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의 성장_밥
어머니는 압력솥에 밥을 하셨다. 저녁때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부엌에서 칙칙폭폭 거리는 작은 기차 소리가 났다. 드디어 밥이 다 되어간다는 신호였다. 나는 그때부터 부엌에 들어가서 식탁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둘러보았다. 그러다 어머니가 시키면 식탁 위에 반찬을 갖다 놓기도 하고 숟가락을 놓기도 했다. 어머니는 압력솥에서 칙칙폭폭 거리는 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솥뚜껑을 여셨다. 압력 밥솥 손잡이를 잡고 뚜껑을 돌려서 들어 올리면 하얀 김이 안개처럼 한꺼번에 피어올랐다.
나는 하얀 김이 나오는 쪽으로 얼굴을 대고 촉촉한 김과 함께 특유의 밥 냄새를 맡았다. 고소하기도 하고 우유냄새 같기도 하고 뭐라고 비유할 수 없는 밥 냄새였다. 밥 안에 콩이 들어 있을 때는 콩 냄새도 같이 났는데 콩 냄새는 밥 냄새보다 진해서 콩국수 먹을 때 나는 냄새가 그대로 났다. 김이 한번 빠지면 어머니는 주걱으로 밥을 저은 뒤에 밥그릇에 밥을 푸기 시작했다. 갓 지은 밥이 밥그릇에 담겼다. 나는 밥의 양이나 누룽지를 넣거나 콩을 빼거나 해달라고 주문해서 입맛에 맞춘 내 밥을 챙길 수 있었다. 옆에서 밥을 풀 때 지켜보는 사람의 행운이었다. 나는 대체로 매일 아침과 저녁에 금방 지은 뜨거운 밥을 먹으며 자랐다. 대단히 특별하지 않은 흔한 보통 애들의 일상이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뜨거운 밥을 먹으면서 자랐지만 어떤 쌀로 밥을 하느냐에 따라서 밥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유학생 시절이었다. 기숙사 식당에 메인 요리로 소고기와 야채가 들어간 비프스튜가 나오는 날이 있었다. 그때 스튜 옆에 같이 나오는 메뉴는 쌀밥이나 으깬 감자였고 둘 중에 하나를 고를 수가 있었다. 나는 쌀밥을 골랐다. 그러면 커다란 쇠 숟가락으로 쌀밥을 떠서 접시 한쪽에 깔고 그 위에 스튜를 뿌려줬다. 그러나 그 쌀밥은 내가 예상한 그런 쌀밥이 아니었다. 쌀의 모양이 약간 길고 서로 붙지 않아 포크로 뜨면 아래로 흘러내렸다. 스튜의 국물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그 쌀은 원래 그렇게 밥을 해도 서로 붙지 않고 자유롭게 흐르는 쌀이었다. 나에게는 처음으로 쌀과 밥에 대한 다양성을 생각을 하게 만든 음식이었다. 기숙사에서 나오는 밥보다 조금 더 붙어 있는 밥은 흔하게 있는 중국집에 가서 먹는 밥이었다. 물론 집에서 먹던 밥과는 비교 안되게 가볍고 흩어지는 밥이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특히 중국집의 볶음밥은 길고 흩어지는 쌀 때문에 더 맛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몇십 년 된 노포가 골목 사이사이에 있는 을지로입구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막 회사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는 점심시간에 우르르 밥을 먹으러 나가는 것이 굉장히 어색했다. 더구나 갓 입사한 나는 회사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매일 같이 밥을 먹을 사람을 찾는 것도 모르는 동네에서 적당한 식당을 찾는 것도 다 어색했다. 처음 며칠은 팀의 선배들이 신입을 위해서 같이 밥을 먹어 주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나서는 각자 약속이 있다고 나가고 가끔 남은 사람들이 같이 먹거나 아니면 혼자 남았다.
신입에게는 점심시간은 회사에서 맞이하는 가장 어색한 시간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모든 것이 익숙해지자 나의 점심시간은 어떤 메뉴를 먹을까로 고민의 폭이 좁혀졌다. 매일 뭔가를 먹어야 하는데 맛없는 것을 먹기는 싫고 주변의 식당들은 다 가봐서 메뉴 선택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쌀보다는 밥의 보존기간이 내 관심사가 되었다. 식당에서 스텐 밥그릇에 담겨 나오는 밥이 오래전에 담아 놨던 밥이면 밥이 정말 맛이 없었다. 보통 일찍 퍼놨던 밥을 주는 곳은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식당이 그랬는데 밥뚜껑을 열면 물기가 뚜껑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밥은 미지근하고 뭉쳐있었다. 밥맛이 뚝 떨어졌다. 나는 금방 한 뜨거운 밥을 퍼주는 식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김치찌개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회사 근처에서 밥은 김치찌개 집이 가장 맛있었다. 돌솥에 금방 한 밥을 퍼줬기 때문이다.
어느 봄날 나는 도쿄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대부분 혼자 가는 출장이었는데 그때는 여러 부서 직원들과 같이 가게 되었다. 출장 중에 시간이 나서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직원들과 같이 롯폰기를 둘러보게 되었다. 네 명 모두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거리를 구경하다가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밥 먹을 곳을 찾았다. 그러다가 어떻게 해서 골목의 작은 덮밥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테이블이 서너 개 있는 작은 집인데 아직은 점심시간이 시작하지 않은 조금 이른 시간이라 식당은 한산했다. 바에 앉아서 먹고 있는 두 명의 손님밖에 없었다. 우리 넷은 입구 쪽의 테이블에 앉았다. 앉고 보니 정말 몸이 다 부딪힐 정도로 테이블도 좌석도 좁았다. 잠시 후에 우리 음식이 나왔다.
덮밥 그릇이 생각보다 몹시 큰 그릇이어서 서로 마주 보면서 밥을 참 많이 준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모둠 튀김 덮밥을 먹었는데 덮밥 위에 있던 튀김도 바삭하고 맛있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던 밥이 정말 맛있었다. 금방 지어서 담은 밥이었다. 쌀알이 모두 촉촉하고 엉겨 붙지 않았고 밥냄새가 좋았다. 거의 다 먹었을 때는 밑에 흰 밥이 조금 남았다. 나는 거기에 간장을 살짝 뿌려서 싹싹 먹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계속 밥이 정말 맛있다고 하면서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요즘 쌀이 팔리지 않는 건 전처럼 밥을 안 먹어서다. 밥이 맛있으면 많이들 사 먹을 거다. 대체로 금방 지은 밥은 맛있고 오래 보관한 밥은 맛이 없다. 밥을 너무 대충 주는 식당은 가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갈만한 식당이 내게는 많이 없다. 밥 냄새가 폴폴 나는 따뜻한 밥이 귀한 음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