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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19. 2023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그런 날이 있었다. 원하는 건 이루어지지 않고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은 일어나는 날, 도저히 감당하기에 벅찬 힘든 상황 속으로 내몰렸던 날. 처음에는 절망스럽고 힘들었다. 대개는 내 잘못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이유를 찾기 어려운 일도 있었다.


내가 믿는 하나님께 물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시나요?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교회에서 목사님들로부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권면을 들은 바 있어서, 혹시 '아직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해서 그런가?' 아니면 '하나님이 혹시 나를 버리신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온갖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지 잘 모른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었고, 성경을 꾸준히 읽으면서 성경이 믿어졌을 뿐이다. 나는 불같이 뜨거운 열정이 없는 머리로만 믿는 기독교인이었는지 모른다.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처럼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성도 말이다.


누구나 어려움이 찾아오면,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고 그래도 안되면 절대자에게 호소한다. 기독교인이든 불교신자든 심지어 무신론자까지도 기도의 대상만 다를 뿐 차이가 없다. 기도 외에 달리 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나날들, 돌파구를 찾기 어렵고 벗어날 길도 없는 막막한 상황이 오래되면 자칫 삶을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나를 넘어선 절대자가 내 곁에 있다고 믿었지만 그 순간만은 철저히 혼자였다.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시고, 이렇게 해봐도 답이 없고 저렇게 해봐도 답을 찾을 수 없으니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수도 없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하나님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아직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겪는 불운이나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기도했는데 이게 뭐지? 기도하면 기도한 대로 돼야 하지 않나?’ 의문만 커질 뿐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깨달은 건, '나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따지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남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나한테 왜 일어나면 안 되는 거지.'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거야. 그러니 너무 억울해하지 말라고.'


그렇다면 기도 내용도 바뀌어야 했다. '하나님, 저에게 왜 이런 어려움이 주어졌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제가 이 상황 속에서 버틸 용기를 주시고 힘을 주세요.'라고. 용기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으며 그 상황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힘을 의미한다. 믿음은 의지고 용기였다.


오스왈드 챔버스 역시 이렇게 말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과 모순되는 불의하고 악한 상황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믿음은 어렵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통과해야만 한다.



인생은 내가 ‘원하던 일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보다 내가 원하지 않던 일들이 일어났을 때 그 ‘상황을 내 삶 속에서 어떻게 해석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 나에게 일어난 사건보다는 그 사건을 보는 나의 시선과 자세가 중요하다는 거다. 나도 처음에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비관하고, 원망하고, 외면하고 그런 시간 속에서 점점 마음은 비뚤어져 가고, 남는 것은 더 큰 절망과 끝없는 불만과 상처 그리고 자포자기. 그럴수록 나만 힘들 뿐 어떤 문제도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고통과 싸우지 말고 고통을 인생의 한 과정으로 품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이미 일어난 일, 돌이킬 수 없어. 그럼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미성년자인 조이서를 출입시킨 일로 영업정지를 당하자 실의에 빠진 단밤 식구들에게 박새로이가 한 위로다. 맞는 말이지만 보통의 내공이 없이는 선뜻 와닿지 않는 말이다.


하나님도 이미 일어난 일을 바꾸시지는 않는다. 짜증 내고 원망한다고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애초에 그런 일이 안 생기게 막아주시면 안 되는 거냐’고. 맞는 말,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나님은 충분히 그러실 수 있다. 그럼에도 안 좋은 일이 나한테 일어났다면 그 원인이 나로 인함이든, 타인으로 인함이든 무슨 선한 뜻이 숨어 있음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상황은 바꾸시지 않지만 나에게 일어난 안 좋은 그 일로 나를 바꾸어 가신다. 믿음은 바로 그것이다. 믿기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조차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모든 것이 협력하여 결국은 선을 이룰 것임을 끝까지 믿는 것이다.


그전에 '하나님, 제게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나요?'라고 먼저 묻는 것이 우선이고 당연한 질문이다. 혹시 그래도 나처럼 답을 구하지 못했다면 이렇게 기도하면 어떨까. '저에게 왜 이런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 혼자 힘으로는 어려우니 힘과 용기를 주세요.'라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께 물어보면서 나가는 것, 그게 바로 믿음 있는 자의 자세라는 것을 나는 나중에 깨달았고 지금도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이렇다. 지금 이런저런 일들과 상황으로 힘들어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말라고, 그 상황 너머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힘든 상황을 인생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하라고, 상황과 삶 그리고 하나님과 다투지 말고 나 자신과 싸우라고, 그것도 치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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