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들이 산등성이에 오밀조밀 모여있다. 부산의 감천마을을 연상시킨다. 근데 감천마을은 부산의 일부분이지만 과나후아토는 도시 전체가 산마을 풍경이다.
멕시코 과나후아토. 인구는 20만 남짓한 소도시이지만 만만히 볼 도시가 아니다. 멕시코 과나후아토의 주도이며 멕시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성을 품은 도시이다. 스페인 식민지로서 건설된 과나후아토는 도시 곳곳에 옛 광산 도시의 면모와 역사적인 풍광을 지뉘고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록되었다.
이곳은 멕시코 독립운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달고신부의 독립선언 ‘돌로레스의 외침’이 있었던 곳이다. 식민제국에 대항해 독립 투쟁을 벌였던 아달고 혁명군이 1810년 9월에 정부군을 상대로 첫전투를 벌인 지역이기도 하다.
독립투쟁 당시 정부군은 탄탄한 곡물 창고 요새에 진을 쳤다. 이때 혁명군 소속의 한 노동자가 석판을 지고 기어가 곡물 창고 문에 불을 질렀다. 덕분에 혁명군은 독립전쟁의 첫 승전보를 올렸다. 이후 이 노동자를 기리기 위해 그이 이름을 딴 피필라(El Pipila) 석상을 제작하여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웠다. 이곳이 과나후아토 전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피필라(El Pipila) 전망대이다.
피필라 전망대는 과나후아토 관광의 필수코스가 되었다. 단 전망대 언덕은 반드시 걸어서 올라갈 필요가 있다. 가파른 계단이지만 10분 남짓하면 오를 수 있다. 산을 예찬하는 사람이 케이블카를 타고 산 꼭대기에 단박에 올라가 산정상을 관망한다면 얼마나 우스광스러운가. 산을 좋아한다면 정상 지점만을 딛고자 가는 것이 아니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의 길을 걷는 것이다.
산의 품에 몸을 담아야 한다. 산속 풀내음을 맞고, 갖가지 야생화나 나무들의 자태를 음미하며, 산속 녹음의 그윽한 정취를 흡입해야 한다. 이렇게 걸음걸음 변화무쌍한 산의 정경을 체화하면서 산정상에 이르러야 제대로 된 산행이다. 케이블카는 산을 갈망하되 연령적 신체적인 제약이 있는 분들을 위한 배려의 장치이다.
피필라 전망대도 그렇다. 피필라 전망대에서 과나후아토의 전경을 보려면 수고로운 발품을 팔아야 한다. 물론 푸니쿨라가 정상까지 매끄럽게 설치되어있다. 손쉽게 전망대에 올라 과나후아토를 단번에 조망할 수 있다. 하지만 신체 건강이 허락한다면 손쉬운 방법을 버려야 한다. 오랜 역사적인 도시인 과나후아토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계단길을 걸어 오르면서 길주변 전경들도 눈길을 주어야 한다. 약간 가뿐 숨을 내쉬면서 이마에 송송송 잔땀도 배이고 등쌀에도 약간 땀이 맺혀야 한다. 노고의 댓가로 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는 과나후타우의 풍광은 프니쿨라를 타고 올라온 감흥과 같을 수 없다. 한 걸음씩 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선 이들이 감탄의 환호성을 지른다.
눈아래 내려다보면 살아가는 주민들의 소박한 집들, 상가 점포들, 신앙심이 깊은 멕시코인들의 정신적인 지주인 성당들이 보인다. 산등성이에 군집되어 있는 집들과 건축물들은 저마다 담장, 지붕색이 개성있는 색체로 채색되었다. 도시 전체가 한편의 예술 조형물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과나후아토의 풍광 속에 자리잡고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의 가치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
한때 광산업이 번창하고 부유했던 시절 만들어진 식민지 시대 건축물은 유럽풍을 강하게 풍긴다. 광장과 거리, 곳곳에 들어선 아름답고 웅장한 바로크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은 ‘스페인풍의 중세도시’를 연상시킨다. 특히 라쿰파냐 성당과 라발렌시아나 성당은 중남미에 조성된 바로크 건축의 걸작품으로 꼽힌다. 과나후야토의 스페인풍 건축 양식은 과거 중남미 식민도시의 대부분 건축 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과나후아토는 과거 은이 많이 채취된 광산 도시였다. 함께 오랫동안 스페인의 식민지 통치를 받은 아픈 역사를 지뉘고 있다. 이 때문인지 도시 곳곳에는 지하 터널이 있다. 깔끔한 현대식 터널은 물론 아니다. 과거 광산업이 번창했을 때 원활한 광업 수송을 위해 조성된 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식민지이자 광산 도시임을 얼핏 추론해 보건데 주민들의 삶의 고초를 얼추 짐작할 수 있다. 광산 지역은 식민제국에게는 황금의 땅이지만 식민지 주민들에겐 고난의 장소이다. 식민제국의 탐욕을 위해 도맡아야 하는 힘겨운 광산 노동의 고초는 온전히 식민치하 원주민의 몫이 아니었던가.
저녁 어둠이 드리우면서 마을 불빛들은 하나둘씩 반짝이고
과나후아토는 도시라는 말 보다는 산과 어우러진 마을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듯 하다. 길은 모두 좁고, 구불구불한 곡선이다. 도로 폭도 좁아 거의 일방통행 길이며 건물 사이 사이에 뚫려있는 좁은 골목 길은 거미줄 미로 같다.
과나후아토를 방문하는 자는 겸손해야 한다. 도시 구조상 차를 몰면서 도시를 둘러보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현대 문명의 수족인 차에서 겸허히 내려야 한다. 제대로 도시의 속살을 보려면 무조건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