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나 된장찌개 알려줘

내가 만든 음식에는 여전히 허전함의 맛이 난다

by 생각할 윤

느닷없이 집밥이 그리운 날, 냉장고에 잠들어 있는 재료들을 꺼내 찌개를 끓여보곤 한다. 된장찌개 시판 양념을 육수에 풀고 끓이다가 채소를 대충 숭숭 썰어 넣고 보글보글 끓인다. 완성된 된장찌개와 밥을 한 그릇씩 담아 저녁밥을 차렸다. 찌개 한 술을 뜨고 후루룩 맛을 봤다.

'음.. 맛은 나쁘진 않은데 뭔가 허전하단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허전함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 맛은 이게 아닌데.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에 먹었던 할머니표 된장찌개가 생각났다. 직접 만든 된장과 고추장을 적당히 섞어 폴폴 끓인 할머니표 된장찌개. 조금 짜지만 정겹고 투박한 맛이 느껴졌던 그 된장찌개.

아, 할머니 된장찌개가 참 맛있었는데.


내가 아홉 살 정도였을 무렵, 우리 가족은 아빠의 갑작스러운 발령으로 지방에 내려가야 했다. 연고도 없는 곳에서 육아와 맞벌이를 병행해야 했던 부모님에겐 구원투수가 절실했다. 부모님을 돕기 위해 나의 할머니는 곧장 서울집을 정리하고 우리 가족이 있는 동네로 내려오셨다. 당신이 30년 넘게 살았던 동네와, 동네 친구 할머니들을 남겨두고 와야 했던 할머니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내려오셨을까. 할머니는 우리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자리를 잡으셨다. 학교가 끝나면 나는 곧장 할머니 댁으로 가서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때의 나는 할머니 댁에 가는 걸 참 싫어했었다. 할머니 댁은 컴퓨터도 없고, TV만화 채널도 안 나와서 21세기 어린이가 놀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할머니 댁에 가기 싫다고 떼도 써봤지만, 애 혼자 있으면 안 된다는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할머니 댁에서 심심한 일상을 보내야 했다.


할머니는 심심해 죽겠다는 손녀를 불러 요리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매일 저녁 시작되는 할머니의 요리 교실은 손녀가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가 되었다. 어제는 쌀 씻기, 오늘은 계란 깨기, 다음날은 멸치 똥 빼기. 미션을 깨듯이 하나하나 요리를 배웠다. 요리하는 초등학생이라니! 스스로가 천재 요리사가 된 기분이었다. 며칠이 지나 기본기를 다 익혔다고 생각한 천재 요리사는 정식으로 요리를 알려달라고 할머니를 졸랐다.


"할머니, 나 된장찌개 알려줘!"

된장찌개는 내가 할머니 음식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면서, 만드는 게 어려워 보이는 음식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옆에 세워놓고 숟가락을 쥐어주었다.

“물에다가 숟가락으로 된장이랑 간장이랑 고추장 적당히 퍼서 넣고 술술~ 휘저어.”

할머니는 내 손을 잡은 채로 각종 장을 넣고 술술 저어주었다.

“보글보글 끓으면 감자랑 채소 이것저것 넣고 끓여. 두부는 꼭 마지막에 넣어야 된다!”

할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작은 손에 채소를 한 움큼 쥔 채로 냄비에 풍덩 넣었다. 완성된 된장찌개를 보며 얼마나 행복했던지. 사실 손만 빌려드린거나 마찬가지였으나, 할머니는 우리 손주가 찌개도 끓일 줄 안다고 후하게 칭찬해 주셨다. 그 칭찬이 너무 좋아서 집에 가서 엄마에게 밤새 자랑을 했다.


할머니는 '남의 손을 탄 바깥음식 먹으면 안 된다'라는 당신의 요리철학으로, 음식에 들어가는 장류도 직접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살림꾼이었다. 할머니 음식을 반평생 먹어온 아빠마저도 '아이고, 요즘 음식이 얼마나 잘 나오는데 사서 고생이야!'라고 말하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누구보다 음식의 건강함을 중요시했던 할머니는 나와 저녁을 먹을 때마다 늘 말씀하셨다.

"나중에 할머니가 없어도 너가 혼자 밥 차릴 줄 알아야 해. 그러니까 할머니가 알려준 거 잘 기억해놔."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볍게 끄덕이고는 한 귀로 흘러보냈다. 늘 내 옆에 계신 할머니와 떨어져 산다는 게 상상도 안되었거니와, 정말로 혼자 밥을 차릴 때가 온다면 내가 할머니보다 요리를 더 잘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빠가 다시 서울 발령을 받게 되면서 우리 가족은 서울로 올라갔다. 할머니도 몇 달 후에 원래 사셨던 동네로 돌아오셨다. 어렸던 손녀는 이제 할머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가 아니었기에 할머니 댁에 가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어쩌다 가끔 할머니댁에 가면, 할머니는 '아이고, 전에 봤을 때보다 더 컸네.' 하며 반갑게 맞이 해주셨다. 가끔 보는 손녀는 볼 때마다 크고 있었고, 가끔 보는 할머니는 볼 때마다 작아지고 있었다. 나의 신체뿐만 아니라 나의 세계도 커지면서, 그 세계 속에서 할머니가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작아졌다. 할머니가 왜 할머니 보러 안 오냐며 전화를 하실 때마다 '요새 좀 바빠서 다음에 갈게요.'라는 말로 다음을 기약하기 일쑤였다. 숙제가 많아서, 시험기간이 다가와서, 입시 준비를 해야 해서 등의 명분에 숨어 '다음'이라는 단어로 질질 끌어온 시간은 기약 없이 흘렀다. 어린 손녀가 스스로 밥을 차릴 줄 아는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할머니는 누군가가 밥을 차려줘야 하는 아이가 되어 계셨다. 거동이 불편해지신 할머니는 일평생을 함께한 당신의 부엌에서 완전히 은퇴를 하셨다.


이제는 혼자서도 된장찌개를 끓일 수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의 천재 요리사보다 요리를 더 못하는 바보 어른일 뿐이었다. 할머니의 손맛은 나의 혀에만 어렴풋이 기록되어 있을 뿐 그 맛을 구현해 낼 요리법도, 재료 하나하나에 담아낼 정성도 따라할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할머니가 알려주신 레시피를 잘 기억해둘걸. 할머니댁에 종종 가서 밥 한끼 하고 올걸. 할머니의 요리가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님을 왜 이제서야 깨달았을까. 짜디 짠후회를 마음 속에 삭힌 채로, 먹다 말았던 저녁밥을 다시 한 술 떴다.


내가 만든 음식에는 여전히 허전함의 맛이 난다. 이 허전함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아직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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