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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15. 2023

부끄러운 삶

다자이 오사무 / 인간실격

눈발이 휘날리는 어느 주말이었다. 책을 사러 들른 광화문 교보문고 앞, 확성기 소리로 요란하다. 철 지난 노랫소리, 아마 한때 유행하던 곡에 정치 선전용으로 가사를 바꾼 것 같다. 뭔가 어색하다. 계속 들으면 불편해지기까지 한다. 


지지자들이 보기엔 재밌고 따라 부르고 싶겠지만, 내가 보기엔 어색하고 형편없는 것이 마치 내 삶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젊은 시절은 지나갔고, 요즘 이도 저도 아닌 뭔가 어색한 시기를 보내고 있으니까. 



"패망이 이르리니 그들이 평강을 구하여도 없을 것이라. 환난에 환난이 더하고 소문에 소문이 더할 때에 그들이 선지자에게서 묵시를 구하나 헛될 것이며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없어질 것이요.  장로에게는 책략이 없어질 것이며 왕은 애통하고 고관은 놀람을 옷 입 듯하며 주민의 손은 떨리리라. 내가 그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고 그 죄악대로 그들을 심판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에스겔 7: 25-27>



아침에 읽었던 에스겔서 7장.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죄악과 우상 숭배에 물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평강을 구하여도 구할 수 없을 것이고, 지혜가 없어지고, 헛된 소문이 무성하게 되면서 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경고가 그 시대에만 해당되는 말일까. 이스라엘 백성들만 들어야 했던 경고일까.


하나님의 경고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무엇보다 나는 이 경고를 나에게 하는 경고로 받아들인다. 죄악이 관영한 시대, 끊임없는 하나님의 경고가 있었지만 그 경고는 무시되었다. 왜 그랬을까. 몸에 좋은 약이 쓰듯, 약이 되는 말은 듣기 싫은 법이다. 내가 그랬다. 듣고 싶은 말만 들었고, 주변에 조언을 구해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조언해 주기를 바랬다. 


그렇게 생각 없이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을까. 그들은 얼마나 나를 견디며 힘들었을까.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나는 이 경고를 다시 마음에 새긴다. 좋은 글을 써야 하는데 왜 이런 글을 인용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그만큼 남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부끄럽게도 제대로 살지 못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보다는 내 뜻이 앞섰고, 내 의지대로, 욕망대로 살고자 했다. 그 결과는 평강을 잃은 삶이었다. 마음이 불편하고 평강이 없으니 이미 경고는 내 삶 속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이 경고를 마음에 새기고 나부터 바르게, 정직하게, 착하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사는 게 여전히 쉽지 않지만, 문제의식을 갖는 것부터 출발하려고 한다.

며칠 전 운전 중에 다른 차가 갑자기 끼어들어, 속으로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할 필요도 없는 거친 말을 하고 말았다. 어차피 듣지도 못하는데. 나는 그런 적이 없었던가. 일상 속에서 이런 자세부터 고치지 않는 한 별로 가망이 없다. 작은 것에서 내 실상이 드러나는 법이다. 


늘 비교하고, 남들보다 앞서려고 하고, 더 좋은 것을 누리려고 하면서 남들한테는 인색한 삶, 내 허물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허물은 티끌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고한 삶,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여전히 멀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 절망은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구별된 삶을 살지 못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무효였다. 그래서 나는 이 말씀을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나를 심히 자책하면서.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의 대표작인 문장. 주인공 오바 요조의 고백. 책을 읽는 내내 인간으로서 실격인 삶을 살았다는 요조의 고백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오늘도 그렇다. 다자이 오사무도 그래서 이런 고백을 했는지도...



"불행. 이 세상에는 갖가지 불행한 사람이, 아니 불행한 사람만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그러나 그 사람들의 불행은 소위 세상이라는 것에 당당하게 항의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세상도 그 사람들의 항의를 쉽게 이해하고 동정해 줍니다. 


그러나 제 불행은 모두 제 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항의할  수 없었고, 또 우물쭈물 한마디라도 항의 비슷한 얘기를 하려 하면 세상 사람들 전부가, 잘도 뻔뻔스럽게 그런 말을 하는군 하고 어이없어할 것이 뻔했습니다. 


저는 도대체 세상에서 말하는 방자한 놈인 건지 아니면 반대로 마음이 너무 약한 놈인 건지 저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죄악 덩어리였던 듯, 끝도 없이 점점 더 불행해지기만 할 뿐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없었던 것입니다."  



이 고백은 내 고백이기도 하다. 소망은 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경고도 하셨지만, 시편을 통해 위로도 해주셨기 때문이다. 마음이 심란한 요즘, 그 위로를 내가 아닌, 다른 누구로부터도 아닌 위로부터 찾으려고 한다.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시편 19: 11-13 _ 다윗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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