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조세핀

입맛의 성장_아이스크림

by YS

나에게 아이스크림이란 영원한 행복이다. 어릴 때부터 이제까지 아이스크림이란 단어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아이스크림이란 어떤 경우에도 통하는 마법 같은 행복의 단어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된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그랬던 것은 분명하다. 나는 아이스크림의 차가우면서도 달콤하고 빨리 먹지 않으면 다 녹아버리는 점이 맘에 든다. 커다란 통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퍼서 먹는 것도 좋고 하나씩 나눠져 있는 콘이나 딱딱한 바를 먹는 것도 좋다. 그 모양이나 맛이 항상 변하고 있어서 새로운 도전을 요구하는 것도 좋다.

아이스크림의 마법은 여러 종류가 있다. 집으로 돌아갈 때 기분이 안 좋으면 편의점에 들러서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보고 어떤 아이스크림을 먹을까 구경하면서 고민하다 보면 모든 게 리셋된다. 반대로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때 다 마치고 돌아오면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어야지 생각하면 하기 싫은 일을 금방 끝내게 된다. 바람이 적당히 불고 시원한 날에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나무 그늘가에 벤치에 앉아 달콤함을 느끼며 먹다 보면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내가 어릴 적 아버지는 일찍 퇴근해서 오시는 날은 어김없이 빵집에 들러서 빵과 아이스크림을 사 오셨다. 나는 빵보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다. 그 빵집의 아이스크림은 어디에서도 사 먹을 수가 없는 그 집만의 독특한 아이스크림이어서 더욱 그랬다. 슈크림과 같은 노릇한 껍데기가 주먹만 한데 그 안에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는 조세핀 아이스크림이 그것이었다. 나는 노릇한 슈크림빵의 부드러우면서도 살짝 기름진 맛을 느끼면서 처음에는 겉표면을 조금 베어 먹는다. 그리고 좀 더 베어 물면 차갑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빵과 함께 어우러지는데 달콤함과 미끌거리는 슈크림빵이 너무나 맛있었다. 다 먹어 갈 때쯤이면 슈크림빵이 안에서 녹는 아이스크림에 젖어서 적당히 흐물거렸는데 그때도 맛있었다. 아버지가 사다주시는 그 동그란 한 주먹의 조세핀 아이스크림은 나의 최고 간식이었고 먹는 동안은 행복 그 자체였다.

지금도 조세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지만 이제는 파는 곳이 없다. 내 아이스크림의 역사 속에만 찬란하게 남아있다. 조세핀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팔던 빵집은 여러 개의 분점이 생기고 유명해졌지만 아이스크림은 사라졌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아이스크림을 파는 집도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이 쓸쓸히 사라진 것은 아직도 서글픈 일이다. 나는 그 빵집에는 더 이상 가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이 없어진 이유이기도 하고 다른 빵들의 맛이 내가 기억하던 맛이 아니어서 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 아이스크림의 역사에서 아직도 오랜 시간을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현존하는 아이스크림도 있다. 그것은 팥으로 만든 바인데 아주 기다란 것이다. 팥 맛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아이스크림으로 나온 팥은 좋았다. 팥빙수보다 그 아이스크림을 쥐고 먹는 게 훨씬 맛있었다. 물론 어릴 때 그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옷에 반드시 팥색깔의 자국이 남았다. 그건 그 아이스크림이 너무 길어서 먹다 보면 녹아내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스크림에 집중해서 손에 차가움이 느껴지면 그제야 녹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아래로 핥아먹었다. 그러다가 먹는 속도가 녹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목 아랫부분에 팥물을 흘리곤 했다. 아직도 그 아이스크림은 편의점이나 슈퍼에 가면 판다. 지금은 내가 커졌는지 모르지만 크기가 작아졌다. 적어도 내가 먹는 속도가 아이스크림이 상온에 노출되어 녹는 속도를 따라잡아서 팥물을 흘리는 일이 없다. 그대로 그 크기였다면 가격이 얼마나 비싸질지는 모르지만 중량과 원료가 그대로 유지된 원조를 먹고 싶다.

수많은 아이스크림을 먹었지만 내게 가장 큰 위로를 주던 아이스크림이 있다. 지금도 고급 아이스크림에 속하는 아이스크림 전문점 아이스크림이다. 대학을 다닐 때 우리 학교 서쪽 끝의 길에서 차로 십 분만 북쪽으로 올라가면 피자전문점이 있고 그위에는 작은 몰이 있었다. 몰이라고 해봐야 단층으로 네다섯 개의 가게들이 있는 그런 작은 몰이다. 그 몰의 첫 번째 집이 아이스크림 전문점이었다. 그곳에 들어가면 차가운 공기와 환한 유리 안에 진열된 가지각색의 아이스크림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천천히 그 유리안을 구경하면서 어떤 맛을 먹을까 정하는 시간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오직 아이스크림의 맛만 상상될 뿐이었다.

아이스크림에 대한 나의 입맛이 한층 성장한때가 그때부터였다. 햇살도 쨍쨍한데 낮시간부터 할 일이 없고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는 공허한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조용히 혼자 그곳에 갔다. 문을 밀고 들어가면서 경쾌한 종소리가 들린다. 두근 거리며 아이스크림을 골라 와플콘에 담아 갖고 나올 때 햇살이 찬란하게 내 앞 길을 비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순간은 그랬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스크림이 커다란 풍선이 되고 내 마음은 푸르고 맑은 하늘로 높이 높이 날아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