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24살에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by 구르미

웨이브가 살짝 들어간 긴 머리,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러운 화장, 살짝 여유 있지만 핏하게 입은 옷,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향수 냄새. 20살에 상상한 25살의 ‘나’의 모습이다. 막연하게 20대 중반은 20대 초반과 달라 보이고 왠지 성숙한 어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비록 지금 나의 모습이 서툴더라도 시간이 다 해결해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나’는 헝클어진 머리, 세수도 안 한 꾀죄죄한 얼굴, 목이 다 늘어난 잠옷, 무색무취의 25살이 되었다.



‘20살에 만난 사람과 5년 열애 끝에 결혼해요’ 이보다 더 낭만적인 결혼선포가(?)가 있을까 싶다. 나와 남편은 실제로 5년의 연애를 했다. 20살 9월에 만난 남편은 첫인상은 서로가 서로에게 별로였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여윳돈을 마련하기 위해 지원했던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면접을 보는 게 익숙지 않았던 나는 가게 문을 살며시 잡으며 가게에 발을 내딛었다. 그때 화구 앞에 있던 남편과 마주쳤고 순간 당황했던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오늘 면접 보러 온 분이세요? 라고 물으며 식당 안에 있던 관계자분을 불러주셨다. 이때 서로의 첫인상이 어땠는지 연애를 시작하고 알게 되었는데, 난 모자부터 상의, 하의까지 모두 검은색으로 입고 무표정으로 말하는 남편의 인상이 살짝 까칠해 보였다고 말했고, 남편은 가게 매니저로서 알바를 보러 온 학생이 들어와서 자신을 보고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에 살짝 싸가지가 없게 보였다고 했다.


로맨스 드라마에서 남녀주인공이 혐관(혐오관계)에서 미운정이 들며 사랑을 하게 된다는 전개는 이야기를 극적으로 끌고 나가 시청자들이 이목을 끈다. 극S인(MBTI) 나는 그런 드라마를 보며 현실에선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 종종 몰입이 깨지곤 했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 그런 로맨스가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식당에서 일에 대한 매뉴얼을 알려주고 배우는 과정에서 나누는 대화 사이사이 남편은 꼬부기처럼 웃는 내 얼굴이 강렬하게 자기한테 남았다고 했다. 다행히(?) 남편의 이상형이 꼬부기상이었는데 내 웃는 얼굴을 보고 ‘진짜 이렇게 웃는 사람이 있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손바닥은 부딪혀야 소리가 난다고 나 역시 남편의 마음에 들어온 순간이 있었다. 그 식당은 고기를 직접 직원이 구워줘야 하는 곳이었는데 서툴고 더위를 많이 탔던 난 고기를 구우면서 구슬땀을 흘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눈치를 채고 자기 할 일을 빨리 끝내고 내가 있는 곳으로 와 내가 들고 있던 고기 집게를 잡으며 ‘내가 구울게. 다른 일 보이는 거 하고 있어’라는 말을 했다. 그럴 때마다 미숙한 알바생의 입장으로서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 고마움은 점점 이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호감으로 바뀌어갔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던 중 영업이 끝나고 직원들끼리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2차 후 심심풀이로 들어간 게임방에서 서로에 대한 호감은 확신으로 바뀌게 되었다. 인형뽑기 기계를 보며 지나가듯 한 ‘이거 귀엽다’라는 나의 말에 동전교환기로 가 두둑이 환전을 해와 기어이 그 인형을 뽑으며 나에게 주는 그의 모습에서 나에 대한 호감이 단순히 인간적인 호감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학교 기숙사로 돌아와 인형을 선물해준 거에 대한 고마움으로 카톡을 하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마음을 솔직히 말하고 급기야 새벽에 전화통화로 넘어가 사귀는 사이가 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20살, 남편은 26살이었다. 그땐 이 6살 차이가 10대와 20대의 차이 같았다. 그래서 연애를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여느 커플과 다를 것 없는 연애를 했다. 밤늦게 식당일 끝나고 24시 짬뽕집에 가 짬뽕이랑 탕수육에 맥주 한 잔을 하며 회포를 풀고 보지 않기로 해놓고 새벽에 만나 돼지국밥을 먹으며 조금 더 서로의 얼굴을 보고 생리통으로 아플 때 약과 함께 초콜릿을 주러 오고. 코로나가 터지고 장거리 연애를 잠깐 하게 되었을 때도 서로에 대한 믿음은 먼 거리도 별 게 아니라고 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린 나의 투정으로 생기는 다툼은 좀 더 어른스러운 남편이 대화로 잘 풀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덕분에 20살에 시작된 이 연애는 24살까지 이어졌다.



장기연애를 하게 되면서 ‘결혼’이라는 주제는 우리에게 먼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다만 연애 시작 때부터 남편은 경제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나 역시 경제적 활동을 하게 됐을 때 결혼준비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덧 난 학교를 졸업하게 되었고 학교생활 중 취업준비를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졸업하자마자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졸업과 함께 남편이 사는 본가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지금의 시부모님, 형님과 종종 식사를 하면서 ‘이상적인 가정’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또 1년의 시간이 지나 25이 되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안정되어진 수입, 5년간 신뢰를 쌓아온 남자친구, 만날 때마다 항상 내 입장을 배려해주시는 남편의 가족분들. 비록 20살에 기대한 25의 모습이 되어있진 않았지만 결혼을 결심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