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담금질
달리기를 잘하는 친구가 있다. 솔직히 일반인 수준을 뛰어넘어도 한참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미 그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입지가 있는 친구이다. 몇 달 전에 그 친구와 함께 운동장에서 달리기 훈련을 하게 된 때가 있었는데 그냥 무작정 달리는 것이 아니더라. 400m 트랙의 일정 거리를 빠르게 달리고 나머지는 조금 천천히 달려서 심박수를 지속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유지를 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포인트는 '멈추지 않는다.'였던 것 같다. 그야말로 담금질이었다. 장거리 달리기 훈련은 그저 오래 뛰는 것이 다인 줄만 알았었는데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그 뒤로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달리기를 계속하지는 못했다.
그 일이 있던 이후로 꽤나 오랫동안, 지금까지도, 일정 수준의 심박수를 유지하는 것과 멈추지 않고 지속하는 것에 몰두했던 것 같다. 이 말만 놓고 본다면 여느 분야에서 나올법한 성공의 법칙과 다름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마음도 담금질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본질적으로 깨지기 쉬운 존재이다. 갑각류처럼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맹수와 같이 밀렵꾼에게 대항할 수 있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심지어 감정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 나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부정적인 시각적, 청각적 사건들에 쉬이 심박수가 올라가곤 한다. 하지만 '마음의 담금질' 훈련을 할 수 있다면 이런 것에도 익숙해질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응급실 간호사 김윤섭은 정말 너무나도 취약했다. 환자, 보호자, 동료 간호사, 타 부서 직원들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을 의식하고 상처받았다. 어떻게든 그 공간을 벗어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가장 큰 차이는 그런 나의 마음을 들어줄 수 있는 인적 자원이 풍부했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일반적이며 절대로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을 줄 수 있는 누군가들이 많았고 그 누적이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본다. 그리고 쉴 수 있었다. 나만의 공간에서. 정말 아무도 없는 나만의 공간을 찾아 돌아다니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내 방이 되었든 내가 좋아하는 광화문 광장이 되었든 좁은 골목 전봇대 아래 잡초 옆이 되었든 말이다.
타인에게 상처받는 것이 400m 트랙에서 100m 정도의 전력질주라면, 주변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나만의 공간을 찾는 것이 나머진 300m의 숨을 고르기 위한 뜀이 아닐까 싶다. 어차피 감정은 멈추지 않는다. 잠을 자는 동안 꿈을 꾸면서 감정을 느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인간의 감정은 멈추지 않는다. 멈출 수 없다면 숨을 고르기 위한 뜀을 최대한 늘려보는 건 어떨까 싶다. 그리고 믿어야 한다. 취약해질수록 스스로의 감정을 거짓되게 하고 없는 감정을 자꾸만 불러일으켜 돌이키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믿고 타인에게 본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놔야 한다. 또한 듣는 사람을 믿어줘야 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한들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으리라고. 생각해보면 이런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누군가가 본인에게 슬픈 감정을 털어놓는다 한들 그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가 이미 되어있을 것이다. 그렇다. 본인처럼 타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멈추지 않고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감정의 표현을 쉬워질 것이고 어느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150m, 200m 전력 달리기를 해도 금세 안정을 찾는 심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정지 상태의 여유를 가진다기보단 상대적 여유를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멈출 수 없다면 속도를 줄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상대적 여유에 적응이 되고 나면 조금씩, 다시 조금씩 속도를 올릴 수 있는 때가 올 겁니다. 스스로를 믿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