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멘탈 김 사원의 단단해지기 위한 고군분투
'신입이 잔 실수 좀 할 수 있지. 왜 그렇게 화를 낼까?'
날이 서 있는 것들로만 가득한 회사에서 이리 찔리고 저리 깨지며 아파하던 신입사원 시절이었다. 특히나 유약한 두부로 자라서 굳은 살이 없었던 나에겐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사람 간의 선의가 가득하던 환경에서 벗어나, 개인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환경 속에 있는 게 버겁게만 느껴졌다. 떨어져 나간 조각을 손에 쥐고 착잡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두부라는 태생적 성질은 변할 순 없더라도, 누가 눌러도 쉽게 으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함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두부 중에서도 가장 단단한 '부침용 두부'가 되고 싶다고.
두부 한 모가 만들어지기까지 꽤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 콩을 곱게 갈아 콩물을 만들고, 간수를 넣어 콩물을 응고시킨다. 응고된 콩물을 두부 틀에 넣고 위에 무거운 물체를 올려 물기를 빼내면 두부 한 모가 완성된다. 여기서 무거운 물체로 압력을 얼마나 주는지,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에 따라 두부의 단단함이 달라진다. 직장이라는 틀에 넣어져 압력을 받은 지 약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그 시간은 말랑했던 두부에게 자잘한 변화를 주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외관을 바꿔보려고 했다. 비즈니스 캐주얼에 살짝 진하게 그린 아이라인. 업무 전화를 할 때는 목소리를 살짝 낮게 깔고 말했다. 이러면 안 만만하게 보이겠지? 우습게도 별 효과는 없었다.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란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결국에는 매일 조금씩 압력을 받으며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의 쳇바퀴 속에서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새 '사원'이라는 딱지를 떼고, '대리'라는 새 딱지를 받게 되었다. '김 대리'라는 호칭을 들을 때마다 조금 어깨가 으쓱해진다.
자, 그럼 나는 이제 부침용 두부가 되었나? 전보다는 단단해지긴 했지만, 부침용 두부는 되지 못했다. 예상과 달리 매일 다른 두부가 되어버리고 만다. 어느 날은 바싹 마른 건두부가 된다. 촉촉한 생기는 잃었지만, 담백한 건조함으로 하루를 이겨낸다. 누군가가 뾰족한 말을 날릴 때는 '아, 그러면 본인이 직접 하시던가.'하며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무심함이 생겼다. 또 어느 날은 취두부가 된다. 동료들이 쓸데 없는 말만 걸어도 화가 나고, 일이 넘어오면 '앗, 제 담당업무가 아니어서요.'로 슬쩍 넘긴다. 가끔은 무능력한 상사의 뒤통수를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도 꽤나 묵혀졌구나 생각했다. 이런 모습마저도 이전에 비해서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복도에서 한 과장님을 오랜만에 마주쳐 인사를 나누었다. 한 과장님은 내가 신입사원이던 시절부터 나를 봐온 분이다.
- 이제 일은 좀 할만하니?
- 아 네, 그냥 그럭저럭요.
- 그렇구나. 예전엔 되게 잘 웃었는데 요새는 표정이 어두워 보이길래 뭔 일 있나 했지.
더 나아진 건 지금인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걸까 싶었다. 자리로 돌아가 책상 위에 있는 손거울로 얼굴을 슬쩍 보았다. 동료들에게 툴툴대고 있는 모습, 내 실수임에도 남 탓을 하는 모습, 이러한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 모습들이 이전의 내가 원했던 단단함이었을까.
부침용 두부를 꿈꾸던 시절에 쓴 첫 에세이 글을 다시 읽어 본다. 갓 신입을 뗀 사원의 투정으로 빼곡하다. 부끄럽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다. 그래도 그때는 동료에 대한 애정도, 일에 대한 애정도 컸었는데. 다시 한번 나에게 물어보자.
‘너 부침용 두부가 되고 싶어?’
글쎄, 부침용 두부가 되어야 하나? 단단해지면 좋지만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다는 답을 내렸다. 어떠한 두부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그저 '두부'이고 싶다. 굳이 단단해지고 싶지도 않다. 적당하게 촉촉하고 말랑한 두부 한 모로 충분한 것 같다.
예전에 팀원들과 찌개를 먹다가 어떤 팀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두부만큼 어떤 요리에 넣어도 잘 어울리는 식재료가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찌개나 국, 조림, 덮밥, 부침, 심지어 샐러드에도 들어가는 식재료는 두부가 유일무이하니까. 두부 특유의 부드럽고 슴슴한 맛이 그 어떤 강한 풍미의 식재료와도 조화를 이루어서 그렇게 널리 쓰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수식어가 붙는 두부들이 있지만, 정작 내가 꿈꿨어야 했던 것은 그냥 두부였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