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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짓는 몇 가지 이유

윤소평변호사

by 윤소평변호사

#1 원죄(原罪)


아담이 지혜의 열매, 선악과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한 죄를 인류가 상속받아 인간은 본래 죄를 지니고 태어났다는 기독교적 교리에서 인간은 죄를 짓는 존재이다.


원죄론, 속죄론 등에 대해서는 오랜 세월을 두고 기독교 내에서도 신학적 논쟁이 있어 왔고, 헤겔 등 여러 철학자들의 실정적, 실증적 비판을 받기도 했다. 칸트의 이성적 탐구에서 원죄는 그리스도적인 신앙의 전제일 뿐, 인간의 이성과 본질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비판도 받았다.


인간은 태생부터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러한 존재적 한계, 도덕적 무능력을 자기 실존 자체로는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에 귀의함으써 구원받고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본능적, 충동적 욕구와 이성적, 종교적 요구사항간에 갈등을 겪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기 의지와 결정에 의해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죄를 짓는 이유는,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불이행하였고, 그 속성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전생에 ‘업’을 쌓았기 때문에 윤회의 사슬에서 뺑뺑이를 돌 수 밖에 없지만, 스스로 성찰하여 수행하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고, 해탈(Nirvana)할 수 있다고 가르쳐 왔다.


부타는 금수저로 태어나서 생로병사에 관심이 없다가 아버지의 명을 어기고 성 밖을 나서서 거지와 늙은이, 그리고 버려진 환자 등을 보고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고, 충격에 휩싸여 보리수 밑에서 잠들었다가 이러한 깨달음(돈오)을 얻었다.


발생시부터 상호 교류가 없었던 종교간에도 인간이 내적 고통을 받는 이유와 타인에게 해를 가할 수 밖에 없는 존재에 대한 전제를 원초적 범죄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2 죄형법정주의


규율이 없으면, 죄를 지을 수 없다!


죄형법정주의란, 죄의 유형과 처벌과 관련하여 법에 규정이 있어야 하고, 규정이 없으면 죄지은 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왕정시대가 종료되고, 헌법에 의한 군주시대를 거쳐 통치자를 국민에 의해 세우는 민주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죄형법정주의는 기본권적 측면에서나 형사적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원리가 되었다.


실정법적으로 인간이 죄를 짓는 이유는, 법에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법에 죄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어떠한 인간의, 어떠한 행위가 이성적, 도덕적, 감정적으로 부당하다고 느끼더라도 죄가 아닌 것이다.


인간은 점점 도덕적, 감정적, 이성적 범죄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어지고 있고, 법에 의해 처벌되지 않는 행위라면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용기를 내려고 하고 있다. 하물며, 법위반 사실임을 알면서도 누가 인식하지 못 한다면 행위 계속을 유지하려는 생각을 내심으로 품고 있다.


진시황 시대에는 법가사상이 수용되어 법집행이 상당히 엄격했으나, 진시황 시대가 종료되고 유방이 정권을 잡으면서 법규정은 상당히 축소되었고 그만큼 전과자는 감소하게 되었다.


죄에 관한 규정을 세밀하게 규정할수록 인간은 죄를 지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3 불로소득


노력 대비 더 많은 이익을 얻고 싶다!


노예제가 있었던 시절에는 노예주인이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힘든 일’이란 가성비가 매우 떨어지는 그런 허드렛일들이다.


인간은 자기 비용가치와 노동가치에 비해 보다 많은 수익을 얻고자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자기 비용가치와 노동가치와 비례하거나 균등한 수준에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환경과 조건 속에서는 죄를 짓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수익을 노리는 것이 인간의 공통적 목표이고 관심사이기 때문에 경쟁이 발생하고, 이로인해 자기 비용가치와 노동가치에 준하는 수익을 얻지 못 하는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도 훨씬 더 많다.


이럴 경우, 인간은 ‘보다 쉽게, 보다 편하게, 보다 많이’라는 올림픽 표어같은 관심사에 늘 일정 부분 사고의 끈을 놓치 않고, 합법적인 상황과 조건 속에서 그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손쉽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탈법적인 방법을 고안하게 된다.


상대방을 속이면 이익이 된다는 사실, 나를 신뢰하여 맡긴 재물을 써 버리는 것이 손쉽다는 사실, 남이 인식하지 못 하는 순간에 재물을 몰래 가져 올수 있다는 사실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사고에 이르면, 인간은 사기하고 횡령하고 절도하게 된다.


수고로움을 적게 하면서도 많은 수익을 얻고자 하는 생각이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순간, 인간은 죄를 지을 수 있는 잠재적 존재에서 그 생각을 외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실천적 존재로 변화된다.




#4 학습


도덕적, 종교적 가르침에 위배되거나 사회적 합의사항에 위배되거나 법 규정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사는데 지장이 없는 경우를 목격하게 되면 인간은 그러한 상황이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어떠한 계기에 의해서 학습된 범죄행위(도덕적 범죄, 종교적 범죄, 실정법적 범죄)를 행동적 실천으로 옮길 수 있게 만드는 용기가 발생하면 인간은 죄를 짓게 되는 존재로 변화된다.


실정법적 범죄자들이 함께 교화시설에서 지내는 동안, 같은 범죄자라도 그 범죄의 수준이 틀리기 때문에 낮은 죄질의 범죄자는 높은 죄질의 범죄자의 범행수법을 학습하게 된다.


교정시설, 교화시설에서 행해지는 교정과 교화라는 것은 일부 선한 범죄자들에게는 적용되는 정책일 뿐, 나머지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더욱 세련된 범죄수법과 응용된 범행수법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고 있고, 넓혀진 인맥은 향후 재범의 기회의 가능성을 더 많이 제공할 수 있게 된다.




#5 부득이한 사정


인간이 종교적, 사회적, 실정법적 가치와 가르침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고, 대체로 삶에서 잘 실천해 왔다고 하더라도 부득이한 사정이 발생하면 죄를 범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실정법적으로 처벌을 감면하기도 하고, 도덕적 비난의 강도가 낮아질 수 있기는 하다.


자녀가 수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돈이 필요해서 절도를 하거나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경우 등에서는 도덕적 비난가능성과 법적 책임비난의 정도가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부득이한 사정이라는 것은 죄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이해의 구실인데, 부득이한 사정에 해당할 수 있는 행위는 비교를 할 수 있는 비교군이 존재하고, 인간의 이성으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부득이한 사정은 죄를 범하게 하는 요인이기는 하지만, 행위자의 판단이나 그 행위자나 그 행위에 대한 판단은 상당히 감정적인 것이고, 실제로 누가 판단하냐에 따라 부득이한 사정에 포함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 할 수도 있게 된다.




#6 기억의 왜곡에 의한 자기 합리화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희미해 지고, 상실되어 가는 것이 정상이다. 인간이 성장함에 따라, 노화됨에 따라 저장되고 유입되는 정보는 다양하고, 다량이기 때문에 일정한 사실에 대한 기억이 잊혀져 가는 것이다. 또한 뇌피질 자체가 노화되는 것도 생리적 원인이다.


그런데, 기억 중 자기 죄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구체적으로 변화되고, 더 선명해지며 내용 자체가 더 풍부해지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죄를 지은 경우, 죄책감이라는 감정에 의해 고통을 겪게 되고, 후회라는 감정에 의해 죄지은 상황을 몇 번이고 회생하면서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라는 가정적 선택을 계속적으로 반복하게 된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이같은 사고작용을 반복하게 되면, 해당 범죄사실에 대한 기억이 더욱 풍부해지다 못 해 자기 비호와 합리화를 위한 방향으로 기억이 점점 왜곡되어 간다. 어느 순간 범죄자의 기억은 자신의 행위가 부득이한 사정에 속한 행위였고, 해당 상황에서는 누구나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확신을 하게 된다.


인간의 이러한 기억의 왜곡은 우연히 범한 죄를 재차 범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고, 재차 범죄를 범하지 않더라도 이미 행한 죄에 대해서 진지한 반성을 하지 못 하도록 만든다.


불법에는 평등이 없다!


불법에는 평등이 없다. 다른 사람도 범죄하였는데, 왜 나만 처벌하느냐라는 주장은 유효한 항변, 유효한 변호가 되지 못 한다는 말이다.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고, 그러한 유혹에 시달릴 수 있다는 면에서 인간은 평등할 수 있다.


죄에 대한 관념, 명시적 분류, 인간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잠재적 존재


인간은 물건을 분류하고, 사실을 분류하는 수준에서 나아가 사고와 내심까지 분류하는 작업을 해 왔고, 그러한 분류작업에 의해 얻은 지식을 체계화하는 기술도 만들어 냈다. 죄의식 또한 인간의 다양한 의식과 사고영역 중 한 부류인데, 죄의 영역은 더불어 살기 위해서 계속 유지하여야 할 부분과 소거해야 할 부분의 분류과정 중 발생한 것일 수 있다.


매일 접하는 사건과 사고 소식은 학습과 모방의 계기를 마련해 주기 위함이 아니라 반성과 예방을 위한 고지인데, 이를 받아들이는 쪽에서 어떤 선호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해당 사실의 고지는 사뭇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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