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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01. 2022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삶과 시간에 대한 나의 태도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거시적으로는 가능한 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었고, 

미시적으로는 매 순간 무언가에 전념하여 

[충실감]을 가지고 사는 것이었다. 


<나카무라 유지로>

지난 주말, 집 근처 교보문고에 들러 책 몇 권을 샀다. 주말이면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서점 들르기. 주말이 주는 무료함을 달래주고, 때로 정신적인 자극을 주기도 하는 서점. 책 제목에 시선이 사로잡혀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시집이라서 그런지 제목부터 시적이다. 책의 머리말에 나오는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소개가 인상적이다. 


시 평론가 데이비드 오어(David Orr)가 보고하기를, 어떤 임의의 X에 대해 '나는 X를 좋아한다'와 '나는 X를 사랑한다'의 구글 검색 결과를 비교해 보면, 대체로 '좋아한다(like)'가 '사랑한다(love)'보다 세 배 더 많다고 한다. 예컨대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가 '나는 음악을 사랑한다'에 비해 훨씬 많다는 것. X의 자리에 '영화, 미국, 맥주'등등을 넣어도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이상하게도 시(poetry)만은 결과가 반대여서 시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두 배 더 많다고 한다. 왜일까? 나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훌륭한 시를 읽을 때 우리는 바로 그런 기분이 된다.


감정과 느낌이 압축된 문장을 읽으면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다가도 반복해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 있다. 압축적인 표현과 세련된 절제미, 시가 갖는 힘이리라. 우리 삶도 그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시를 멀리했다. 삶은 점점 더 메말라가고, 시를 읽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각박해져서 시를 읽지 않게 된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었다. 


내 삶이 한 편의 시를 닮았으면, 무엇보다 시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직설적인 표현보다 은유와 비유를 통해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면 좀 더 부드럽게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힘든 상황이 덜 힘들 것 같기도 했고. 반전은 없겠지만 상황을 대하는 마음은 달라질 테니까. 


무엇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이 나를 향한 은유일 수 있다면,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는 사라지기 위해, 누구는 사라지지 않기 위해 쓴다고 했다. 아름답자고, 추악해지자고, 자유와 자유의 실패 속에서 자란다고도, 죽는다고도, 아무것도 아니라고도. 인간의 안쪽으로, 바깥쪽으로, 한 손에는 모래 한 줌, 한 손에는 온 우주를 쥐고 똑바로 걸어가는 거라고도 했다.
꽃을 샀다가 서둘러 탄 막차 속에서 망가져버렸다. 차마 버리지 못했다. 등 뒤로 감추고 돌아왔는데 이런 예쁜 꽃다발을 어디서 가져왔냐고 환하게 웃는 사람이 있었다. 그 얼굴을 보면서 아주 오래도록, 가만히 있고 싶었다. 그러지 못했다.
어떤 균형으로만 위태롭게 서서 만나게 되는 무언가, 찰나에 마주 서서 가만히 웃거나 우는, 어쩌면 그게 내가 하는 전부와 하고 싶은 전부가 아닐까, 절반은 알고 절반은 모른다. 다만 아주 가끔씩만, 나는 희망도 절망도 아닐 수 있었다. 그때서야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다.
<가만히 웃거나 울면서>, 최현우



책 속에 파묻혀, 책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과 함께 몇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잠든 영혼이 깨어나기라도 하듯 정신이 번쩍 든다. 눈이 피로해질 때쯤 읽던 책 몇 권을 사서 서점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곡. 엘튼 존이 반했다는 우리나라 인디 밴드 세이수미(Say Sue ME)의 최근 발매곡 'Around'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시집에 있는 짧은 한 편의 시 <고백>, 내가 언젠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아직 말하지 않음으로 

나는 모든 것을 말하였으므로


<고백 _ 배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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