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독서/박노해
박노해의 생은 치열함 그 자체이다. 노동자에 대한 동지적 애정으로 억압에 쉼 없이 투쟁했다.
노동과 인간에 대한 진정성과 사랑은 그의 글에 깊게 배어 있다. 그만의 언어에는 우리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범상치 않은 기운이 드리워져 있다. 노동을 위한 투쟁, 인간을 향한 사랑을 혼신으로 실천한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사형 구형, 무기수 수형 생활 7년 6개월. 출소한 후 그는 변화된 시대에 직면했다. 그는 곧바로 좌절을 딛고 평화, 생명 운동에 뛰어들었다. 지구촌 분쟁 곳곳, 낮은 곳, 어두운 곳, 암울한 곳을 찾아 헤맸다. 그곳에서 숨겨진 인간애를 재발견하고 감춰진 생명을 새롭게 감지했다.
흑백 카메라 하나 달랑 매고 인간의 숭고함을, 생명을 존엄함을 찾아 지구촌 곳곳을 누볐다. 인간애가 빛나고 생명이 움트는 순간들을 포토에 담았다. 그의 사진에는 그가 갈구하는 삶의 편린들이 투영되어 있다. ‘노동의 새벽’을 필두로 인간 해방을 활자체로 호소한 그는 이제 포토 이미지로 인간과 사랑, 생명과 평화를 토로하고 있다.
그의 언어에는 인생의 울림, 진지함이 담겨있다. 묵중하게 살아본 사람만이 표출할 수 있는, 좌절을 맛보고 감내한 사람만이 탐지할 수 있는.
한 장의 사진과 이에 곁들인 짧은 글귀는 진중한 메시지를 던진다.
글 한 구절도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단어 몇 조각이 이렇게 큰 울림이 된다는 사실을 예전엔 이만큼 몰랐다. 구구절절 청산유수도 단 한마디 그의 성찰 언어를 뛰어넘기 힘들다.
그의 사고는 부정의 긍정성이다. 그에게는 삶 자체가 상처이고 때론 패배이고, 급기야 극단적 상실의 나락이었다. 그러나 그의 인간애는 이 모든 실패를 보듬고 다시금 승화된다. 곧 상처가 희망이 되었고 패배가 승리를 향한 성찰의 자산이 되었다. 오히려 좌절했기에, 고뇌했기에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수 있었다.
상처 받고 있다는 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
상처 받고 있다는 건/ 내가 사랑한다는 것.
그대, 상처가 희망이다.
<걷는 독서, 박노해>
그는 어떤 절망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인간을 향한, 생명을 위한.
단지 현재 처한 어둠은 빛을 향한 여정에 잠시 드리워져 있을 뿐이다.
빛이 더욱 빛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어둠이 한층 짙게 내리깔려야 하는 것이다.
절망에서 희망을 노래하고, 낙담에서 긍정의 신호를 발견하며, 이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를 기꺼이 감내한다.
길을 잃으면 길이 찾아온다.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니.
<걷는 독서, 박노해>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인간의 숙명일지라도 인생사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은 반드시 있다. 곧 살아가며 화가 치밀고 슬픔에 젖을 때도 있지만, 때론 기쁘고 즐거운 날들도 도래하지 않겠는가. 현재의 막막한 날도 언젠가는 선명해질 것이며, 떨리는 내 모습도 단단하게 여물어질 날이 머지않아 꼭 온다. 그대, 슬픔의 날들로 얼룩졌을지라도 낙담 말자. 환희가 다가올 채비를 하고 있음을, 꽃피는 날이 도래할 것임을 그가 알려주지 않는가. 그는 이미 체득했으므로.
막막한 날도 있어야 하리.
떨리는 날도 있어야 하리.
그래, 꽃피는 날이 오리니.
<걷는 독서, 박노해>
질수록 이기는 사람, 없을수록 더 풍요로운 인간, 낮을수록 더 고상한 인품.
그의 언어처럼 단순한, 단단한, 단아한 박노해에게 깊게 배인 정체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