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맞는 적절한 태도
웃지 못 할 해프닝 중 하나가 우리가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부모로부터의 여러 금지와 의무부여에 대해 반항심을 가지고 자랐음에도 부모가 되면 부모의 부모처럼 똑같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여러 금지와 의무부여를 한다는 점이다.
혈기가 왕성한 청소년, 대학생 시절에는 기성세대의 모순과 경직성, 자본가와 재벌의 부조리, 건전한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의 상실, 사회로부터 소외된 취약한 부류들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사회를 변혁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때로는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대추구와 같은 불로소득으로 부자가 된 자본가, 재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건실하고 사회기여를 하는 자본가들도 있으며,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불가피한 결론일 수 밖에 없으며, 취약한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구제가 완전하게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회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포함하고 있고, 어느 한쪽을 지향하면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게 되어 있다. 물론, 손해를 보는 쪽이 양보와 배려, 피해를 감수한다면 더할 나위없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 존재이고, 이기적 존재들이 일정한 규칙 하에 사회라는 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일편단심으로 사회를 변혁하는 것은 세상을 아직 양면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청년의 경솔함은 나이가 들면 어느 정도 수정된다. 그러나, 필드에서 은퇴한 사람들, 곧 은퇴할 사람들은 매우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고, 고집불통이다. 자신들이 살아온 세상에서는 자신들의 생각과 행동이 옳았을지 모르지만, 세상은 자신들이 노화된 만큼 변화된다. 그렇다면 은퇴예정자, 은퇴자들은 변화된 세상이 던지는 메세지, 시대의 조류,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경솔한 청년들에 대한 지도와 경솔을 제외한 옳바른 가치에 대해서도 포용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청년들은 예리하지 못 한 창을 들고 기성세대가 쌓아 올린 벽을 깨려고 하지만, 수단과 객체가 전혀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지는 못한다.
나이가 들어서는 말수를 줄이고 지갑을 자주 열어야 한다. 청년들은 자신들조차 기성세대가 되기 때문에 기존의 기성세대에 대해 지나친 반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기성세대는 청년들의 혈기왕성한 활력에 대해 칭찬을,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중후함과 한때 이 사회에 공헌한 기여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나이에 따라 그 나이에 맞게 사고하고 행동하며 행동거지에 변화를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