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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r 30. 2023

살아 있다는 건 아름다운 일

최승자 시인은 <20년 후에, 지芝에게>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살아 있다는 건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라는 시인의 고백이 무척 공감이 갑니다. 아슬아슬한 것은, 삶이 순조롭게만 흘러가지 않고 때로 예기치 않은 역경이나 고난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순경과 역경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니 아슬아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살아 있다는 건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고. 떠오르는 아침해를 바라볼 수 있고.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봄꽃의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으니까요. 찾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아름다운 것들과 그 아름다움을 머금은 순간들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제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그 모습도 아름다우리라 믿고 있습니다. 어떤 대상에, 어떤 일에 몰입하는 사람만큼 아름다운 장면은 없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풍경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완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멀리서부터 요란한 소리를 내지르는 파도 소리를 듣는다. 그 거대한 검은 파도 위에서 한 걸음 나아가지만, 그러나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고 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골길을 걷고, 책을 펼치고, 장미가 꽃을 피우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무엇이 의미 있는 일이겠는가?"


크리스티앙 보뱅이 <환희의 인간>에서 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지금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지금 이 순간 읽고 있는 책, 걷고 있는 길,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온 이름 모를 들꽃, 지금 듣고 있는 음악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삶, 삶의 의미는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일상의 삶 속에 있습니다.


이 순간을 어떻게 내면화해서 기억하고 추억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남은 삶도 달라질 겁니다. 지금은 사소해 보이지만, 지나고 나면 모두 아름답게 기억될 순간들입니다.


그리고 참,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가 연주한 바흐의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파르티타 3번 E장조'도 아름답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편곡을 해서 그런 걸까요. 듣고 있으면 저처럼 분명 빠져들 겁니다.  




J.S. Bach: Partita for Violin Solo No. 3 in E Major,

BWV 1006 - I. Preludio

(Arr. for Piano by Rachmaninoff)  

Daniil Trifo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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