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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르네바 Aug 15. 2023

취리히 호수의 백조는 화이자를 맞았을까요

취리히 #2


여행을 올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건데 '사람 사는 일 다 똑같다'. 물론 표현의 사소한 뉘앙스나 이런저런 생활의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주문을 받는 웨이터가 웃거나 웃지 않는 타이밍, 타인을 향한 시선 처리의 방식, 뭐 그런 것들이 다를 수 있다. 침대를 쓰고 카펫을 깔고 샤워는 일주일에 한두 번만 하고, 이런 것들은 더욱 부수적이니 말할 것도 없다. 이런 피상적인 것들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건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일과 여가, 일상과 휴가, 가족과 연인과 친구, 외로움과 슬픔, 함께 있음의 행복과 떨어짐에 대한 아쉬움. 이런 본질적인 것들을 채우고 해소하고 느끼는 방식이 같은 인간으로서 다를 수 없다는 걸 반복하여 확인하고 있다. 내게는 이것이 중요했다. 표현이나 생활의 차이는 비단 외국에 나와서만 체감하는 게 아니다. 비판과 일소로 넘겨버려 그렇지 사실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끼리도 공통점보단 차이점이 많을 것이다.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관용은 같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심지어 외국에 가서 갖는 태도를 관용으로 부르기도 애매할 때가 있다. '아 여긴 이렇게 사는구나, 참 다르고 재미있다!'라는 말 이면에 더 저속한 감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상대적 저개발국에 가서 추잡한 우월감을 느끼고, 반대로 상대적 선진국에선 찌질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다.





스위스 취리히 중앙역










스위스의 태극기 부대

한국의 태극기 부대가 우리보다 문화적으로 훌륭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고, 자연경관은 그저 부러움의 대상인, 스위스에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다면 위에서 언급한 찌질한 열등감 때문이다. 당연히 있다. 취리히 중앙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자마자 횡단보도에서 마주쳤다. '기후변화는 개소리!', '화이자를 먹지 마라!'라고 쓰인 기다란 꼬깔모자를 쓴 할아버지와 그 옆에 화난 얼굴로 서 있는 할머니. 부부처럼 보이는 이 두 사람은 가로수 서너 그루마다 다음과 같은 글귀를 남겼다. 'WHO, 60% BILL GATES, 40% BIG PHARMA' 뒤에서 계속 사진 찍고 있기가 겸연쩍어 할머니가 다 쓰기를 기다릴 수 없었는데 아무래도 PHARMA 정도로 줄여 쓴 게 아닌가 싶다. 주변에도 나처럼 이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글의 내용은 할아버지의 모자를 보면 쉽게 예상할 수 있었으니 아마 한국인이 태극기부대를 심드렁하게 바라보듯 이 사람들도 그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극우는 어디에나 있다. 국가의 발전 정도나 국민들의 교육수준과 무관하다. 모두 각자 써 내려간 '개인의 역사'가 있고 그로부터 느끼는 분노와 희망 같은 감정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분노와 희망이 어떤 사안을 지지하고 반대할지 결정한다. 극우든 극좌든,  그 존재 자체에 있어서 무결하다. 이루고 싶은 것들이 다를 뿐이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아직 정오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땐 취리히에는 사람이 참 없구나 생각했는데 오후에 오니 취리히에서 가장 번화하고 시끄러운 곳이었다.




WHO의 60%는 빌 게이츠에게, 40%는 거대 의약기업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이번 여행도 이강인의 파리 생제르맹 경기를 보는 일정을 빼곤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왔다. 이런 여행의 장점이자 단점인데, 도착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걷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목적이 없어서 자유롭고 그래서 몸은 더 힘들다. 유럽 대도시는 다 비슷하게 느껴진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데 보통 5층, 6층 정도에 불과하다. 세 블록 정도 걷다 보면 고루해진다. 이럴 때 여행자의 가슴에 울림을 주는 건 인간이 세운 낡은 구조물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보일 때다. 10분 정도 걸으니 나타난 다리 아래 호수가 햇빛을 받아 윤슬을 만들고 있었다. 자연의 미는 인간적 상념을 다 지워내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다. 잠시 멍하니 바라보니 문득 기분이 좋아졌고,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에 있었다면 누구보다 신날 사람이다. 남들 다 조용히 걸어가는데 혼자서 방방 뛰며 큰 소리로 이야기했겠지. 아마 몇몇 사람의 눈초리를 느끼고 '에고, 너무 시끄럽게 했나?' 했겠지. 전화하며 다리를 걸었다. 나중에 함께 걸을 날을 기약했다. 아름다운 걸 혼자 보면 외롭다. 맛있는 걸 혼자 먹으면 맛이 없다. 혼자 해서 그나마 좋은 건 혼술? 하물며 가장 좋아하는 책 읽고 영화 보는 일도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으면 정말 외로워진다. 읽고 볼 땐 그렇지 않지만, 그 후에 말이다.








오리를 좋아한다. 취리히의 오리를 보니 전주 아중천에 떠다니는 오리들이 보고 싶다.





시내를 구경하고 취리히 호수를 따라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주말 오후를 즐기러 다리변으로 나왔다. 간식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떠드는 모습이 정겨웠다. 행복하고 여유로운 사람들을 보면서 시기심이나 외로움을 느끼던 시절이 있다. 이젠 그들과 함께 즐거운 나를 보며 '많이 컸네?' 흐뭇했다. 그로스 뮌스터 성당은 들어가 보지 않았다. 성당은 지겹다. 보는 안목도 없고. 하지만 모든 성당이 그러하듯 약간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아래로 내려다보는 풍경이 나쁘지 않았다. 고지대라 봐야 한 20미터 더 높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만족했다.













취리히 호수에는 오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다양한 물새들이 있었는데 그중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건 오리 외 단 한 종에 불과하니 그것에 대해서만 말하려고 한다. 바로 백조다. 백조! 야생 백조를 본 적이 있던가? 물론 왜가리나 백조나 인간의 미추 기준을 빼고 나면 다 자연의 일부이며 아름다운 존재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백조는 예쁘긴 했다. 그런데 그 백조들이 한데 모여 사람들한테 빵이나 얻어먹고 있는 걸 보고 나니, 이젠 정말 별생각이 없다. 백조나 오리나, 둘 다 별로! 가 아니라 둘 다 아주 사랑스럽다. 검은 백조가 궁금해졌다. 모든 백조는 하얗다는 믿음에 충격을 준 검은 백조의 존재로 귀납법의 가치에 대해 설명한 글을 읽었었는데...... 이 와중에 귀납법의 가치라니, 참 뜬금없다.



우아한 백조? 배고픈 백조!







아, 하나 더 기록해두고 싶은 게 있는데 이곳 참새는 한국 참새와 다르게 생겼다. 아마 내가 참새라 부르고 있는 그 새가 참새가 아닐지도 모른다. 근데 그냥 참새라 부르련다. 참새가 아닌 참새를 참새라 부른다고 하여 내 기억 속에 그 새가 더 흐릿해지는 건 아니니까. 아무튼, 이곳 '참새'는 잔털이 보송보송하게 나 있고 거리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 쪽에서 가만히 먹을 것을 기다릴 정도로 용기가 있다. 한국 참새들은 조금만 다가가도 휙 도망가 버리는데, 여긴 '주저앉아' 있을 정도다! 왜 한국의 야생동물들은 인간을 무서워할까. 고양이도 도망가고 참새도 도망간다. 오리도 그럴까? 그럴 것 같다. 취리히 오리는 내가 바로 앞까지 다가가니 눈을 한두 번 꿈뻑이더니 다시 쿨쿨 잔다.






알은척도 안 하고 잠만 자는 오리들. 나뭇가지들과 이룬 조화가 절묘하다.






피파 뮤지엄은 건물 외관과 로고만 사진으로 남겨두고 전시회는 구경하지 않았다. 2만 원이 넘는 가격에 방문객들을 보니 대개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부모들이라 전시 내용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2층 기념품 가게는 가보고 싶었는데 분리 관람이 불가능했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아마 한국에 돌아가 어디엔가 처박힐 물건을 또 사는 일이 생겼을지 모른다. 가장 기념되는 일은 이렇게 남겨진 글과 사진이 될 것이다. 그 외 자질구레한 것들은 이사 도중 다 버려지고 만다.









우연히 발견한 르 코르뷔지에 파빌리온에 방문했는데, 건축을 잘 알지 못해 아주 즐겁고 유익한 시간은 못 되었으나 그가 대단하다 칭송받는 이유 중 하나는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었다. 6피트 남성 신체를 기준으로 건축을 하였고 가구 디자인을 하였다. 물론 그 기준 자체가 서양 남성 중심적이긴 하지만 그 시도와 발상 자체에 의미가 있다. 자신의 기준을 세우고 그에 따른 결과물을 내는 것. 아마 모든 영역에 있어 적용할 수 있는 창의성의 방법론이 되지 않을까. 김정운 작가의 에디톨로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휴먼스케일이라는 요소를 건축과 가구 설계에 적용하기. 동어반복인가? 휴먼스케일이라는 용어 자체가 그런 걸 의미하는 걸지도...... 아무튼! 이건 김정운 작가가 말하는 편집의 일종이다.










취리히는 일단 여기까지. 마지막 날 출국 전 취리히에 하루 머무르긴 할 텐데, 새벽시간에 비몽사몽 있을 거라 무얼 제대로 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여행의 기록을 가급적 매일 쉬지 않고 해나가야 한다. 이 글은 하루가 지난 시점에 독일 숙소에서 쓰고 있는데 벌써 가물가물하여 소설 쓰는 듯 느껴진 게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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