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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밍버드 May 05. 2021

내가 고장 나기시작했다

몸도 마음도 다시 리셋하기

사람들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한창 회사를 다닐 때의 나는 처음에는 성장과 자기 계발이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박봉과 야근이야말로  이 땅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갈 때 겪어야 하는 당연한 성장통이라고 생각했다. 오죽하면  저녁 7시 길에서 마주친 선배가 "너 요즘 살만하구나? 스위스네?"하고 비꼬던 인사말이 아직도 기억날까. 그 당시 나는 1년에 제시간에 퇴근한 적이 2주조차 되지 않는 삶을 살면서도 별 불만이 없었다. 아니 적어도 내가 행복했다고 나를 세뇌했다. 그래 미대 나와서 바로 취업하고, 좋아하는 일하면서 살면 젊은 날 뭐 하나 포기하는 게 뭐 그렇게 서러울 일이냐 하면서.


 그러나 이런 생활이 반복된 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날도 나는 전날 꼬박 밤을 새우면서 쫄쫄 굶고, 다음날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식당에서 밥 한 술 뜨려고 하던 참이었다. 갑자기 집안 식구가 아파서 병원을 갔다는 소식이었다. 그 길로 응급실로 향하면서, 뭐가 어떻게 됐는지 파악할 겨를도 없이 나는 그렇게 어린 가장이 되어버렸다. 막내 동생 학부모이자, 간병인이자 또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는 그 모든 역할들이 오롯이 내 몫이 되어버렸다. 3년간 직장 생활하면서, 앞으로 2년만 더 버텨서, 30대 언젠가 멋지게 사표 쓰고 유학 가야지 하면서 악착같이 모았던 돈은 병원비로 2달 사이 바닥이 나버렸다. 새벽에는 병상을 지키고, 아침에는 출근을 하고, 밤에는 동생 밥 챙기고 숙제시키고 하다 보니 어느샌가 그동안 열심히 버텨오던 나에게 마음의 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부터 앞만 보고 달려오던 내가 길을 잃었다. 열심히 앞으로 간다고 생각했는데 제자리는커녕 뒤로 밀려난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매일 병원을 들락날락하느라 내가 속해있던 팀에게도 온전히 제 몫을 못하는 와중에 나의 사수는 내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건 나의 정신력 탓이라며, 나에게 일감을 더 몰아주었다. 


그렇게 버티기 힘든 생활을 이어나간지 두 달, 내 몸과 마음에 병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작은 사람들의 이름을 잊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물론 건망증 때문에 우리는 종종 사람의 이름을 까먹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좀 심각했다. 매번 같이 일하는 팀원들의 이름, 엄마 이름 등 매일 수도 없이 부르는 이름들, 심지어 내 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누가 나를 한참을 불러도 그게 내 이름인지 인지하기까지 몇 분은 걸린 것 같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회사 천장에 달린 실링 팬에 몸이 갈리는 느낌이 들고, 힘들어서 잠깐 엎드려있으면 귓가에 죽어버리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 나를 괴롭게 했다. 실제로 자다가 너무 공기가 차가워서 정신을 차리니, 내가 베란다 창문의 난간을 붙잡고 있어서 기겁을 했다. 상황이 그 지경까지 오다 보니, 나는 그렇게 힘들게 다니던 회사에 내 손으로 사표를 쓰고 나오게 되었다.  그  날 나는 사람들한텐 애써 웃으면서 이 김에 쉬는 거라고 말하면서 나왔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3일 동안은 매일 울었다. 누군가는 그런 직장 관두면서 뭘 그렇게까지 서러워하냐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적어도 너무 좋아했던 일이고 나에겐 자부심이었던 일을 내 손으로 관두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눈 딱 감고 3초만 숨 쉬세요


회사를 그만두고, 난생처음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이 상담도 받고 하지만, 그때의 나는 조금 더 어렸고, 정신과를 다니면 사람들이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편견 때문에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감기 들면 병원 가서 약 먹듯이 넌 미친 게 아니라 잠깐 감기 든 거니까 병원 가서 처방받는 거라고 이야기해주어 힘을 내서 정신과를 찾아갔다. 처음에는 상담해주시는 분과 말을 하는 데에도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어, 첫 상담 후 집에 와서 잠만 잤다. 


몇 달간 상담을 하면서 내 감정이 너무 격해지거나, 무호흡 증상이 올 때면 의사 선생님은 " 눈 딱 감고 천천히 셋까지만 카운트할게요. 숨 내쉬세요."라고 하면서 나를 진정시켰다. 희한하게 정말 그 3초는 나를 진정시키고, 내 감정들을 달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잠깐이나마 시야를 차단하고, 나를 괴롭게 만드는 감정들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서 나의 공간을 지키는 게 이렇게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그 3초라는 시간을 온전히 나한테 내본 적이 없어서 나 자신을 엉망으로 만든 나한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우리는 직장, 가족, 친구 하다 못해 연인관계까지 수많은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정작 나 자신과의 관계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누군가의 평가, 인정, 경멸, 멸시 등의 태도가 나라고 착각하는 순간 나는 타인이 만든 지옥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나는 성질이 급하고, 앞서 걱정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만 그때의 나와 비교한다면 이제는 실패를 하거나 일이 잘못돼도 내가 잘못되는 건 아니며, 아니 설사 잘못된 다하더라도 다시 나를 보살펴준다면 언제든지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 알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다. 사실상 정신과 치료는 나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하나도 해결해 주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 어려움을 바라보고 올바로 표출하는 나로 성장하게끔 한 것 같다. 그러나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 나는 언제든 나한테 그런 어려움이 또 닥치고, 내가 힘들어 할 수 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는 앞서 걱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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