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상기

by 미색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익숙한 음성에 감정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언니가 다급히 내 말을 끊고 자기 대신 집에 다녀오라는 용무를 전했다. 자기는 조만간 중요한 시험이 있는데, 엄마가 일이 있다고 불러서 자기 대신 누구든 상관없는 거 아니냐 반문했다. 엄마는 내가 오면 더 좋겠다고 했다. 그럼 처음부터 그리 연락을 하시지, 볼멘소리를 했더니 오랜만에 목소리 듣는 게 반갑지도 않느냐며 우는 소리를 하시더라. 엄마답지 않아서 일이 있기는 한 모양이라 했다. 엄마는 현주한테 미안해서 그러니 네가 대신 전해주면 안 되겠니? 너희들끼리 연락도 하고 지내고 그러는 거지? 그렇게 남의 집 식구랑 살았던 사람처럼 자꾸 모르는 소리를 하셔서 이상하기도 하고 너는 뭐 알겠지 싶어 전화를 했단다. 나는 휴무일 오려면 한참 남았어. 그럼 좀 당겨달라고 사정 말씀 드려 봐. 언니는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물어보았고 아무런 궁금증도 없어 보였다. 자기 근황도 일절 알리지 않더니 바쁘다는 말로 일축,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언니의 중요한 시험이 뭐든,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든 내 알바가 아니었다. 쏟아낼 줄 알고 가득 차오른 응어리에 목이 막혔다. 이 어마어마한 감정 덩어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겠다. 성난 개의 목줄을 바싹 잡아당기듯 억제하고 구박하고 기다려! 혹은 멈춰! 그런 명령을 내려야만 할 것 같다.

중국집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지냈다. 사장님이나 왕 이모가 영석이 소식을 전해주면 가벼운 이야기에도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럼에도 남의 심장 취급하며 파르르 떨리는 손을 뒤로 감춰버렸다. 카운터에 서면 거기 늘 붙어있는 사진 속 영석이가 나를 빤히 보고 있는 것 같아 의식되었다. 엉클어진 머리카락 사이에 두 눈이 내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이, 그러나 영석이의 마음은 읽을 수 없는 그런 시선이었다.

영석이가 입대를 하고 얼마 안 되어 사장님은 배달원을 한 사람 고용했다. 그 아저씨의 신상은 일주일 만에 중국집 단골손님한테까지도 전해졌다. 그야 왕 이모가 새로 온 식구를 환영한다는 명분으로 캐물었기 때문이고, 그 아저씨도 남의 얘기만큼 자기 얘기 끄집어내기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고졸이었고 미성년 신분일 때 사고를 쳐서 애가 하나 있는데 이십 대 초반에 이혼을 해서 아이는 처가에서 키워주고 있었다. 애인은 있어? 왕 이모가 하나 더 캐묻자 아저씨는 없어요, 그랬고, 사장님이랑 야식 장사 끝내놓고 한 잔 할 때 하던 말이, 얼마 전까지 동거하던 애랑 헤어졌다더라는 깊은 사생활까지 공공연한 이야깃거리로 여기저기 떠돌았다. 그 아저씨가 사는 물의 급수가 신속 정확하게 판가름 나고 사람들은 더 이상 아저씨에게 캐묻지 않았다.

왕 이모는 내게도 애인 여부라든지 사는 데라든지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 물었었다. 딸 같은 애한테 관심도 주고 살갑게 굴고 친해지자는 명분은 구차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질문은 다짜고짜 이루어졌고, 뜬금없이 들이쳤다. 나는 진실도 아니고 사실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닌 식으로 대답했다. 영석이는 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를 들먹이며 깨끗한 사무실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던 그렇고 그런 사람이라고 대변해주었다. 그게 그리 고마운 짓은 아니었다. 회사는 그렇고 그렇더라도 내가 사는 방구석을 보고 온 영석이가 구태여 기 살려주는 소리를 할 게 아닌데, 오히려 궁색하게 사람을 동정해주는 꼴이었다.

배달원 아저씨나 나나 굳이 말 안 해도 풍겨오는 인상에서 어느 수준인지 감이 잡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확히 얼마나 떨어지는 인간인지 궁금해 했다. 그리고 신속히 판단하고 싶어 했다. 왕 이모도 사장님도 나와 배달원 아저씨에게 친절하지만 우리에게 베푸는 친절은 상식이라는 선과 닮았다. 손님을 대하는 각기 다른 표정의 친절처럼 친절과 시선은 한 쌍이었다. 그럴지라도 중국집에 모여든 사람들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우리끼리 세분화해서 노는 건 우리 끼리만의 놀이였다. 우리 같은 사람들을 뭐라 하더라? 서민이라 부르던가? 월 500만 원 버는 사람은 월 200만 원을 버는 사람이 우스울지 몰라도 다른 세계에서는 두 그룹을 한 묶음으로 볼 수도 있다. 영석이의 여자 친구인지 모를 왕 이모의 딸이라는 그 여자애가 나를 지척에 두고도 무시한 순간은 금방 알아챌 만한 태도였다. 월 200만 원짜리를 내려다보는 월 500만 원짜리의 눈빛이었다. 어쩌면 비슷한 시선으로 나는 배달원 아저씨와 데면데면한 사이로 일하는 게 맘에 들었다. 영석이의 수료식 날짜를 세어가는 와중에도 동거하던 애인과 헤어졌다는 그렇고 그런 아저씨와 홀에서 같이 일할 때는 불편해 죽을 맛이었다. 별 게 아니라도 말을 안 걸었으면 좋겠고, 별 게 아니면 구태여 내게 왜 말을 거는지 아주 거북했다. 아저씨가 뭐라 한 건 아니지만 거의 띠 동갑에 가까운 나이 차이를 거스르려는 심보인가 싶어 괜히 구역질이 났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아저씨는 퇴근시간에 괜히 어슬렁거렸다. 나는 어떻게든 마주치기를 피하려고 1, 2분이라도 서두르거나 늑장을 부렸다.

하루는 설거지를 하는데 조선족 언니가 홀부터 치우라고 날카롭게 명령조로 말했다. 아까까지 손님 한 명이 자리에 있었는데 그새 드시고 떠난 모양이었다. 나는 못들은 척 개수대의 물을 세게 틀고 그릇을 마저 헹궜다. 왕 이모 말로는 그 언니는 기분파라 들쭉날쭉 제멋대로긴 해도 성격 호탕하고 일머리 좋아서 애는 괜찮단다. 나하고는 서너 살 차이로 애가 둘이고 남편은 식품 공장에서 일했다. 성격이 호탕한지는 몰라도 살갑지가 않고 종종 언니랍시고 내키는 대로 쏘아붙이는 말투가 은근히 신경을 긁었다. 언니는 쌩하니 밖으로 나가 수레를 끌고 갔다. 홀에서는 중국말로 씨부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곤 짜장 찌꺼기가 든 그릇을 개수대에 내팽개치듯 첨벙첨벙 담가버렸다. 그 바람에 설거지물과 손님 침이 섞인 짜장 국물이 내 얼굴에까지 튀었다. 조선족 언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려보는 눈빛에도 도리어 자기 말에 대꾸도 안 한다고 사람을 개무시한다고 지까짓 게 뭐나 된다고 사람 차별을 놓느냐며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큰소리가 나자 왕 이모가 슬그머니 들어왔다. 주방 아저씨는 뒷문 너머로 슬쩍 쳐다나 볼 뿐이었다. 사태는 내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왕 이모는 언니에게 사과하라고 달래는 투로 종용했다. 언니가 안 보는 틈에 눈을 깜짝깜짝 떠 보이며 신호를 보내더니,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말하는데 못 들은 척하면 기분이 상하지, 얘! 그러는데 언제 돌아왔는지 기척도 없던 배달원 아저씨가 불현 듯 끼어들었다. 그렇기는 한데 말도 듣기 좋게 해야지 가만 보면 송임 씨는 말을 내뱉듯이 하는데 자기한테도 꼭 그런 식으로 말해서 안 그래도 이 사달 한 번 날 줄 알았다고 했다. 금방까지의 불쾌감과는 또 다른 방향의 불쾌감이 일어났다. 조선족 언니가 가소롭다는 듯 나와 그 아저씨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는 물을 틀어 얼굴을 닦아내고 말했다. 언니 무시하려던 거 아니었구요. 좋게 말하면 좋잖아요. 하고 말하자마자 눈물이 툭 떨어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울어버리면 사람들은 억울해서 운다고 더 미워한다. 그런 게 아니었다. 영석이가 보고 싶고, 영석이가 그립고, 영석이가 너무 미웠기 때문에 운 거였다. 이 모든 일이 다 영석이 때문에 일어났다. 왜 이곳에서 어디서 뭘 하고 살다왔는지 모르는 조선족 언니와 다투고 있으며 주제도 모르고 어린 여자나 밝히는 배달원 아저씨를 피하느라 죽도록 애를 먹고 있으며 애먼 중국집에서 식당 일하는 처량한 처지나 곱씹고 되새기며 우울증을 자초하고 있느냐 하면, 원인은 다 영석이였다. 나쁜 새끼! 개새끼!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왔다. 숨이나 돌리려 찬물을 들이켰다. 어인 밤중에 예기치 않은 벨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언니의 전화였다. 가족들은 자기들을 필요로 하는 순간을 기똥차게 잘 알기도 하지만 기대는 금물이었다. 그들의 연락은 늘 나를 더 힘들게 해왔다. 기대를 접듯 휴대폰을 뒤집어 벨소리를 죽였다. 방바닥에 풀썩 주저앉으니 다시 전화가 왔다. 또 언니였다. 뜸을 들이다 전화를 받았다. 받자마자 언니가 쌍욕을 내던졌다. 엄마가,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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