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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론 Apr 08. 2024

태국 여자와 한국 여자의
쉐어하우스

이런 하우스메이트, 또 만날 수 있을까?

 한국에서 1인가구로 5년을 살며 원룸에서 혼자 사는 생활에 익숙할 대로 익숙했었지만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오면서 새로운 생활 방식에 적응해야 했다. 여기는 집값이 비쌀 대로 비싸 '쉐어하우스'가 매우 흔한 데다 만약 한국에서처럼 집을 빌리려면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웬 경쟁이냐고? 집은 한정되어 있고 구하려는 사람은 많으니 전에 살던 집주인의 레퍼런스를 내밀거나, 그게 없으면 몇 달 치 월세를 미리 낸다거나 보증금을 올리는 등의 딜을 해야 겨우 집을 빌릴 수 있는 것이 여기의 현실이다. 워킹홀리데이로 갓 호주에 도착한 내겐 레퍼런스도, 얹어줄 돈도 없으니 쉐어하우스를 구해야 했다.


 호기롭게 중개 어플인 '플랫메이트'를 결제까지 하고 필터를 걸기 시작했다. 5년을 혼자 살았는데 집은 같이 써도 방을 나눠 쓰는 건 적응이 힘들 듯했다. 호주에서는 월세가 아닌 주세로 보통 계산을 하는데, 주세가 300불 넘는 집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독방과 가격에서 이미 시티 중심에서는 살 수 없었다. 남자 하우스메이트가 있는 집도 걸렀고, 1년 살겠다고 가구를 마련할 수 없으니 가구도 있어야 하고, 관리가 잘 되려면 집주인이 함께 거주하는 집이면 좋을 것 같았다.

 온갖 필터를 건 뒤 내가 연락한 집은 단 두 곳. 그리고 두 번째 집과 계약했다. 태국에서 온 하우스메이트 한 명과 귀여운 고양이 두 마리가 있는 외곽 동네의 집.


 태국은 내게 꽤나 낯선 나라다. 여행도 한 번 가본 적 없고, 태국에서도 서비스를 했던 직전 회사에서 알게 된 짧은 지식은 글씨가 꼭 그림처럼 생겼고 불기를 써서 연도와 날짜를 다르게 표기한다는 것 정도. 팟타이는 좋아하고, 똠얌꿍은 잘 못 먹는다.

 그러니 외국인과, 특히 잘 알지 못하는 문화권의 사람과 집을 쓰는 것에 대해 입주 전까지는 꽤나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쉐어하우스 입주 3주 차, 하우스메이트 M 덕분에 태국이라는 나라에 거대한 호감이 생겼다.

 

 M은 나와 같은 30대지만 가끔 어른처럼 느껴지는데, 'Have you eaten?(뭐 좀 먹었어?)' 하고 물어볼 때가 그렇다. 한국에서 보통 어른들이 늘 밥 먹었냐고 물어보던 것처럼 그는 내 식사를 걱정해 준다. 가끔 퇴근길에 같이 먹자고 뭔가를 사 오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위 사진처럼 태국음식을 해주기도 했다. 요리하기 전에 매운 걸 잘 먹냐고 물어봤었는데 언젠가 인터넷에서 '외국인들에게 매움의 기준은 고춧가루가 함유된 것이다'라는 내용을 본 기억이 나서 잘 먹는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저런 거짓 정보는 누가 퍼트린 거지? 서양인들은 그럴 수도 있으나 태국인에게는 해당 없다는 것이 저 정보와 함께 퍼졌으면 좋겠다. 정말 맛있었는데 상당히 매워서 연신 큰 숨을 내뱉으면서도 다 먹었다.

 또 지금 마사지 학교를 다니고 있는 그는 이수를 위해 실습 시간을 채워야 한다며 마사지 베드를 꺼내 내게 무료 마사지까지 해주었다. 일 구한다고 하루 2만 보씩 걷던 몸에 정성 담긴 마사지가 준 영향은? 설명이 더 필요 없으리라고 본다. 태국 음식도 먹고 마사지도 받았는데 여기가 태국이 아니면 어디냐. 컵쿤카. 

 위 사진은 모두 M이 나를 데려가줬던 명소들이다. 멜버른에 처음 온 나를 위해 M은 자기 차에 나를 태워서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주었다. 게다가 자기 친구들을 소개해주기까지 했다.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모인다고 모두 참 스윗했던 그들. 게다가 그중 몇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도와주고… 타지에서 일도 못 찾고 놀고 있으니 한국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M을 생각하면 꼭 돈 벌어서 받은 만큼은 갚아야지 싶어 진다. 이미 못 갚을 정도로 많은 것을 받은 것 같아 걱정되지만.


 M은 세상의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다. 서로 돕고 베푸는 일이 점점 보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하지만 자기는 여전히 그런 것들의 가치를 믿는다고. 우리는 하우스메이트로 만났지만, 이젠 그보다 인생의 멘토를 한 명 만났다고 말하고 싶다. 나도 이 사람처럼 나누며 살 수 있을까? 지금은 자신이 없지만 누구보다 가까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니 열심히 노력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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