자 남겨지자 모든 일이 꿈과 같았다.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꿈, 아니, 시작도 되지 말았어야 할 꿈이었다.

이른 아침 장지로 향하는 길, 나는 맨 뒤꽁무니에서 띄엄띄엄 따라갔다. 중국집 사장님이 슬쩍 가까이 오시더니 말을 거셨다. 현주 니는 메칠 쉬다 온나. 그라고 이거. 사장님은 연고를 건네주셨다. 다른 힘은 안 나도 눈물은 양껏 흘러나왔다. 에이그, 쯧쯧. 사장님이 더욱 울상을 하며 나를 쳐다보곤 이만 간다, 내는, 하고 중턱에서 발길을 돌리셨다.

너무 울어 장지까지 오를 힘이 나지 않았다. 간신히 도착해서 보니 인부 두 사람이 깊게 판 흙구덩이에서 서로 땅 위로 올려주고 있었다. 엄마의 관은 흰 끈으로 동여매 구덩이 옆에 둔 채였다. 엄마가 이제 저리 들어가면 끝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아빠가 흘깃 돌아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금세 얼굴이 험악하게 굳어지더니 당장 여기서 꺼지라고 낮게 읊조렸다. 외삼촌과 아빠의 사촌 형들이 그만하라고 했다. 아니다. 아빠는 그만하라 하면 더 길길이 날뛰는 쪽이었다. 아빠가 검지를 치켜들고 마지막 경고라는 듯, 가라했다, 아까보다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는 그저 이 사태가 얼른 종결되기만 바라는 얼굴이었다. 오빠가 한 걸음 떼더니 신현주, 가 있어. 하고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대체 내가 왜? 어젯밤 나한테 퍼부어진 욕설들처럼 내가 정말 패륜아라는 거야?

인부 두 사람은 살다 살다 이런 광경은 처음보네, 그런 얼굴로 관짝을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 검은 소복을 내려다보고 우두커니 서있다 천천히 몸을 돌렸다. 터벅터벅, 남의 발소리가 내 발 밑에서 들렸다. 죽을 사람은 안 죽고 엄마가 죽다니, 저런 개망나니는 버젓이 살아서 또 매일 우릴 괴롭힐 텐데, 이대로 멀리 도망을 갈까, 그런데 어디로?

장지 쪽에서 소음이 들려 돌아보니 굴삭기에 엄마의 관이 들려 있었다. 밑에서 남자 어른들이 각도를 맞추느라 흔들리는 관을 받쳐주었다. 아빠도 동참했다. 무슨 소리야, 저 구덩이에 파묻힐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아빠잖아. 나는 오르막길을 도로 뛰어올라갔다. 남은 힘을 다해 전력으로 아빠에게 달려들었다. 아빠가 반사적으로 날렵하게 몸을 비키며 스쳐지나갔고 멈추지 못한 나는 기우뚱하더니 그대로 흙구덩이에 처박히고 말았다. 쿵 하는 소리가 났던 것 같더니 기운이 빠지고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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