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낙태’를 말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랑에까지 도달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by Lydia Youn


“사랑하니까 콘돔을 끼지 말자고 ‘강요’하는 남자에겐 임신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하시면서 아이를 낳으면 같이 키워주는가에 대한 명확한 의사를 점검하세요. 강요가 아니라면 제가 알 바는 아닙니다. 사랑하세요~”

#페미니즘 #이퀄리즘 #낙태 #낙태죄폐지 #낙태방지


오늘 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다. 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6000명대이다. ‘일반인’ 치고는 많은 편이고 ‘인플루언서’라고 하기엔 그다지 많지는 않은 것 같은 정도. 그 정도 숫자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한 명, 두 명 팔로워가 늘어가는 것이 재미있었고, 더 유명해지고 싶었고, 언제 1만 명이 되나, 언제 저 꼭대기의 사람처럼 숫자가 더 높아지나 고민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역시 저 숫자만 가지고도 인스타그램에서 하고 싶은 말을 참아가면서 돈을 벌 방법들을 찾아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은걸 어쩌나. 더 자극적이거나 아름다워 보이거나 비싸 보이는 것들을 올리면서 더 많은 팔로워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이 따라오는 것은 진짜 내가 아니라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까지 사랑해달라는 말은 저 공간에서는 할 수가 없게 돼버린 것이다.


멋져 보이는 누군가는, 아름다워 보이는 누군가는, 지혜로워 보이는 누군가는, 부자인 것 같은 누군가는, 그렇게 멋있고 아름다워 보이고 지혜로워 보이고 부자 여보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들을 딱히 비판하고 싶은 마음마저 사라진다. 그들이 그 위치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우리보다 무언가를 더 열심히 했던지 아니면 적어도 환경이라도 좋게 태어난 것을 어쩌나. 내가 그 위치에 올라가고 싶다면 포기해야만 할 것들 역시 함께 따라온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다든지, 남이 좋아할 만한 곳에 꼭 가야만 한다든지, 가장 최신의 유행을 따라가기 위해 발버둥 친다든지, 최신의 유행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 이상의 노력을 한다든지, 광고하고 싶지 않은 것을 광고한다든지 하는 것. 그런 사람들은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사는 나보다 더 대단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걸 어쩌나. 인싸이고 싶다가도 엄청나게 마이너한 사람인 걸 어쩌나. 예뻐 보이고 싶다가도 예쁘지 않은 내 모습도 사랑하는 사람들만 남길 바라는 걸 어쩌나. 가끔은 팔로워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것을 어쩌나. 마이너하고 더 마이너한 취향을 가진 우리가 모여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이고 싶은걸 어쩌나. 입 닫을 수 없는 걸 어쩌나. 가끔은 미쳐 보이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이 삐끗하며 한편으로는 더 잘 돌아갈 수 있는 걸 어쩌나.


나는 자기 객관화를 너무나도 냉철하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인스타에서 소비되는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일도 열심히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책도 좀 읽는 것 같고, 외국인 친구들도 좀 있는 것 같고, 비키니를 입거나 노출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고, 가족이랑도 잘 지내는 것 같고, 술을 좋아하는 것 같고, 노는 것도 좋아하고, 다양한 부류의 친구들이 있고, 관심사가 많은 것 같고,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돈을 쓰는 것을 보니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는 것 같고, 맨날 장문의 읽기 귀찮은 혹은 가끔은 공감이 되기도 하는 글을 올리는데 갑자기 책을 출판할 것이라고 떠벌리고, 가끔은 너무 맞는 말을 하고, 가끔은 정신이 나간 것 같고..


그 모든 건 나이자 우리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그냥 인간으로서의 나와 우리의 모습이다. 난 항상 예쁜 것도 아니고 항상 비싼 곳에만 가는 것도 아니고 항상 행복한 것도 아니다. 가끔 사람들은 나를 보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나를 보며 혐오를 느끼기도 한다. 그게 세상사인걸. 난 사랑받기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랑에까지 도달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보다는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내 곁에 남는 사람들이 더 좋다. 더 진짜 함께해야 할 사람이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랑에까지 도달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이건 처음에 말했던 낙태 문제에도 똑같이 적용해볼 수 있다. 당신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랑에까지 도달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 상관이 없지만,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면 놓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모두가 쉬쉬하고 있지만 결국 모두가 쉬쉬하면서도 알아서들 잘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그 와중에 알아서들 잘 사랑하고 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성범죄와 성추행 문제, 나아가 낙태에 관한 문제까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쉬쉬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모든 문제는 가장 작고 기본적인 하나를 지키지 않아서 발생하기 시작한다. 사랑을 지키는 것은 콘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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