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는 행운을 상징한다. 비가 그친 직후 쨍할 때 드물게 우리에게 스스로를 드러낸다. 무지개는 7가지 빛깔이 곱게 어울린 한묶음 띠색체이다.
무지개 색채가 거리 곳곳에 펼쳐져 있는 곳이 있다. 무지개 깃발이 여기저기 휘날리고 있는 공간이 있다. 여기에는 무지개가 가로등 깃발로 펄럭이고, 광고 선전판에 그려져 있고, 가게 인테리어에 채색되어 있으며, 횡단보도 표식에서 그어져 있고, 상점 간판에도 색칠되어 있다. 무지개 색채가 스스름없이 당당하고 떳떳하게 활개친다.
바로 샌프란시스코의 카스트로(The Castro) 거리이다. 카스트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유레카밸리 근교에 있다. 카스트로는 정치인이면서 커밍아웃한 성애자 하비 밀크를 비롯한 성소수자 운동가들의 활동 중심 지역이었다. 이곳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확장하기 위한 다양한 문화 전략등이 시작되었다.
이제 무지개 깃발은 성소수자들의 권익을 상징하는 깃발이 되었다. 성소수자(性少數者, sexual minority)는 신체상 성적 특징 또는 성적 지향 등과 관련하여 성정체성 부분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무지개 빛깔은 성적 자유를 대변한다.
무지개는 다양한 색들의 조화의 화신이다.
무지개 색체의 다양성을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의 권리 신장과 결부시켜 상징화했다. 성소수자들은 성영역에 있어서 이 세계에 하나의 모델만 절대적일 수 없다고 본다. 즉 성적 취향으로서 ‘이성애’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다양한 만큼 성적인 지향도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이나 혐오를 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각자 나름의 삶의 가치처럼 스스로 성적 권리를 결정할 권리가 개인에게 있다는 신념을 이들은 확신한다.
카스트로는 이성애에 머물를 수 없는 성적소수자의 해방공간이다.
성적 정체성과 관련하여 지구 이편에서 관용되고 수용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지구 저편에서는 금기시되고 혐오시된다. 한쪽에서 관용과 존중, 평화의 뉘앙스로 감지되는 가치가 다른 쪽에서는 구성원들간의 혐오와 분열을 증폭시키는 갈등의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
내가 사는 곳과 다른 지구 저편도 눈여겨 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절대시하는 도덕과 윤리도 타지역에서는 다르게 해석되어 통용될 수 있다. 우리 식의 삶의 방식이 바람직스럽다는 사고는 아집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뉴톤의 물리학에서 물질 운동은 체계적으로 구조화된 틀에서 이루어진다. 모든 물질 운동은 질서 정연하게 특정 법칙에 따라 작용한다. 반면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법칙은 뉴턴의 기계론적인 세계관으로부터 이탈한다. 상대성의 원리로 보면 세계 물질의 운동은 단일 체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펼쳐진다.
뉴턴의 역학에서는 새로운 운동이 태동할 여지가 없다. 모든 사물들이 통일적으로 조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물질의 운동을 상대성의 역학에서 보면 물성 상호간의 상대적인 위치와 역학에 따라 무수한 가변성과 창조성이 돌출할 수 있다. 창의적인 미지의 역학이 무한정 확장할 수 있다.
윤리와 가치도 절대적이지 않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를 겪는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다. 역사적으로 윤리. 도덕은 시대와 장소, 상황에 따라 변천해 왔다. 조선 시대의 규범이나 도덕이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듯이 현재의 윤리도 향후 미래 세대에게 걸맞을 수 없다.
젊은이들이 기성 세대의 폐쇄된 행태를 비꼬는 껄꺼러운 단어가 있다. ‘꼰대’라는 말이다. 기성세대로서 자신들의 가치관을 지나치게 신봉하며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규범적 생활방식을 강요하는 이를 비꼬는 말이다. 기성세대의 낡은 가치관을 비아냥하는 신세대들의 조롱어이다. 물론 젊은 세대라도 갇힌 사고라면 당연히 꼰대류이다.
스스로 신념의 정당성을 확신한다면 확고히 할 수는 있다. 단 절대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여타의 신조나 신념에 대해서도 개방과 포용의 공간을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더불어 자신의 굳은 신념에 대해서도 성찰과 반성의 여지를 남겨두어야 옳다.
변화가 멈춘 순간 모든 것은 경직된다.
성찰이 사라지면 퇴보는 움트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