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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26. 2022

등기우편

어제는 월요일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한여름 특유의 습한 날씨 탓인지 기분이 처졌다. 사무실 창가로 보이는 거리의 풍경은 뭔가 허전하기만 하고, 그냥 월요병에 더위 탓이라고 치부하고 말았다. 어쩌면 요즘 내 기분이 문제일 수도 있다. 얼마 전 읽었던 미야모토 테루의 <금수>때문일 수도 있고. 꼭 그렇게 슬프게 결론을 맺어야 하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을 잊고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아무리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해도. 내가 그들이었다면 그렇게 끝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이 마지막 편지를 끝으로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겠다고 했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나는 책을 덮지 못하고 주인공들의 무심함을 탓하다가 다시 작가를 원망하고 말았다.


"어머니가 만약 살아 계셨다면 그런 사건이 있어도 아마 저와 당신의 이혼에 반대해 주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만약~’이라든가 ‘~다면’이라는 말은 아무리 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소용없는 일을 입에 담는 것도 푸념이겠지요."


주인공 아키의 자조적인 말. 제3자인 나도 섭섭한 마음이 드는데 당사자인 그녀는 오죽할까. 하물며 원치 않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으니, 마음 아픈 일이다.

얼마 전 우체국으로부터 등기우편을 받아 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집에 아무도 없어 전달하지 못한 것 같다. 등기가 올 일이 없는데, 뭐지? 확인해 보니, 서울지방변호사협회에서 공직퇴임변호사 수임 내역을 신고하라는 공문이었다.


문득 아직도 그걸 내야 하나? 벌써 공직을 떠난 지 햇수로 3년이 흘렀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내가 검사였었구나 하는 생각까지도. 고위공직자는 공직을 떠난 후 변호사를 하더라도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수임 내역을 제출해야 한다. 전관예우 방지 차원이라고 한다. 물론 나는 변호사를 오래전에 휴직했으니 해당 기간 동안 수임한 사건은 없다.


변호사를  기간도 불과 7개월 남짓, 그것도 마지막 3개월은 변호사로 활동을 하지 않았으니 변호사를  것도  6개월이 되지 않는 셈이다. 특별히 많은 사건을 수임하지도 않았다. 변호사를 하려면 사람을 많이 알아야 한다. 소위 마당발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직업이다.


그러나 검사는 다르다. 오히려 사람을 많이 알면 부탁받을 일이 많아 부적절한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이다. 검사와 변호사,  상반된 직업적인 특성 속에서 고민이 되었다.  


검사에 비해 변호사는 출퇴근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인데, 그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같은 법조인이지만 성격 자체가 많이 다르다. 평생 검사를 한 나 같은 사람은 영리를 추구하는 변호사로 변신하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는 적응하는 데 무척 힘들었다. 사실 헤맸다고 하는 게 맞다. 변호사도 좋은 점이 많은 직업이지만, 평생 검사로서 경직된 삶을 살았던 나로서는 그 좋은 점을 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공직을 떠난  좋은 점도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진다는 .  해도 자유롭다는 . 특히 기자들이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등등. 아무튼 변호사협회에 제출할 서류도 '수임내역 없음'으로 간단히 기재해서  장으로 보내면  터였다. 이게 마지막이니 공직과 관련된 어떤 연관도 이젠 없어졌다. 서류를 작성하면서 기분이 묘했다. 잊힌 사람이 되는  아닌가하는 섭섭함부터 홀가분함까지.


나는 섭섭한 마음을 이렇게 정리했다. 사람들에게 잊히는  두려워하지 말자고. 잊힐 때는 잊히는  낫다고. 중요한  내가  있는 곳에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오히려 무엇을 하느냐보다 그게 훨씬  중요하다고.


지금까지는 오랜 기간 검사로서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뭔가 다른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를 위한 일이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이건.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겠다. 죽을 때까지 모를 수도 있고, 그런 일이 나에게  이상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세상을 탓하고 싶지 않다. 물론 스스로를 자책하고 싶지도 않고. 중요한  현재의  삶이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남은 생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키와 아리마는 그게 마지막이었을까. (...) , 그만 생각해야겠다. 나는 이게 문제다. 책이든, 영화든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해서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는 ... 내가 주인공도 아닌데. 그렇게 무더운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잘 지낸다 해도

잘 못 지낸다 해도

그 어떤 대답도 나를 슬프게 만드는

헤어진 너의 안부

  

알아서 안 될 것도 없고

안다고 변할 것도 없지만

누구보다도 궁금한 이야기인데

누구보다도 듣고 싶지 않은 네 이야기

 

 

<이애경 _ 너라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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