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담 너머의 사랑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채광석

by 갈잎의노래

아주 오래된 얘기이다. 1981년 출간된 40여년 전의 이야기. 한 대학교 선배가 앳된 신입생을 만나면서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캠퍼스에서 두 사람의 우연적인 그러나 운명적인 만남. 아주 약간씩 서로의 좋은 감정을 느끼는 와중, 느닷없이 선배라는 작자는 붉은 벽돌담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한 달여의 짧은 아쉬운 만남을 뒤로 하고. 선배는 소위 당시 운동권 학생이었으며 긴급 체포되었던 것이다.



애닯은 사연들만이 높다란 붉은 벽돌담(교도소)을 넘나든다. 1975년 봄에서 1977년 여름까지 2년이 넘도록. 벽돌담 너머 편지에는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고뇌, 역사의식, 인간애 등이 녹아있다. 극히 절제된 사랑을 배경으로. 편지는 검열되었기 때문에 언어 선택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책 서문에서 이 책에 담겨있는 애틋한 스토리의 단초를 볼 수 있다.

“1975년 봄 그 젊은 남녀는 서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조금씩 내보이기 시작했읍니다. 남자는 대학 4년생이었고, 여자는 신입생이었습니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조금씩 시간을 보내는 만남이 계속된 지 한달이 조금 지날 무렵, 남자는 중뿔나게도 무슨 거창한 신념의 깃대를 흔들어 대더니만 훌쩍 벽돌담 안으로 사라졌습니다.”<본문 중에서>


그 시대가 선배와 새내기 대학생의 갓 피어날 햇 사랑의 싹을 잘라버렸다. 어두웠던 우리의 시대가, 우리의 역사가 그 둘 사이를 커다란 붉은 벽돌담으로 막아버린 것이다.


민주화 원로 백낙청은 소개 글에서 이 책의 위상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담담한 필치로 쓰여진 이 서한들은 그러나, 어떤 ‘뜨거움’에 대한 증언이다. 70년대를 치르는 분노와 절망과 사랑에 대한 지울 수 없는 기록인 것이다.”



투사의 신념에서 보건대 사랑 감정은 자칫 ‘감상의 늪’이 될 수 있다고 짐짓 경고하면서도 스스로 선배의 가슴 한 자락에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감출 수 없다.

“자칫 감상에 젖어 저 푸르른 강을, 하늘을 바라볼 때면, Better K, 스쳐가는 바람결에라도 떨어져 내릴 듯한 애틋한 그리움들이 가슴 속에 송이져 맺히곤 합니다.”<본문 중에서>


한 시인은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내게 다가와 꽃이 되었다’고 했다. 선배는 이름 없는 별에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들을. 놀랍게도 무심한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 대상은 나에게 특별한 나의 대상이 되었다. 내가 연인으로 지칭한 저 별은 이제 나의 연인별이 된 것이다.


“이름 없는 별 하나에 시선을 맞춰봅니다. 별 속에 시가 있고 당신이 있고 부모가 있고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면....(중략) 이렇게 개개의 별들에 의미를 부여해 놓고 보면, 돌연 어둠 속의 하늘은 의미있는 것이 충만한 역동적인 공간이 되어 버립니다.”<본문 중에서>


붉은 벽돌담으로 차단된 현실 앞에서 연인을 향한 그리움은 더욱 애틋하게 살아난다. 이제 투사로서의 자기 절제, 감정 억제력으로도 이런 감정을 숨길 수 없다. 인간의 본능적 감정을 어떤 신념이나 이성으로도 억누를 수 없음을 그는 내심 느낀다.




“... 지난 13일 이삼십미터 밖에 와 있으면서도 내 솔제니친 같은 가까중 머리를 보지 못하고 작년 여름처럼 ‘엉성한’ 심정으로 되돌아갔을 당신을 생각하며 나는 속으로 나를 익히우며 무척이나 서러웠니라. 그날은 벽을 보아도, 짙푸른 녹음을 보아도, 책을 펴 보아도.....온통 당신을 떠올리며 이 어설픈 결별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꼭꼭 씹고 있었지.<본문 중에서>


선배 투사는 이제 각진 까칠함에서 둥글한 유연함으로 변화한다. 그러나 항전을 포기하는 물러섬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저항을 위해 자신을 추스리는 것이며, 더 넓은 인간 사랑을 위해 자아를 연마하기 위함이다.

“수인1060호는 이제 고향의 풀 내음에 묻혀, 날카로왔던 이성의 깃발을 거두고, 처절했던 내심의 싸움을 거두고 이제는 조용히 수양의 덕을 세우리라 다짐합니다.”<본문 중에서>

마침내 부조리한 시대, 그늘진 역사 현실 앞에서 자신의 이정표를 세운다. 앞으로의 삶을, 나아가야 할 실천을.

“천박한 낙과주의와 독선적 몽매주의를 누구보다도 경계하면서 나는 구체적 삶만이 진실을 말해준다는 ... ‘사랑’아닌 신은 말하지 않습니다. 민중의 삶을 제시하지 않는 글을 쓰지 않으렵니다. 헌신이 아닌 직업은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본문 중에서>



채광석은 이렇듯 시대를 온 몸으로 껴안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압축적인 생애만 이 땅에 남겨두고. 향년 39세. 불의의 교통사고로. 이후 한층 완숙되었을 신념을, 흠씬 영글었을 사랑을 세상에 좀 더 펼쳐보이지 못하고.


누가 ‘신은 아끼고 사랑하는 자를 먼저 데려간다.’고 했던가. 세속의 때가 더 묻기 전에.

하지만 세상은 이런 이들의 잔류를 갈망한다. 우리네 속세의 때를 벗기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