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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May 03. 2016

실력있는 악역 VS 착한 주인공

윤소평변호사

# 악역이 주목되는 영화나 드라마


악녀나 악역의 역할이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잘 묘사되어서 시청자로 하여금 흥분과 울분을 감추지 못 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악녀나 악역은 주인공이 누려야 하는 인생을 바꿔치기하거나 주인공의 업적을 가로채는 등 주인공의 고혈을 빼내어 자신의 이익으로 귀속시키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불법행위도 자행하는데 서슴치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의 러닝타임이 어느 정도 진행되기 전까지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불행과 그 원인에 대해서 전혀 인식하지 못 한다. 주인공은 억울한 누명까지 쓰면서 주변 인물들로부터 오해까지 산다. 


주인공은 이런 상황에서도 늘 긍정적인 삶에 태도를 견지하고, 자신이 궁지에 몰렸음에도 어려운 타인을 돕기까지 한다. 참, 오지랖도 넓다. 




# 악역의 실질적 능력 - 실리주의


악녀나 악역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타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온갖 허위의 사실을 말한다. 거짓말의 달인이다. 그런데, 상황에 맞게 유효적절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고, 그 거짓말에 설득되어 타인이 이해하고 그 상황을 넘긴다는 것은 그만큼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설득력이 있다는 말이다. 


악녀나 악역은 자신의 거짓말이 탄로날 것을 염려하여 여러 채널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실체적 진실이 드러날 수 있는 인간관계는 의도적으로 그 만남을 단절시킨다. 물론, 드라마 후반으로 진행되면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 어찌되었든 악녀나 악역의 농간에 진실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관계의 만남은 지연된다. 


악녀나 악역의 업무수행능력 또한 착한 주인공의 능력에 버금간다. 통상 후계자 지정 경합에서 최소한 악녀나 악역은 최종 결승까지는 간다. 악녀나 악역이 최종 결승에서 패배하는 주된 이유는 시험에서 요구하는 객관적인 평가기준에 미달하기 때문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에서의 기준에 미달하기 때문이다. 착한 주인공이 승리해야 한다는 숙제때문에 실력있는 악녀나 악역은 인본주의적 관점에서의 시험답안을 작성하지 못 한다. 


악역이나 악녀의 실질적인 능력은 실리주의에 입각해 있다. 그 자체로는 흠잡을 데가 없으나, 여러 타인을 기망했다는 점 때문에 악녀나 악역은 죄값을 치르게 된다.




# 착한 주인공의 실질적 능력 - 이타심


착한 주인공은 어떤 상황에서나 합리적인 결정, 경제적 이익이 되는 관점에서의 결정과 선택을 하지 않는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결정을 한다. 그리고, 결코 현실에서 그러한 인물이 실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정적인 생각까지 품게 만든다. 


지금 제 코가 석자인데, 누구가를 도와야 하고, '어떻게 그래요'라는 듯한 태도로 답답한 행동을 실행에 옮긴다. 사랑과 애정이 넘친다고 해야 할까. 이타적이라고 해야할까. 부족한 상황에서도 넉넉한 심적 여유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착한 주인공의 선행은 반드시 영향력있는 인물에게 자주 목격당한다. 그리고, 그 영향력있는 인물은 반드시 착한 주인공의 혈연관계로 밝혀지거나 최종 결승전에서 캐스팅보트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착한 주인공은 운좋게 인맥을 형성했다. 


착한 주인공의 학력은 그리 높지가 않다. 악녀나 악역은 일류 대학을 나왔거나 해외 유학을 다녀와 대부분 스펙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녀나 악역은 착한 주인공을 이유없이 시기, 질투하는데, 악녀나 악역이 착한 주인공의 신분을 가로채기한 경우에는 이같은 악녀나 악역의 심리가 조금 이해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러한 설정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착한 주인공은 대부분 엄청난 성실함을 보여준다. 남들이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의 최소한 두 배 이상의 일을 해 낸다. 그러면서도 늘 미소를 잃지 않는다. 힘들고 찌들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다? 가히 현실성이 없는 것이다. 


착한 주인공의 컴플렉스는 '착한 사람 컴플렉스'라고 할 수 있다. 전반적인 상황에서 자신이 손해보는 결정을 하고, 예스맨처럼 뭐든 예스라고 한다. 


착한 주인공의 실질적인 능력은 결코 객관적인 관점에서는 그리 높게 평가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 하다. 그리고, 의사결정과 선택의 결과가 비합리적이고 비경제적이다. 다만, 사람좋다는 평가는 얻는다.



# 착한 주인공은 어떻게 실력있는 악역을 이기는가


착한 주인공과 실력있는 악역간의 관계가 출생의 비밀이라는 상투적인 설정인 경우에는 출생의 비밀, 혈연관계가 밝혀짐으로써 착한 주인공의 비루한 삶이 호화로운 삶으로 자동복귀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제외하고 착한 주인공이 실력있는 주인공을 이기는 과정은 착한 주인공이 실리주의적 태도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착한 주인공이 실력있는 악역처럼 불법행위를 자행하지는 않지만, 실력있는 주인공의 의사결정처럼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나도 이제 과거의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아', '예전의 호락호락한 내가 아니야'라며, 결국 정도를 준수하면서 실력있는 악역의 행보를 따라 행동함으로써 착한 주인공은 실력있는 악역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착한 주인공은 그간 자신이 답습해 오던 의사결정을 버림으로써 악역을 이길 수 있게 되는데, 이는 악역의 의사결정이 현실적이고 실리에 부합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착한 주인공이 악역을 이기는 또 하나의 방법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악역이 자멸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착한 주인공은 악역이 행한 악행을 밝힘으로써 네거티브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악역이 행한 악행이 불법행위일 경우에는 당연히 그에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만, 불법하지 않은 거짓과 이타적이지 못 한 이기적인 결정과 행동을 했다고 해서 악역이 심각하게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악역이 착한 주인공을 지나치게 견제했다고 해서 악역이 모든 사람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 착한 주인공의 의사결정과 행동은 사람을 얻은 기술이었나


실리를 따라, 경제적 이익을 따라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을 할 경우, 지나치게 정확한 계산하에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정이 없는 사람, 깎쟁이 등의 표현을 써가며 그리 높은 호감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실력있는 악역은 정확한 판단과 합리에 입각한 결정을 하였음에도 사람을 얻는데 실패를 한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능력과 스펙이 달리는 착한 주인공이 승리하는 까닭은 그가 지나칠 정도의 비합리적인 결정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얻어서 그런 사람들이 후일 착한 주인공을 도와주기 때문일까. 


마치 100원과 500원을 동시에 주었을 경우, 100원을 가져가는 거지가 신기해서 계속해서 사람들이 100원과 500원을 동시에 쥐어주는 실험을 반복해서 결국에는 멍청해 보이는 행동이 장기적 관점에서 더 이익이 된다는 그런 전략을 착한 주인공이 구사했다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전달메세지와 착한 주인공 승리결말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논의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어찌되었든 착한 주인공이 승리를 거두는 이유는 사람을 얻는 기술에 있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물론 출생의 비밀이 착한 주인공의 승리 원인이라면 착한 주인공은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의해 승리한 것이 아니라, 금수저의 승리일 뿐이다. 


# 착한 주인공은 도덕과 원칙을 고수하였나


드라마와 영화, 소설 등은 결국 메세지 전달이라는 한계적 상황때문에 사필귀정, 권선징악에 입각한 결론을 이끌 수 밖에 없다. 


착한 주인공은 도덕, 선행의 표본인데, 악역을 이기기까지 도덕과 원칙을 고수하였을까. 착한 주인공은 악역에게 더 이상 당하지 않겠다는 결심에서 의사결정과 행동양식을 급변시킨다. 비도덕적이고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실리적 선택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다. 최소한 도덕은 유지했다고 평가하더라도 자신의 원칙에서는 일탈한 결정을 한다. 


동해적 보복(같은 해악에 대해서는 같은 정도의 보복)에 입각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결정과 행동을 한다. 착한 주인공은 결론에 이르러서는 더이상 착하지 않게 된다. 



# 실력있는 악역의 선택의 필연성


실력있는 악역은 다소 표독스러울 정도로 독한 성격의 캐릭터가 많다. 가난과 지독하게 재수없는 운명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단련하고, 절제할 수 밖에 없다는 숨가쁜 한계적 상황을 겪고 있기 때문에 뒤로 물러서거나 추락하는 선택을 할 수 없다. 오로지 홀로이기 때문에 주저앉았을 경우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 


실력있는 악역의 잘못은 욕망의 절제를 찾지 못 한데 있고, 그러한 지나친 욕망이 수단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하고,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무시된다는 현실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착한 주인공은 크게 욕심도 없고, 주어진 환경이 자신의 운명이려니 하고 살기 때문에 꿈이 소박하다. 소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욕망은 있어도 야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욕망은 착한 주인공에게 찾을 수 없다.


악역의 성장배경과 환경을 이해하면 악역의 선택중 대다수가 필연이라는 이해를 할 수도 있다. 어두운 미래, 지독한 가난, 끝이 보이지 않는 삶의 장애들. 악역은 지나치게 자신을 혹사시킨 나머지 업적을 이루고 나서는 대부분 중병으로 숨을 거둔다. 


# 착한 주인공에 대한 지나친 상대적 비교


착한 주인공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음에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처럼 악역의 눈에는 비친다. 그리고, 악역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착한 주인공의 능력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악역은 지나치게 착한 주인공에 대해 학습적 능력, 업무적 능력, 대인관계 등 다각적 측면에 비추어 상대적 비교의 끈을 놓치 않음으로써 스스로 편협해져만 간다. 결코 착한 주인공이 악역을 따라잡을 수 없는 측면이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악역의 뇌리에 가중치를 둔 측면이 착한 주인공에 있음으로 인해 악역은 결코 착한 주인공을 사랑할 수가 없다. 


# 착한 주인공 vs 실력있는 악역


착한 주인공은 비현실적이고 합리적이지 못 한 의사결정을 자주 반복한다는 것을 보았고, 실력있는 악역은 개인적인 능력이 상당히 출중하고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결정을 자주 반복한다는 것을 보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두 카드 중 하나는 버려야 하기 때문에 착한 주인공 카드가 손에 남게 되겠지만, 현실에서도 그같은 결정이 옳은 것인가.


착한 주인공의 의사결정과 선택을 현실계의 사람들이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악역의 실리적인 결정에 대해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다만, 악역이 위법한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 


착한 주인공과 실력있는 악역의 믹스가 사실은 가장 좋아 보인다. 어느 정도 도덕적이고, 원칙을 대체로 유지하면서 실리적인 결정과 행동을 하는 도덕적이며 실력있는 주인공, 실력있고 원칙을 대체로 유지하는 악역, 이런 정도의 인간형이 나올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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