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착각

by 미색

나는 영석이네 중국집에 취직했다. 거기서도 역할은 잡부였다. 하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하는 것이다. 소진되는 재료 주문이나 서빙, 계산, 설거지, 상 치우기, 청소, 재료 다듬기, 마감하기와 그 외 온갖 소일을 다 했다. 전 회사보다 몸은 배로 힘든데 그리 힘에 부치지는 않았다. 근무시간도 전보다 길었고 주말이나 공휴일에 쉬는 법도 없었다. 휴무일은 달에 딱 두 번씩 주어졌다. 영석이네 중국집은 홀이 제법 크고 비싼 코스 요리도 취급하는 전문 중화요리 가게여서 배달만큼 홀도 바빴다. 온통 붉은 계열과 황금 빛깔로 요란하게 꾸민 홀 안을 정신없이 누비다 보면 어느새 마감 시간이었다. 마감 시간이면 영석이는 내가 앉은 자리 옆에 바싹 붙어 앉아 현금 다발을 나눠서 세고 계산 실수가 없었는지 함께 따져보았다. 영석이 아버지는 잘하는 요리사를 뽑아놓고도 주방 일에서 손을 안 떼고 장인 정신으로 쉼 없이 요리 연구를 하신다 했다. 마감을 마치고 우리가 계산이 잘 맞아떨어진다 하면 영석이 아버지는 카운터 구석에 둔 안경집을 들고 와서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러곤 빈틈없는 눈빛으로 기어코 우리의 계산 실수를 찾아내곤 했다. 울퉁불퉁한 손가락으로 틀린 데를 짚고서 여가 아니제, 실눈 뜨지 말고 큰 눈 뜨고 잘 보래. 지적은 그걸로 끝이었다. 큰 소리도 없이 말씀하시는데 어느새 내 목과 어깨는 빳빳하게 굳어있었다. 영석이 아버지는 엄한 구석도 없이 무서웠고 무척 어른으로만 생각돼서 시키는 일에 군소리 할 것 없이 해치웠다. 여기서 일하며 영석이 아버지는 우리 아빠와 또 그 전 회사의 친구라는 것들을 자연히 떠올리게 했다. 영석이 아버지는 이를 테면 우리 아빠에 비하여 정말 아버지라는 이름이 걸맞은 그런 사람이었고, 전 회사의 친구들에 비하여는 회사의 수장, 사장, 우두머리 그런 이름에 꼭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아빠도, 리더랍시고 설치는 전 회사 친구들도 너무 어설퍼서 실은 자기들도 역할의 무게 따윈 모르고 헛바람만 실컷 마시고 아는 체나 하는 걸로 보였다. 아빠라는 건 그저 권세나 부리고 호통이나 치고 맘에 안 들면 누구고 두들겨 패는 역할로 잘못 배운 인간과, 마찬가지로 사장이라 하면 거드름이나 피우고 남들 눈에 세련되지 못한 일은 다 아랫사람이나 부려야 할 줄 아는 인간들까지 제 역할에 한참은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일을 마치면 영석이는 오토바이로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러더니 한 번은 골목 밑에 있는 편의점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편의점 밖에 세워둔 파라솔 아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너 휴무 언제더라? 이번 주 금요일. 금요일에 어디 가? 글쎄, 마트에 갈지도. 아아, 마트. 그래가지고 데이트는 언제 하냐? 생뚱맞게 데이트는. 몇 개월을 같이 일해서 영석이는 내가 영 심심하고 지루한 애라는 것 이상으로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남자친구 없어? 남자친구는 무슨. 그래? 영석이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실실 웃었다. 나를 비웃는 게 아니란 걸 알아서 같이 웃어주었다. 영화 재밌는 거 개봉하는데 같이 보자. 엄청 재밌나 봐. 왕 이모도 남편이랑 보고 왔대. 맞아, 나도 들었어. 그럼 영화 보고 마트도 태워줄게. 장보면 혼자 들기 무겁잖아. 뭐 그렇게 영석이는 능수능란하게 약속을 잡아버렸다. 중국집에서 영석이는 내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무거운 걸 나를 때든 상대하기 까다로운 손님이 나타날 때든 하는 일마다 열없어서 어수룩하게 있으면 영석이가 등장했다. 이때껏 막연히 남자에 대한 거부감이 컸는데 영석이는 처음서부터 느낌이 달랐다. 영석이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새로운 영역의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신인류와 같다고 할까?

그러곤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하는 목요일 아침이었다. 차게 비어있는 거리를 지나 길 모퉁이에 다다랐다. 영석이가 가게 문 앞을 쓸고 있었다. 멀리서도 신인류의 품행은 눈에 띄었다. 풍채가 넉넉한 아버지를 닮은 건 체격뿐이었다. 아마 눈매라든지 입매라든지 민첩한 몸짓은 나머지한테서 얻어온 모양이다. 영석이네도 부모가 별거인지 이혼인지 그런 일을 치른 집이었다. 영석이의 집안 사정이 남 일 같지 않아 영석이도 남 같지 않았다. 그날은 유독 눈길 끝에 영석이가 걸렸다. 있을 만한 데로 눈을 돌리면 녀석이 보였고 그럼 왠지 안심했다. 유독 배달 주문이 많은 날이기도 했다. 유난히 마감 실수를 크게 내어서 사장님이, 영석이 아버지가 마감 종이를 보다 말고 내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셨다. 아예 처음부터 다시 하라 하셨고 영석이가 펜을 빼앗아 내 머리를 툭 치더니 계산을 새로 적어갔다.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영석이의 허리를 꼭 붙잡고 하염없이 이마를 때리는 바람을 피해 영석이 어깨 뒤로 숨었다. 영석이 땀 냄새랑 오토바이 기름 냄새랑 맞바람의 습한 냄새, 그런 게 모처럼 생생했다.

금요일 약속시간이 지날 때까지 영석이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무방비한 상태로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전화를 걸었다. 영석이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다. 순간 해고 문자의 섬뜩함이 되살아났다. 가만히 있으면 뒤통수나 맞는 세상인 것을 몇 번이나 배워야 아는 걸까? 혹시 몰라 중국집으로 전화했다. 전화에 끌려나온 목소리는 왕 이모였다. 이모는 영석이가 배달을 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30분 이상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중국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영석이였다. 어제 나를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에 휴대폰을 떨어뜨려 박살이 났다. 전화해주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배달이 밀려 전화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다가 사장님 말로는 오늘 중국음식 찾는 손님이 많을 거라 둘이나 쉴 수는 없다고 했단다. 영석이는 약속을 깨서 미안하단 말도 없이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신인류와의 밀애 첫 단추가 꿰어질 날을 앞두고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였다. 잠을 못 자도 정신이 말짱했다. 약속이 허망하게 깨졌으나 기분은 여전히 들떠 있었다. 혼자 마트를 다녀오는 길은 허전했다. 영석이의 땀 냄새가 기억 속에 번졌다. 내일이면 보게 될 녀석이 자꾸만 머릿속에 맺히고 기억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지나간 일상 하나하나가 되새겨졌다.

영화는 어쩔까 물어보면 영석이는 어쨌을까? 망설이는 사이 영석이에게서 영화 약속 얘기는 쏙 들어갔다. 아예 잊은 사람 같았다. 그냥 전과 같은 일상이 매일 반복되었다. 매일 봐도 매일 먼저 다정하게 인사해주는 영석이, 어수룩한 실수를 할 때마다 거들어주러 멀리서 뛰어오는 영석이, 사장님이 내게 맡긴 일도 말없이 대신 치워주는 영석이, 퇴근하면 가끔씩 우스갯거리를 문자로 보내주는 영석이, 날이 개든지 궂든지 집에 데려다주는 영석이, 신인류의 그윽한 체취, 체취와 온도가 각인된 뺨을 잠자리에 끌고 와 나만의 기쁨을 은밀히 즐기던 시간으로 빠듯하게 채워졌다.

왕 이모와 사장님이 점심을 먹으며 한담 중이었다. 영석이는 그릇을 수거하러 간 사이 나는 닦은 그릇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 찬장에 정리했다. 주방장 아저씨는 뒷문으로 나가 담배를 태웠고 조선족 언니는 음식물 쓰레기를 치운다고 나갔다. 왕 이모와 사장님은 평소와 다른 투로 대화했다. 날짜 얘기, 시간 얘기, 지명을 언급하고 그 근방에 무엇이 있고 어디를 가야 괜찮더라 하는 정보를 나누었다. 슬그머니 카운터 옆에 벽걸이 액자로 고개를 돌렸다. 액자 속 사진에는 사장님, 왕 이모, 낯모르는 아저씨 둘과 여자애도 하나 있고, 지금보다 조금 앳된 영석이가 이름 모를 산 정상에서 제각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센 바람이 이들의 머리카락을 마구잡이로 흩어놓아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 등산이라도 갈 계획이라면 모자를 하나 사둬야겠다. 하기는 요즘 날씨가 소풍가기는 적시였다. 학교 졸업하고는 소풍도 졸업일 줄 알았는데 어느 회사든 단합한다고 종종 소풍을 가기도 하는 걸 보았다. 사장님이 바깥 음식 값이 어쩌니 하는 말을 하는 걸 보아하니 도시락은 됐고 점심은 사서 먹을 셈이었다. 영석이가 그릇을 수거해오면 같이 설거지하면서 소풍가지고 수다나 실컷 떨어야겠다.

현주야, 예 나와본나. 사장님의 호출로 한참 재밌던 상상을 구겨 던지고 냉큼 홀로 뛰어나왔다. 니 메칟날 같이 어데 좀 댕기올 수 있나? 어데요? 나도 모르게 사장님 말투로 되물었다. 왕 이모가 목청껏 웃더니 니 갱상도 사람 다 됐다고 농담하던 참에 영석이의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영서이 훈련소 델따준다 안 하나, 니 몰랐나? 영서이가 말 안 하드나, 낼 모레면 입소일이라꼬. 사장님은 말하면서 입구를 쳐다보았다. 나는 멍하니 뒤돌았다. 멋쩍은 얼굴을 하고 있는 영석이가 거기 있었다.

해고 통보 문자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었다면 영석이의 입대 소식은 과도하게 차올랐던 에너지를 원상복귀 시켰다. 그려지지가 않았다. 영석이 없는 영석이네 중국집은 춘장 빠진 짜장면 아니고 무엇인가? 탕수육 없는 탕수육 소스, 짬뽕국물 없는 짬뽕밥, 아니, 이딴 음식으로 비교불가였다. 요즘 같아선 차라리 휴무일도 반납하고 종일 영석이와 붙어있고 싶었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소풍이나 가는 줄 어림도 없는 망상을 단숨에 펼쳤던 것이다. 속내가 조금이라도 들킬지 몰라 태연하게, 간다는 말은 들었는데 내일 모레인 줄은 몰랐어요. 같이 가면 재밌겠네요. 했다가 영석이에게 섭섭하단 소리나 들었다. 야, 현주야, 재미라니? 그동안 내가 너한테 일도 잘 가르쳐주고 잘해줬더니 재미라고? 서운하다, 친구야.

친구야, 라고 불렀다. 일부러 일도 잘 가르쳐준 것인지, 일도 잘 가르쳐주고, 라고 구태여 보충설명까지 해주었다. 그런데 우습다. 영석이가 그리도 매몰차게 찬물을 확 갖다 끼얹었는데 이 속에 타오르는 불은 기름으로 땐 불인지 조금도 꺼질 기미가 안 보인다.

영석이가 구차한 소릴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장님 말씀처럼 정확히 내일 모레는 아니었지만 그로부터 며칠 뒤 영석이를 훈련소로 태워다주는 날이었다. 중국집 앞에는 대형 승합차와 처음 보는 아저씨가 문간에서 사장님과 마주보고 서있었다. 왕 이모의 남편이라고 하셨다. 아, 네가 현주구나. 상냥한 말투에 표준어 발음이 꼭 배운 사람 같아서 내가 상상하던 이미지와 아주 딴판이었다. 홀 안으로 들어가니 영석이가 모르는 여자애와 함께 앉아서 키득키득 웃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여자애도 우리 또래로 보였다. 왕 이모의 딸이라고 했다. 사진 속 여자애와 닮았는데 사진보다 오밀조밀 예쁘장했다. 아마 그 애가 저 애가 맞았다. 영석이가 인사를 시켰지만 여자애는 내키지 않는지 영석이와 장난만 쳤다. 그리고 가는 동안에도 영석이는 왕 이모의 딸과 나란히 앉아 갔다. 영석이가 훈련소 근처 이발소에서 머리를 바싹 깎는 동안에도, 또 그 근처 밥집에서 무언가를 먹는 동안에도, 영석이가 윽, 남자냄새! 같은 농담을 치는 동안에도 내 기분은 나도 설명 못할 묘한 구덩이에 빠져 맴맴 돌았다. 무슨 마음으로, 무슨 생각으로 그 하루를 보내었는지 모르다가 영석이가 종이 핸드백 하나만 달랑 들고 손 흔들며 완전히 멀어진 뒤에야 현실의 공기가 다시금 느껴졌다. 대열에 섞인 영석이는 보이지도 않는데 왕 이모의 딸은 코가 빨개지더니 슬쩍 눈가를 닦아냈다.

오래간만에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끝에서부터 시작으로까지 차차 감아 올라가며 이 같은 종지부를 낸 원인을 따져보았다. 열에서부터 하나에 이르기까지 후회되지 않는 일이 없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에게든 전화를 걸어 위로받고 싶었다. 누구든 갑자기 나와서 울고 있는 나를 껴안아주었으면 했다. 길이 울음이고, 울음이 길이 되어 그 끝에 바닥이 끌리는 허술한 쇠문이 있었다. 심장을 긁어내는 소리로 문이 열리고 불 꺼진 방 안에 들어가자 그림자마저 떠나간 완연한 고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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