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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고통, 그 보상의 문제점

윤소평변호사

by 윤소평변호사


#1 정신적 고통의 객관화가 가능한가


정신적 고통을 다른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은 없다. 육체적 고통은 상해 진단서의 발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이 입은 육체적 고통의 정도가 어떠한지 어렴풋이 인식할 수 있다. 육체적 고통은 완전한 치료에 필요한 기간과 비용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은, 그 정도가 어떠한지에 대해서 산술적 평가가 어렵고, 이를 숫자로 나타내는 작업은 더욱 어렵다. 기술이 발달해서 정신적 고통과 관련해 뇌의 색깔변화 정도(농도, 채도, 명도 등의 변화), 온도의 변화 등 수치적으로 이를 객관화할 수 있는 방법이 고안된다면 문제해결은 좀더 쉬워질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정신적 고통에 대해 육체적 고통만큼이나 중대한 문제라고 인식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고, 이를 보상해 주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왔다. 보상의 개념을 정신적 영역까지 확대한 것은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국가유공자나 상이군경을 인정함에 있어서 과거에는 외적 상해만을 기준으로 보상을 해 주었으나, 현재는 정신적 상해개념을 인정해 보상과 배상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는 문화적, 사회적 인식이 정신적 고통에까지 확대된 것으로 이를 법으로 구체화함으로써 정신적 고통은 금전을 요구할 수 있는 청구원인이 되었다.


트라우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심리학적, 의학적 개념들이 정신적 고통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으로 등장했고, 인간이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공포를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는 질환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게 되었다.


이러한 개념에 대한 상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반인은 우울증, 조울증 등이 정신적 고통의 일종이며, 자신이 그러한 증세를 앓고 있다는 생각을 흔히 가질 수 있는데, 그와 같은 증상이 전부 금전으로 보상과 배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잘 갖지 않는다.





#2 위자료


가해자가,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돈으로 배상하는 것이 타당한가?


손해배상의 개념 중 위자료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신적 고통을 돈으로 산정해서 가해자로 하여금 피해자에게 배상하도록 하는데 그 본질이 있다.


그런데, 정신적 고통이 산술적으로 객관화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돈으로만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 그 고통을 치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일정 금액의 배상이 부자에게는 위자가 될 수 없을 수도 있고, 빈자에게는 상당한 위자가 될 수도 있다. 어느 경우에나 정신적 고통을 남겨둔 상태에서 피해자로 하여금 고통완화를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게 만들 수 있는가의 문제는 남는다.





#3 사망보험금


도덕적 해이는 어느 경우에나 발생한다


보험은 인류가 고안해 낸 가장 객관적이고 훌륭한 제도라고 평가받는다. 동일한 위험공동체에 속한 구성원들이 위험에 대비해 상호부조함으로써 위험발생시 부담해야 하는 경제적 위기상황을 보다 손쉽게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본질이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해당 위험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보험료만 부담하고 그 혜택은 위험을 겪은 타인에게 돌아간다.


생명보험, 사망보험은 자기 또는 제3자의 사망사실에 의해 보험계약시 지정된 사람에게 일정한 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사망자에 생계를 의존하는 생존자들의 경제적 위기극복을 위해서, 생존자들의 정신적 충격과 슬픔의 완화를 위해서 발생한 제도이다.


그러나, 사망자의 죽음에 대해 정신적 고통을 느끼지 않는 생존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사망자의 보험금은 못된 생존자에게 지급될 수 있는 한계를 가진다. 거액의 보험금은 사망자의 죽음에 대해 애도가 될 수 없고, 생존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줄 수도 없다. 다만, 불로소득의 계기일 뿐이다. 보험금 수령자가 일정한 기간 보험료를 부담했다고 하더라도 수령한 보험금의 액수와 비교할 때 불로소득의 발생은 부인할 수 없다.





#3 국가보상의 문제


예산부족, 성실 납세자들에 대한 문제는?


국가배상은 국가의 행위가 위법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에 이를 금전으로 지급하는 문제이고, 국가보상은 국가의 행위가 위법하지 않으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경우에 이를 금전으로 지급하는 문제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경우, 유공자로 예우하거나 그 유족 또는 가족을 지원하여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도모함으로써 국민으로 하여금 애국심을 고양시키고자 국가유공자로서 보상을 해 주거나 국민의 재산을 국가의 목적사업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를 국가가 취득하거나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를 국가보상의 문제의 대표적인 예로 들수 있다.


그런데, 국가보상의 문제에 있어서 6. 25 참전, 베트남전 참전 등 대국가적 전쟁에서 정신적 후유증을 입었거나, 군인이나 경찰, 공무원 등으로 근무하면서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도 이를 보상해 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고, 현재는 정신적 고통이 직무와 관련이 있고, 직무와 정신적 고통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이를 보상해 주고 있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의 객관화에는 한계가 있고, 육체적 고통과 달리 정신적 고통은 전적으로 주관에 의존하기 때문에 도덕적 문제가 남는다. 공무, 직무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를 국가를 상대로 보상해 달라는 요구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어떤 직무수행자가 정신적 고통을 받아 국가로부터 일정한 보상을 받은 경우, 해당 직무와 같은 직무를 수행한 자나 유사한 직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는 자들은 선례를 통해 자신도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고민없이 하게 된다.


육체적 고통과 달리 정신적 고통은 같은 직무, 같은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차에 따라 고통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고통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는 천차만별인데, 일률적으로 보상을 해 주는 것은 예산상의 문제도 있지만, 불필요한 보상과 과도한 보상, 미흡한 보상의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정당한 보상을 제외하고는 보상금 재원을 마련하느라 세금을 납부한 성실한 납세자들에게는 정신적 고통이 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4 산업재해보상금


많은 보수를 받는 사람이 더 큰 고통을 받는다고 볼 수 있는가


사업주와 근로자가 매월 일정한 비용부담을 하고 업무상 재해를 입은 경우에는 근로복지공단에 이를 청구해서 일정한 보상금을 지급받는 제도이다. 보상금의 크기는 해당 근로자의 보수액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업무상 재해라고 하는 요건이 정신적 고통까지 포섭하면서 보상의 범위는 확대되어 가는 추세이다. 특히, 근로자가 법정 근로시간 이외에 자발적인 의사없이 업무와 관련한 일로 재해를 입은 경우까지 보상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어 보상의 범위는 더욱 확대되어 가고 있다.


예컨대, 회식 후 사망하거나 회식 중에 상해를 입은 경우에도 사실관계를 따져 보상을 해 주고 있고, 출근과정이나 퇴근과정에서 발생한 재해까지 일정한 경우 보상을 해 주고 있다.


업무상 재해에 정신적 고통을 포함시킴으로써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국가보상과 달리 직무의 공공성이 업무상 재해에서의 업무에는 결여되어 있고, 업무라고 하는 것은 발생할 수 있는 정신적 고통의 유형과 크기가 직업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근로환경과 작업환경이 열악해 재해를 입은 근로자에 대한 사회보장적 측면에서 산업재해보상금이 지급되는 것인데, 엄밀히 말하면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 시간대까지 보상의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산업재해보상금의 지급도 같은 양상으로 도덕적 문제와 법률적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고, 실제 분쟁의 건수가 증가했다.





#5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 배상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가해와 손해의 등가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제3자가 1,000만원 상당의 자신의 승용차를 부셨다면 제3자는 승용차 소유자에게 1,000만원 상당을 배상하면 된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를 할 것이다. 등가적 판단이 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승용차 소유자가 평소 그 승용차에 대해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하여 자동차 가격이상의 배상을 해야 하는 것인가.


이 상황에서도 정신적 고통의 객관화, 보상액의 결정이 어렵다는 문제는 남는다. 그리고, 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쪽의 도덕적 문제도 함께 발생한다.


법률상 재산상 손해가 회복이 되면 위자료는 인정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산상 손해의 회복으로 정신적 고통은 위자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려동물의 피해에 대해서는 일정한 위자료가 인정되기도 한다. 재산상 손해의 회복만으로는 등가적 판단이 옳다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는 재산과 생명이 없는 재산의 구별에 의해 정신적 고통이 발생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정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6 금액이 정신적 고통의 크기를 결정할 수 있는가


결정된 액수는 정신적 크기를 대변해 주는 것인가


재산상 손해를 입어 위자료를 인정받거나, 보험상품과 납입 보험료의 크기에 따라 생명보험금을 수령하거나, 재해로 입은 상해 등급과 보수에 따라 국가보상 내지 산업재해보상금을 수령하거나 이혼시 위자료를 인정받을 경우, 그 금액의 크기만큼 정신적 고통의 크기도 그러한 것인가.


보상금 결정체계, 위자료 결정방법, 그러한 결정을 행하는 기관과 법률가, 손해사정인, 감정인 등의 결정에 의한 보상액의 크기는 아무리 정신적 고통을 크고 깊게 입었다고 주장하더라도 어느 수준 이상은 금액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 입은 정신적 고통이 판단과 점검 과정에서 또한번 고통을 더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미미하게 인정된 보상금과 위자료 액수를 놓고, 자신이 받은 고통이 이것밖에 안된다는 말인가라고 되내일 수 있는 상황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7 정신적 고통은 완전 치유가 될 수 없고, 관리의 대상일 뿐이다


금전으로 고통이 치유되었을까


정신적 고통에 대한 금전적 배상, 보상의 문화는 사회가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특히, 정치세력이 예산의 규모를 고려해 가면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형성되어 왔다.


‘얼마나 고통이 심하셨나요?’, ‘우리도 십분 이해합니다’ 등의 말로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금전으로 해결해 보자는 결론을 낸 것이고, 피해자들이 순순히 이를 수용해 주는 쪽으로 운용되어 왔다.


나무에 못을 박았다가 빼 보면 못자국은 남는다. 정신적 고통 또한 못자국이라 할 것이어서 그 빈 공간에 새 살이 돋으면 모르되,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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